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예술고등학교 최예원

길에서 길로

 

 아빠는 죽었다. 적어도 내 기억이 맞다 면, 아빠는 분명 일년 전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아빠가 서 있다. 마스카라가 번져 검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나에게 무어라 외치고 있다. 루즈를 바른 아빠의 입술 사이에서 침이 튀긴다. 난 겁에 질려 아빠를, 아니 무당을 밀친다. 사나운 인상의 무당 여자 입에서 자꾸만 아빠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겁에 질린 나는 빽 소리를 지른다.

 낙상사고라고 했다. 새 서울시장이 내세운 공약인 ‘영화대교 사업’이 아빠의 목숨을 앗아갔다. 강을 건널 수 있는 길을 만들던 아빠는, 끝내 길을 다 만들지 못한 채 죽음의 강을 건너야 했다.

 처음 아빠가 영화대교 공사현장으로 일을 나가겠다고 하던 날, 우리 가족은 아빠를 말렸다. 아빠가 아무리 회사에서 잘려 실업자가 되고, 우리 집 가정형편이 어려워졌다 해도 그 위험한 일을 하게 할 순 없었다. 하지만 아빠는 웃으며 말했다.

 “난 괜찮아. 이 애비가 돈 한푼 못 벌어서 우리 딸 앞길 막으면 어떡허냐. 난 괜찮으니까 어여 들어가서 공부혀.”

 무당은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있다. 굿판은 점점 더 시끄러워진다. 다른 늙은 무당이 울고 있는 무당의 등을 툭툭 두드리며 한이 있으면 여기서 풀고 좋은 곳 가라고 소리친다. 그러자 무당이 차디찬 손으로 날 끌어안는다. 그러고는 말한다.

 “우리 딸, 아빠랑 같이 가자.”

 나는 기겁을 하며 무당을 밀친다. 지난 일 년간 내가 매일 들어왔던 목소리였다. 난 엄마 품으로 달려가 안긴다. 무당이 주저앉는다.

우리 가족이 굿판을 벌인 이유는 나 때문이었다. 나는 아빠가 죽은 후, 매일 밤 가위에 눌렸다. 아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나,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딸, 아빠랑 같이 가자. 계속 내 귓가를 맴돌았다. 우리 딸, 아빠랑 같이 가자. 우리 딸……

나는 결국 이번 수능을 완전히 망쳤다. 매일 불면증과 불안감에 시달려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당연히 대학도 모두 떨어졌고, 내 앞길은 턱 막혀버렸다. 그리고 그 이유가 아빠의 혼이 아직 내 곁을 떠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무당의 말에, 우리 가족은 굿을 하기로 결정했다. 아빠도 나도, 좋은 길로 갈 수 있게 하기 위해 말이다.

늙은 무당이 나를 엄마의 품에서 빼낸다.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저 못하겠어요. 무서워요……”

그러자 늙은 무당은 겁내지 말고 침착하게 아빠와 이야기해 보라며 날 끌고 간다. 아빠는, 아니 무당은 여전히 울고 있다. 늙은 무당이 나와 그의 손을 맞잡게 한다. 차갑다.

 “우리 딸, 아빠랑 같이 가자.”

 나는 도와달라는 눈빛으로 엄마를 쳐다본다. 엄마가 통곡하며 아빠에게 소리친다.”

 “이제 그만 놔 줘! 얘 갈 길 가게 좀 놔달라고!”

그러자 아빠가 날 보며 묻는다.

“딸, 내가 우리 딸 길 막고 있는 거여?”

나는 마음을 가다듬는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이 굿판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침착하게 입을 연다.

“응. 아빠가 옛날에 그랬지? 내 앞길 막지 않겠다고. 그런데 아빠가 날 떠나지 못하면, 나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어. 그러니까 우리……”

나는 잠시 입을 다문다. 울컥 눈물이 났기 때문이다. 아빠를 보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우리 서로 보내주자. 난 아빠를, 아빠는 나를 각자의 길로 보내주는 거야. 그래 줄 수 있지?”

아빠의 눈에서 검은 눈물이 한 줄기 더 흘러 내린다. 아빠는 한참이나 내 얼굴을 본다. 이 길을 떠나기 전, 내 얼굴을 머릿속에 기억시키려는 걸까. 아빠는 한참 뒤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손을 놓는다. 내 손이 허공으로 떨어진다.

아빠가 노래를 부른다. 루즈를 바른 빨간 입술로. 아빠의 앞에는 흰 천이 길게 펼쳐져 있다. 아빠가 살면서 걸어온 길만큼 길다. 저 길이 아빠가 가야 할 길이다. 세상을 등지고, 아빠는 마침내 칼로 천을 주욱 가르며 그 길을 걸어간다. 아빠의 구슬픈 노랫가락이 마당에 울려 퍼진다. 나와 아빠는, 서로를 위해 서로를 떠나 보낸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은 한 길을 걸어갈 수 없기에…… 죽음이란 결국 이런 걸까. 문득 아빠가 예전에 한 말이 생각난다. 다리를 만드는 일이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였다. 아빠는 너털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힘들어도 어쩌겄냐. 앞길이 창창하지 않은 우리가 길을 가려면, 이렇게 해서라도 길을 만들어야지. 아빠가 인생을 살아보니까 말이여, 인생 길은 운명처럼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면서 걸어가는 거더라구.”

 그렇다면 지금 아빠가 걸어가는 이 길은 누가 만든 걸까. 아빠는 길의 막바지로 향한다. 길에서 길로, 아빠는 자신이 만들지 않은 길을 걸어간다. 아빠가 순간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나와 눈이 마주친다. 난 아빠에게 손을 들어 인사한다. 아빠, 안녕. 아빠는 미소를 짓더니,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소리를 내며 갈라지던 흰 천이 마침내 툭, 끊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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