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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우리 엄마는 '미세스 코리아'다. 엄마의 런웨이는 경복궁. 빳빳하게 풀 먹인 한복을 입고, 엄마는 날마다 궁 안을 누빈다. 두 손에는 태극기와 낯선 타국의 국기가 그려진 깃발이 나누어 들려있다. 엄마가 그 깃발을 높이 흔들때면 갈색눈과 파란눈을 가진 외국인들이 앞다투어 엄마를 찾아온다. 그들 앞에서 '트라디셔널 팔리스' 경복궁을 소개하는 엄마. 사람들은 그런 우리 엄마를 '미세스 코리아'라고 부른다.'한국을 대표할 자랑스러운 얼굴을 모집합니다' 처음에 엄마가 가이드 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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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15.07.28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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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틀아, 비눗방울처럼만 살고싶다. 길거리에서 팔던 이천원짜리 비눗방울을 후후 불며, 나는 지금껏 수십 번 반복했던 말을 또 한 번 중얼거렸다. 동그랗고 투명한 비눗방울들이 햇빛을 반짝반짝 반사시키며 두둥실 떠다니기 시작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비눗방울보다 고집이 센 것은 또 없다. 틀이 별 모양이든 어떻든 나오는 것은 죄다 동그란 방울들이기 때문이다. 남이사 뭐라고 하든 저 하고싶은 대로 순풍순풍 둥글게 태어나는 것들이 퍽 부럽기만 했다. 어린이 날을 맞아 작은 행사를 진행한다더니, 중앙공원은 이미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였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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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15.07.28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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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틀저는 보이지 않는 존재 입니다. 이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생글생글 방금 피어난 아네모네와 같이 웃고 있는 소녀 속에 있습니다. 이 곳은 무척이나 따스한 물로 채워져 있는 중력을 잊어버린 공간입니다. 배 언저리에는 나를 증명하는 붉은 끈이 달려 있답니다. 가끔씩 이 끝을 꼬여버릴 때가 있습니다. 쿵쿵, 문을 두드리는 소리. 이건 어서 나오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이 꿈이기를, 거짓말이기를 바라는 엄마의 조그마한 주먹이 다녀가는 소리입니다. 그래도 두어 번치고 맙니다. 우리 엄마의 두 눈에서 이 곳의 것과 닮은 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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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15.07.28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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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나비야 넌 타인의 이름을 가졌니?마법가루처럼 별빛이 내려오는 뒷마당나비가 우리집 담벼락을 넘고 있어요뱃속에서 허기가 꿈틀거릴 때마다몸에 있는 줄무늬가 요동칩니다새벽녘에서 마음을 놓는고양이의 식사시간이 시작된 것입니다나비가 생선 뼈다귀를 씹으면저 멀리 엄마의 목소리가 불어와요나비야, 기원 없는 이름을 부르며벽 뒤에서 나비를 지켜보는 엄마고요가 쏟아지는 밤이면매일 뒷마당에 먹이를 둡니다나비와 엄마가 서로를 눈에 담고 있습니다익숙한 것들은 위로를 불러오나요엄마, 할머니가 가졌던 이름을빌려입고 나비와 가까워지는구나바람의 냄새만을 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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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15.07.28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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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벽지 속의 꽃밭은 시들어가는데아무도 물을 주지 않았다그날도 엄마는 차가운 거실 방바닥에쪼그려 앉아 비닐을 뜯고 있었다종이상자에 가득 담긴 양말들누군가의 새 걸음을 포장할 때마다손가에서 비닐쪼가리가 날개처럼나풀거리며 떨어졌다바람이 들어오지 않는 곳으로 이사가자 말 하던 엄마비닐 쪼가리는 날아가지 못하고 바닥에 쌓여 갔다마치 병든 나비떼 같아 바라보던 나나는 번데기껍질 같은 이불 속에서 잠들었다우우거리며 창문 틈으로 들어오던 바람새벽, 여전히 손가에서 떨어지는 날갯짓소리커다란 나비알 같은 이 집언제쯤 훨훨 날아갈 수 있을까어둠에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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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15.07.28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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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숙명 여고문학상 수필 부문에는 총 31명이 참여했다. 예년에 비해 참가작의 숫자가 적어 문학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는 세태를 절감하였다. 올해 수필 부문은 ‘깃발’ ‘부끄러움’의 두 가지 글제로 진행됐는데, 두 명의 심사위원은 오랜 숙고 끝에 백로상과 청송상만을 선정하고, 매화상은 선정하지 않았다. 그 대신 장려상을 여섯 편 선정하였다.본상 세 편을 모두 추리지 못한 것은 올해 백일장에 참가한 작품들이 모두 비슷한 발상, 비슷한 전개, 비슷한 결론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참가작들 중에는 가슴 아픈 가족사를 이야기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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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15.05.31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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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나는 달리기 만년 꼴등이었다. 꼴지의 가장 큰 설움이 무엇인지 아는가? 