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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 열이 올라 깰 때가 있다. 그럼 필자는 한참 동안 이불을 몸에 감다가 더는 잘 수 없음을 알고 일어나 베란다로 통하는 거실의 큰 창문을 열러 간다. 열이 달은 몸으로 창을 힘겹게 열면 찬 새벽의 공기가 뺨을 훑고 흐른다. 그제야 몸 구석구석 스민 열감이 쭉 빠지고 시원한 공기가 분다.시원하게 바람이 불 때면 필자는 언제나 가슴 한가운데 삐뚤빼뚤한 구멍이 있는 것 같았다. 그 구멍을 바람이 훑으면 살갗은 움츠러들고 작은 공허에 빠진다. 필자의 시선은 창밖의 도로를 향하면서도 눈은 작은 공허를 본다. 방엔 사랑하는 가족이 잠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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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25.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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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24일(월) 서울시 강동구의 싱크홀 사고를 기억하는가? 지름, 깊이 20m의 대형 싱크홀로 인해 왕복 6차선 도로 중 4차선이 가라앉아 오토바이 운전자 한 명이 사망하고 승용차 운전자 한 명이 병원으로 이송됐다. 필자는 한국의 싱크홀 사고를 처음 보아 충격이었으나 SNS에서 국내 발생 횟수가 적지 않음을 알게 됐다.UN에서 밝힌 싱크홀의 정의는 ‘지하침식으로 인해 지표면에 움푹 팬 구멍’이다. 서울시 재난 안전 포털 사이트 서울안전누리에 따르면 싱크홀 사고는 서울에서 올해 1월1일(수)부터 6월30일(월)까지 73건 발생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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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25.1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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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 ‘Kafkaesque’를 검색하면 ‘카프카적인, 부조리하고 암울한’이란 뜻이 나온다. 단어의 유래인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엔 억압과 소외가 담겨 있다. 작품이 탄생한 요인 중 하나로 그의 복잡한 정체성이 있다. 카프카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령이던 프라하에서 태어나 독일어를 사용한 유대인이었다. 작가가 유대인으로서 시오니즘의 태동기에 살던 점을 주목해 단편 「자칼과 아랍인」을 해석해 보고자 한다.소설 속 화자는 사막에서 자칼 무리에 둘러싸인다. 자칼은 긴 시간 동안 화자를 기다려 왔다며 아랍인과의 오랜 싸움을 끝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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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25.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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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선과 직선이 반복되는 긴 서킷이 햇빛에 번쩍인다. 관중석은 가득 차 새까맣고 거대한 물결처럼 일렁인다. 샴페인, 폭죽,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촬영 무대에선 연예인이 활짝 웃으며 자세를 취한다. 터질 듯한 환호성 속에 주인공이 입장하고 매끈한 광택의 자동차에 올라탄다. 카메라는 아름다운 곡선의 차체를 비추고 거칠고 매섭게 타이어가 회전하며 눈으로 좇을 수 없는 속도로 사라진다. 영화 의 화려한 장면이다.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긴장감에 손에서 땀이 나고 마음이 요동쳤다. 주인공 팀이 우승하리라는 결말이 뻔한데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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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25.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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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세상이다. 서로 비교하고 헐뜯고 손익을 따져가며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 어려운 세상. 선의가 약점이 되는 세상에 분노도 애원도 해봤지만 언제나 상처받는 것은 필자였다.요즘 필자에겐 세상이 추운 겨울 같다. 이런 겨울 같은 날을 보내는 이들이 있다면 필자도 여기서 함께 떨고 있는 이가 있다고 짧게나마 써 내려가려 한다.왜 이렇게 힘들까란 생각을 끝도 없이 해봤다. 원체 생각이 많은 터라 주저 없이 쏟아지는 생각을 일부러 막지 않으면 눈 감기 전까지 할 수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가한 방학을 보내고 있었기에 울고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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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25.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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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이 끝난 주말, 늦은 오후 동네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을 시켰다.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며 아무 생각 없이 창밖을 내다봤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바라보다 문득 오랜만에 여유를 느끼고 있단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한가하게 있어도 되는 건가? 지금 이래도 되나?’란 생각이 스쳤다. 쉴 틈 없이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있는 자신에게조차 죄책감을 느끼는 모순에 헛웃음이 나왔다. 어쩌면 필자는 ‘쉬는 법’을 너무 오래 잊은 채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예전엔 일상 속 소소한 기쁨이 자연스러웠다. 길에서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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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25.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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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무슨 일이 일어나도 괜찮단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던 밤들이 있다. 거창한 목표가 있을 때의 충만함이라기보다 삶의 균형이 잘 맞을 때 조용히 스며드는 평온함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 필자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내야 할 것만 같아 많은 일을 벌였다. 휴학을 했단 이유로 조급해진 탓일까.