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성남시분당고등학교 송가영

길에서 길로

 

 길가에 나란히 선 가로수가 스산함을 떨쳐내며 바람결에 흔들렸다. 높은 하늘 위에 덩그러니 매달린 가로등 불빛에 초록색 나뭇잎 하나하나가 연어 때처럼 반짝였다. 부드럽고 추운 밤이다. 나는 텅 빈 길가 저 멀리를 내다보며 중얼거렸다. 카페 문을 닫고 그 주변에서 괜히 서성거렸다. 마감 시간은 이미 지났지만 간판 불은 아직 환희 빛나고 있었다. 마지막 손님이 오지 않았다. 항상 그 손님과 함께 가게 문을 닫던 탓에, 그녀가 오지 않는 날은 늘 마감시간이 늦어지곤 했다. 새로 산 분홍 원피스 이야기를 하며 크게 웃던 모습이 문득 머리에 스쳤다. 나는 고개를 들어 올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푸르스름하다. 동그랗게 뜬 반달도 아직 옅은 노랑색이다. 어젯밤 가게를 정리하며 봤던 하늘보다 옆은 빛이다. 나는 의자를 꺼내 카페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는 것도 분명치 않은 손님을 마냥 기다리는 모습이 왠지 스스로 낯설게 느껴졌지만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공허한 거리 끝엔 심심한 어둠이 괜히 이곳 저곳 기웃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손 깍지를 끼고 머리 뒤에 받쳤다. 아무도 없는 카페 안에서 두런두런한 웃음소리가 흐르고 온기가 스며 나오는 모습을 머리 속에 그려봤다. 어쩐지 훤한 목덜미가 간지러운 느낌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마감 시간이 한참 지난 새벽녘, 문울 닫은 카페 밖으로 웃음소리가 흘러나오던 것은. 나는 문득 허공 위로 솟아오른 시선 속에 옛날 어느 때를 그려보았다. 희고 둥근 커피잔을 손버릇처럼 매만지는 엄마가 보였고, 라디오의 소음 새로 퍼져 나오는 낮은 수다소리가 들렸다. 눈을 감고 그 상상 속으로 더 깊이, 깊숙이 빠져들다 그저 상상뿐이라는 사실에 눈을 뜰 수 밖에 없었다. 그 땐 웃음소리도, 라디오의 소리도 모두 그쳐 있는 채였다. 갑작스레 훅 들이닥치는 공허감에 나도 모르게 숨을 참아 버렸다.

“아가씨, 나 기다렸죠? 시간도 늦었는데 아직 안 들어갔네요.”

부드러운 음성이 순간 귓속을 파고들었다. 나는 멈췄던 숨을 내쉬었다. 거리 끝에서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아주머니를 보고 나도 모르게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오늘 무슨 날이에요? 오늘따라 너무 반짝반짝 하신 것 같은데.”

나의 말에 그녀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나 오늘 생일이거든. 오랜만에 동창들 만났어요.”

“아, 그러셨구나 어? 그러고 보니까 지금 입고 계신 옷 어제 그렇게 자랑하신 원피스 아니에요?

“생일이라고 괜히 돈 좀 써봤어요.”

“근데 생신 날인데 너무 늦게…… 들어가시는 것 아니에요? 가족 분들 섭섭하시겠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커피잔을 매만졌다. 천장 위에 매달린 조명 아래 홀연히 떠오른 그 모습이 엄마를 떠오르게 했다. 나는 가만히 멈춰 순간 아무 생각 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나도, 그녀도 아무 말이 없었다.

“음…… 집에 가면 아무도 없어요. 빈 집이야.”

  “어디 가시기라도 한 거에요?”

  “남편은 글쎄, 못 본지 꽤 됐고 딸 하나 있었는데 먼저 갔어요. 하늘 위로.”

카페 틈새 속 몰래 숨어 있었던 정적들이 순식간에 뛰어 나와 가게 안을 가득 메웠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죄송해요. 제가 괜히 물어서.”

 “아가씨가 뭐가 죄송해요. 됐어. 그런 표정 짓지 말아요. 정말 괜찮으니까.”

 “딸이 여기 참 좋아했거든 분위기 있다고 그래서 맨날 찾아오는 거에요. 내 옆에 있을 테니까

길 잃지 말고 나 따라오라고 좀 무섭죠? 괜히 얘기했나?”

 “아니요. 아니요. 저는 아주머니께서 항상 오시길래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 했거든요. 따님께서 많이 좋아하셨구나.”

 “예전에 좀 오랫동안 문 닫은 적 있죠? 그 때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맨날 찾아오고 그랬는데 그땐 무슨 일이었던 거예요?

“아……장례 치르고 있었어요. 그때.”

그녀는 순간 잔에서 손을 떼고 나를 바라봤다. 그늘진 얼굴 위에 뜻 모를 어둔 그림자 서린 듯

했다.

“미안해. 이래서 죄송하다고 하는구나. 내가 정말 괜한 걸 물었네.”

옅게 흔들리는 커튼 사이로 공허한 거리가 얼핏 드러났다, 사라졌다. 나는 창문 밖을 내다보며 옛날의 웃음소리와, 라디오 소리를 떠올렸다. 누구나 슬픔 하나를 가지고 사는구나. 나도, 아주머니도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도 창문 밖의 흔들리는 나무를 보며 생각했다. 밖에는 바람이 불고 있을 것이었다. 아주머니도 나처럼 그리운 옛날의 어느 순간을 떠올리며 슬픔에 잠겨 있을 것이었다. 나만의 슬픔이 아니었다. 사실은 모두의 그리움이었고 슬픔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로 향했다. 문을 열고 오늘 남은 케익 한 조각을 꺼내 들었다. 길다란 초 하나를 꼽고 불을 붙혔다. 가만히 앉아있는 그녀가 나를 향해 부드럽게 웃었다.

 “생신 선물이에요.”

케익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박수를 쳤다. 온 가게 안을 메우기에 내 박수 소리는 충분했다. 나 혼자 짊어져야 하는 슬픔은 아무 것도 없었다. 모든 길가에는 같은 하나의 바람이 불듯이.

그녀는 촛불을 후, 불어 껐다. 어깨 위에 가득 쌓아두었던 상념들이 누군가에게 갔고, 또 다른 상념들이 어깨위로 슬며시 다가와 앉았다. 조명아래 빛나는 아주머니의 얼굴 위에 전보다 크고 넓은 미소가 조용히, 다가와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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