꼴지를 기다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운동장 모래 바닥 위 그려진 하얀 선을 따라 달리면 꼭 그만큼 하얀 깃발이 박혀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사람은 다섯인데 깃발은 네 개다. 도장을 들고 깃발 옆 서있는 선생님도 하나, 둘, 셋, 넷. 난 언제나 다섯 번 째 아이였는데 도장도 네 개 뿐이었다. 선생님들은 일등으로 도착한 아이는 1번 깃발, 이등으로 도착한 아이는 2번 깃발에 일렬로 줄 세운 뒤 모든 달리기 경주가 끝나면 아이들의 손등에 쾅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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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15.05.31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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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툭, 툭, 목련 잎이 언덕 끝에서 한 장씩 떨어진다손가락 없는 흰 손바닥이한 장씩 겹쳐 만든 주먹을 풀고벽돌 바닥에 손도장을 꾹 누르는 계절목련은 썩은 자국을 남기며 동그란 활자가 된다봄의 끝을 때맞추어 전하고자한 장씩 힘차게 떨어지는 꽃잎처음 글자를 그리던 내 손 위에 얹은커다란 손바닥을 생각한다울퉁불퉁한 글자를 쓰기 위해동그란 내 손을 움켜쥐고 한 획씩천천히 그려나가던 엄마의 손겹친 주먹으로 새기던흰 종이 위로 번진 사인펜 자국그때는 읽을 줄 몰랐던 그 글자를17년이 지나고 또 한 번의 봄이 끝나가고 나서야목련의 갈색 자국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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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15.05.3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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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희양의 는 어조나 발상, 구성 면에서 긴장과 절제의 무리 없는 조화가 돋보였던 작품이다. 목련잎에서 엄마의 손으로, 그리고 다시 편지로 이어지는 상상력의 흐름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흐름을 통해 내면적인 그리움을 형상화한 수작(秀作)이라고 판단된다. 박수현의 는 고양이 = 나비의 발상 형식이 눈에 들어왔고, 고양이 모녀(혹은 모자)의 관계를 약간의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그려내고 있는 점이 참신해보였다. 지속적으로 다듬는다면 기대에 값하는 시를 쓸 가능성이 엿보인다. 송은지의 역시 마찬가지로 주목된다. 유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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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15.05.3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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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이라는 두 글제 가운데 많은 사람이 앞의 것을 택하였다. 그게 보다 상상의 가능성이 크고 다양해 보이는 까닭일 것이다. 그런데 어떤 글제를 택하든, 이런 대회에서는 제목에 맞는 내용을 완성된 형태로 지어내야 한다. 이라는 글제가 그야말로 너무 ‘거대’했는지, 사건 전개와 그것이 형성하는 의미의 초점이 글제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려운 글들이 있었다. 게다가 이중 플롯, 환상적 요소 등을 도입하거나 청소년의 체험에서 너무 벗어나는 사건을 택하여 전체 구조에 무리한 데가 생긴 작품도 많았다.수상작은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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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15.05.31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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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틀이성실 씨의 귀환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번엔, 동생 이성숙 양의 옷장 안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성숙 양의 코트와 교복, 양말과 속옷에 파묻혀 성실 씨는 빠꼼히 고개를 들었습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성숙 양은 손에 들린 브래지어로 성실 씨를 두드렸고, 뒤통수에 주먹만 한 혹이 생기고 나서야 성실 씨는 옷장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왜 또 왔냐.”아침 밥상을 눈앞에 두고, 성숙 양이 물었습니다. 성실 씨의 거듭된 가출과 귀환은 더 이상 성숙 양에게 감흥을 주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이년 전 성실 씨가 처음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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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15.05.31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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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길로 아빠는 죽었다. 적어도 내 기억이 맞다 면, 아빠는 분명 일년 전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아빠가 서 있다. 마스카라가 번져 검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나에게 무어라 외치고 있다. 루즈를 바른 아빠의 입술 사이에서 침이 튀긴다. 난 겁에 질려 아빠를, 아니 무당을 밀친다. 사나운 인상의 무당 여자 입에서 자꾸만 아빠의 목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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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14.05.23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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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길로 남자는 자동차 문을 열 수가 없었다. 얼마 전부터 오락가락하던 문의 감금장치를 그냥 내버려 둔 것이 화근이었다. 남자는 멍하니 자동차 내부를 바라보았다. 