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할까’란 질문들이 복학 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중요한 질문이지만 가끔은 벅차게 느껴진다.중간고사가 끝나고 당일치기로 전주에 여행을 다녀왔다. 막차를 타러 가기 전 백반집에 들렀다. 사장님이 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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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25.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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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은행에서 한 노인을 봤다. 노인은 대기 순서를 놓쳐 화를 냈고 직원은 귀찮아했다. 직원이 4번 창구에서 번호를 부를 테니 기다리라고 말하자 노인은 4번 창구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때 1번 창구에서 직원이 “아까 번호 놓치신 분 오세요”고 말했지만 4번 창구만 쳐다보던 노인은 이를 알지 못해 순서는 또 넘어갔다. 이후 필자는 은행에서 나와 일이 어떻게 끝났는지 모르지만 며칠이 지난 지금도 그 결말을 상상한다. 그렇게 필자에게 ‘늙는다는 건 무엇인가?’란 질문이 떠올랐다.필자는 아직 늙는 것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 조부모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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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25.03.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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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국문학 수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뜨겁다. 최근 몇 년간 국제 문학상 수상 후보에 오르거나 성공적인 수출 사례를 보여준 작가들이 꾸준히 등장해 왔기 때문이다.하지만 해외로 수출된 국내 문학의 작품성이 뛰어나다고 해서, 해당 작품들이 한국 문학의 문학성과 예술성을 온전히 대표한다고 볼 순 없다. 수출 작품은 해외 독자의 관심을 끌 만한 사업성이 있는 작품들로 선정된다. 최근에는 OTT나 IP 산업을 겨냥해 2차 저작물 생산에 유리한 스토리 위주의 소설이 다수 수출됐고, 이외에도 한국의 장소성이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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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25.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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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어렸을 적 MC를 꿈꿨다. 큐카드를 들고 온전히 행사를 진행하는 MC 말이다. 초등학교 때 한창 ‘국민 MC’란 별명을 가진 연예인들이 유명했다. 앞에 나서서 말하는 것을 좋아하던 필자는 텔레비전을 보고 MC에 관심이 생겨 장래 희망란에 ‘MC’를 적곤 했다.그러나 중고등학생이 되며 현실적으로 꿈을 이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학구열이 강하다는 지역의 인문계 중고등학교에서 보낸 학창 시절엔 공부가 우선시됐기 때문이다. 주변인 누구도 필자의 꿈을 응원해 주지 않을 것 같았다. 세상은 단지 높은 성적을 받아 좋은 대학을 가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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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25.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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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필자는 우연히 타로를 접하게 됐다. 사주나 타로 같은 운세를 크게 믿지 않았고, 결과에 마음이 흔들릴까 늘 피하곤 했다. 하지만 살다 보면 ‘오늘 점심은 무엇을 먹지?’와 같은 사소한 고민부터, 인생의 방향을 바꿀 듯한 중대한 선택까지 크고 작은 결정의 순간이 찾아온다. 어떨 땐 수많은 선택지 속에서 가볍게 결정을 내리지만, 단 두 가지 길만 놓고 갈팡질팡할 때도 있다. 필자 또한 평온했던 일상에서 문득 무거운 결정을 요구받을 때마다 그 무게에 지치곤 했다. 때론 지금의 선택 하나가 미래를 완전히 바꿀 듯해 불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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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24.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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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과 틀림을 구분하지 못했던 지난날의 다문화적 관점의 결핍이 오늘날 다름을 혐오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혐오의 대상과 틀린 것을 구분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틀리다’란 사실과 맞지 않거나, 하려는 일이 순조롭게 되지 못한 경우 사용하는 동사다. 반면 ‘다르다’란 비교 대상이 서로 같지 않거나 무언가 보통의 것보다 두드러질 때 활용하는 형용사다. ‘혐오하다’란 무엇일까. ‘혐오하다’란 무언가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경우 사용하는 동사다. 우리는 우리와 같지 않거나 누군가의 두드러진 데를 싫어하고 미워한다. 우린 다름을 혐오하기에 이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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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24.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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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겨울 피겨 스케이팅 영상을 시청하고 스포츠가 단순한 신체 운동이 아니라고 느꼈다. 우연히 본 피겨 스케이팅 영상에서 선수는 아름다운 연기를 펼치고 있었다. 처음엔 감동적이었지만 ‘멋지다’란 감상에 그치지 않고 영상을 계속 찾아봤다. 왜 스포츠 경기에서 몇 번이고 반복적으로 감동을 느꼈을까. 이런 감정은 어디서 올까.돌이켜 생각해 보니 피겨 스케이팅 영상에서 느낀 것은 아름다운 동작과 연기뿐만이 아니었다. 선수가 경기의 한 순간을 보여주기 위해 수없이 반복했을 연습의 시간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3분이 넘는 시간 안에 차근차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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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24.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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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宿命)적 사고란 삶을 운명이나 필연적인 결과로 여기는 사고방식이다. 필자는 인생을 숙명적이라 생각했다. ‘세상을 바꾸는 부드러운 힘’을 가진 숙명적인 사람도 따로 있다고 여겼다. 해외에 가보고 싶지만 교환학생으로 떠나긴 두려워 망설이던 중 우연히 본교 게시판에서 ‘글로벌탐방단’ 공고문을 발견했다. 매년 높은 경쟁률을 보이는 교내 활동이기에 최선을 다해 예선을 준비했다. 팀원과 매일 밤 회의하며 기획서를 여러 번 고친 결과 예선을 통과했다. 치열하게 면접을 준비해 본선을 거쳐 최종 합격했다. 분명히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글로벌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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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24.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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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예술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시인 오르페우스(Orpheus)와 그의 부인 에우리디케(Eurydice)의 이야기를 담은 극이기도 하다. 지난 2021년 한국 초연에 이어 2024년 재연으로 돌아왔다. 이번 시즌에선 아시아 최초의 젠더프리(Gender Free) 캐스팅이 이뤄져 여성 헤르메스(Hermes)를 볼 수 있다. 친구가 예매를 도와준 덕에 필자는 가장 좋아하는 배우인 박강현 배우의 오르페우스와 최정원 배우의 헤르메스를 관람할 수 있었다.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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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24.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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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학생 파견 중 기회가 닿아 유명 음악 콩쿠르의 예선을 관람했다. 콩쿠르는 평소 관람했던 공연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긴장감이 가득했고 엄숙함도 느껴졌다. 악기 전공자 중에서도 뛰어난 수준의 연주자들이 참여하는 대회기에 연주가 더욱 기대됐다. 연주자의 실력이 뛰어날 테니 당연히 그들은 큰 무대에도 떨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이는 연주 중 실수했고, 다른 이의 얼굴엔 연주의 아쉬움이 드러났다. 분명 그들은 이 무대를 위해 매우 오랫동안 준비했을 것이다. 예선 곡을 연습하는 기간뿐만 아니라 한 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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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24.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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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통제되지 않는 상황을 싫어한다. 정확히는 예측에서 벗어나는 일을 피하려 한다. 필자와 비슷한 경향의 독자가 있을 것 같아 몇 가지를 말해보자면, 얼마 전 파마를 한 이후론 매일 아침 어디로 튈지 모르는 머리를 마주해야 했다. 이리저리 뻗치는 머리카락이 보기 싫어 아예 묶어버린 적도 많다. 한동안 스트레스를 받다가 결국 뻗치는 부분을 다 잘라버렸다. 새로운 곡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는 곡만 닳도록 돌려 듣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귀에 예측하지 못한 소리가 들려오는 게 무섭기 때문이다. 그림도 흐름에 따라 유연하게 그릴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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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24.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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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초라한 진실보다 환상적인 거짓이 더 나을 수 있다’ 팀 버튼 감독의 영화 (2004)의 명대사다. 이 문장을 보고 필자는 ‘모르는 게 약이다’란 격언을 떠올렸다. 이 말에 큰 울림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반대의 의미를 가진 ‘아는 것이 힘이다’란 격언에도 동의한다. 영화는 이야기하길 좋아하는 아버지 에드워드(Edward)와 그의 무용담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들 윌(Will) 사이의 갈등과 화해를 다룬다. ‘마녀의 유리 눈알에서 본 자신의 죽음’ ‘기묘한 비밀 마을’ 등 에드워드의 이야기는 환상적인 동화에 가깝다.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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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24.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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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B와 D 사이의 C’란 문장으로 설명되는 영화 (2022)를 보며 생각했다. 인생에선 누구나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이 영화에선 배에 힘을 주고도 지나가기 벅찬 골목길마저 선택의 순간이라고 말한다. 이런 사소한 선택도 삶의 궤도를 뒤흔드는 빅뱅을 부른다.영화는 수많은 선택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단 익숙한 교훈에 기발한 상상력을 더한다. 영화에 상상력을 양동이 채 들이부어 멀티버스(Multiverse)를 접목했다. 살면서 마주친 수천만 개의 갈림길은 각각의 다른 인생을 만든다. 그 모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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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24.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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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대’는 필자가 입시 당시 6지망으로 생각한 학교였다. 너무 솔직할지 모르지만 새 학기를 맞아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본교를 6지망으로 생각했단 사실이 이젠 필자에게 중요치 않다. 그 사실은 현재의 필자에 대해 어떤 것도 설명해 주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 필자에게 본교가 6지망 학교에 불과했던 때가 있었다. 본교에서 2년을 보내며 어느새 ‘스며들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스스로가 새삼스럽다.본교 사진 중앙동아리 숙미회(이하 숙미회) 활동을 시작하며 숙명의 역사 속에 들어왔음을 처음 느꼈다. 휴대폰만 들고 사진 몇 장 찍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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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신보
2024.03.04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