자동차 열쇠는 운전석 바로 옆에 놓여져 있었다. 문이 잠겼고, 열쇠는 자동차 안에 있다. 남자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몸을 뒤로 틀었다. “진짜 깡 촌이네…&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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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14.05.23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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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길로 길가에 나란히 선 가로수가 스산함을 떨쳐내며 바람결에 흔들렸다. 높은 하늘 위에 덩그러니 매달린 가로등 불빛에 초록색 나뭇잎 하나하나가 연어 때처럼 반짝였다. 부드럽고 추운 밤이다. 나는 텅 빈 길가 저 멀리를 내다보며 중얼거렸다. 카페 문을 닫고 그 주변에서 괜히 서성거렸다. 마감 시간은 이미 지났지만 간판 불은 아직 환희 빛나고 있었다.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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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14.05.23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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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 어린 시절, 내 기억 속의 달력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매우 커다란 종이였다. 해가 갈 때마다 조부모님께선 직접 달력을 내려주시고 마음껏 그리라고 색연필도 내미셨다. “잘 그리네 우리 손녀!”옆에서 내가 자신의 몸집마냥 큰 달력에 열심히 그림을 그리면 할머니께서는 마냥 웃으시며 칭찬해주셨다.“할무니, 할무니도 그려.&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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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14.05.2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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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과 돌아옴 성경의 유명한 일화들 중에 ‘돌아온 탕자 이야기’가 있다. 젊은 아들이 도시로 떠나 재산을 흥청망청 써버리고는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다. 언뜻 들어서는 어리석어 보이는 이 이야기가 아름다운 까닭은 뭘까? 그 이유는 탕자의 떠남에, 혹은 돌아옴에 있는 것이 아니다. ‘돌아온 탕자 이야기’가 아름다운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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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14.05.23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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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 엄마는 요즘 부쩍 달력 앞에 앉아 있는 날이 많았다. 나는 그런 엄마를 두고 연말이라서 약속이 많이 잡혔나 보다,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새로운 달력으로 바꾸기 일주일 전부터 엄마는 평소와 다르게 사소한 것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급기야 아빠가 출근 전 엄마에게 와이셔츠가 어디에 있는 지 묻자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안방 문을 굳게 걷어 잠
숙명여고문학상
숙대신보
2014.05.23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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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보드라운 곡선으로 이루어진,눈 앞을 어룽거리는 가로등 불빛.그것은 어쩌면 배냇적부터 봐 오던어머니의 자궁일지도 모릅니다. 봄이면 골목길은 온기가 가득했습니다.나는 갓 피어난 민들레처럼 담장에 바짝 붙어어머니를 지켜보곤 했습니다.어머니는 툭툭 떨어지던 동백꽃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동생을 유산하던 날,어머니의 탯줄도 그렇게 통째로 떨어졌을까요. 어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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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14.05.23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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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주름진 골목길을 꾹 눌러 펼친다.오므라 들었던 두 벽이제자리를 찾아간다.골목은 어머니의 호흡에 맞춰천천히 흔들리고새끼 손톱만한 어린 내가그 사이를 뛰쳐나온다.온 골목을 헤집고 논다.어린 나는 감긴 두 눈 사이를 벗어나지 않는다.잠시 동안이나마 어머니가눈을 감은 채 숨을 골라도 안심할 수 있도록지금 이 곳은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놀이터어린 내가 뛰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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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14.05.23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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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회 숙명 여고문학상 백일장 - 시 1등(백로상) – 윤시현 (강원외국어고등학교) P004 골목길 어린 돌담 자라나콘크리트 어른 되었다.훌쩍 훌쩍 자라서 고양이도 친구하지 못했다.사이사이 남은 것은 뱀 허물 같은 회색 길. 그 길에민들레 홀씨 하나 날아와고양이 눈처럼 노오란꽃 한 송이 피웠다.그 꽃에 수줍은 주황빛 가로등 자라나회색 겨울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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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 신보
2014.05.23 1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