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치니 억 하고 죽었다”1980년대는 우리가 드라마로 접하는 모습보다 훨씬 냉혹했다. 평범한 서울대생이었던, 소중한 아들이었던 박종철이 독재정권 하에 목숨을 잃었다. 본교 근처 위치한 차가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였다. 돌아온 답변은 책상을 친 행위에 놀라 사망했다는 황당한 말뿐이었다. 당시 기자로 일하던 신성호 저자는 사망에 의문을 품으며 진실을 파헤쳤다. 보도지침을 어기는 2단짜리의 작은 기사가 발간됐고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불쏘시개가 됐다. 학보사 기자로서 당시 생생함이 옮겨있는 글을 통해 언론 보도의 무거움을 깨닫는다. 우리가
“내가 밤낮없이 짊어지고 있는 더러운 죽음의 기억이, 진짜 죽음을 만나 깨끗이 나를 놓아주기를 기다립니다.”1980년 광주, 총성이 멈춘 뒤에 남은 것은 침묵이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그 고요 속을 떠도는 이들의 목소리를 불러낸다. 이름 없이 쓰러진 사람들의 죽음과 살아남은 자의 기억이 얽혀 만들어낸 서사는 한 사회가 감당해야 할 상처의 깊이를 드러낸다. 진실을 덮은 침묵 속에서도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살아남은 자의 몫이자 사회가 짊어져야 할 윤리다. 소설 속 인물들이 견디는 고통은 특정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
「변신」은 하루아침에 바퀴벌레가 돼 침대 위에서 일어난 그레고르 잠자와 역겨운 그의 모습을 참고 돌봐야 하는 가족의 갈등을 묘사해 인간 존재 의미와 사회적 소외를 그리고 있다. 소설 속 "그를 적처럼 취급하거나 배척하고 싶은 마음을 참는 것이 가족의 의무이고, 결국에는 그의 '존재 자체'를 참아내는 수밖에 없는 것이 가족이 아닌가"란 대목은 가족과 인간의 본질을 생각하게 했다. 작품이 집필된 지 100년이 넘었지만 고독과 소외 문제는 아직 만연하다. 각자의 길을 걷고 있는 사회라도 제일 가깝고 믿을 수 있는 것은 가족이다. 가족의
“삶이 내게 할 말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이 내게 일어났다.”주인공 진희는 12살의 시선으로 어른을 묘사한다. 그는 객관적이고 냉소적 시각으로 자신을 보호하며 어릴 적 엄마의 부재로 느낀 상처를 나름의 방식으로 치유한다. '바라보는 나'와 '보이는 나'를 분리하는 대목은 어른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기에 그 상처가 더 깊게 다가왔다.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삶이 제게 할 말이 있었고 그 나름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성장해 나가는 과정은 어릴 적의 필자를 되돌아보게 하기도 했다. '운명론'을 믿는 필자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
세상이 끝나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사랑이다. 「마지막 증명」은 우주 저편에 있는 양서아에게 끝없이 답장 없는 이메일을 보내는 물리학자 백영의 이야기다. 각 장은 수학적 개념으로 구성돼 있지만 그 숫자 너머엔 마음의 무게와 깊이가 담겨 있다. 18억 명이 사라진 대재앙 속에서도 두 사람은 서로에게 닿지 않는 시간과 공간을 건너 마음의 빛을 보낸다.이 소설은 과학이 다다르지 못하는 영역, 마음이란 미지의 세계를 섬세하게 탐험한다. 백영과 양서아의 이야기는 단순한 SF가 아니라 사랑과 희망을 전하고 절망을 견디는 인간의 굳건한
“입덧은 임신한 여성의 태반에서 비롯된 물질적 현상이며, 인간의 절반만이 임신할 수 있는 몸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여성의 임신을 통해 인류가 유지됐음에도 임신은 여전히 신비로운 영역에 맡겨져 있다” 여성의 몸은 오랫동안 아름답게 여겨졌지만 과학 탐구의 대상에선 배제돼 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체에 관한 대부분의 지식은 남성의 신체를 기준으로 구축됐다. 이 책은 그동안 과학의 영역에서 지워졌던 이야기와 우리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온 남성 중심의 과학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여성은 타인의 시선 속에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닌
세상에 기록되지 않은 자들의 이야기는 얼마나 될까.“한없이 묻혀 가는 이 모든 삶이 기록으로 남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나는 메리 카마이클이 앞에 있기라도 한 듯 일러주었습니다.”여성의 삶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아 짐작과 상상에 의존해야만 했다. 각자가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든 밖으로 꺼내지 않으면 힘을 잃게 된다. 그러나 글을 쓰기 위해선 돈과 방이 필요하다. 이때 '방'은 오롯이 나 자신으로서 존재하는 공간이다. 누군가의 딸, 엄마, 동생이 아닌 독립된 ‘나’로서 존재하는 것의 중요성이 느껴진다. ‘나’로서 존재했던 여러 여성 작가를
삶에서 사랑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세상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존재한다. 외적인 모습에 집착하며 방황하던 저자는 진정한 ‘나’를 위한 삶과 저자가 놓치고 있던 또 다른 사랑을 깨닫는다. 우리는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며 살아가곤 한다. 저자는 “사랑을 찾으면서도 절대로 찾지 못할 것 같다면, 당신은 이미 넘치도록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연애나 성적인 것만이 사랑은 아니다. 서로의 일에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고, 귀를 기울이고, 아무 조건 없이 도움을 주는 사랑이 우리의 곁에 이미 존재할지도 모른다. 청춘의
시대를 아파한 시인으로 짧게 살아간 윤동주의 삶을 소설로 되새겼다. 책 중간에 언급되는 시는 몰입을 높여주고 시인의 고뇌에 같이 빠져들게 한다. 그는 광복 6개월 전 세상을 떠났다. 증언에 의하면 윤동주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의 비명은 어떤 의미였을까. 윤동주가 광복을 맞았다면 어떤 시를 남겼을까.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서시(1941)의 첫 구절이다. 윤동주 서거 80주기인 올해, 소설은 더욱 의미 있게 다가
이 책의 수녀원은 18세기부터 19세기 말까지 소녀들을 감금하고 강제노동을 시킨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세탁소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펄롱은 석탄을 배달하러 간 수녀원에서 착취당하는 소녀를 마주한 뒤, 소녀를 살려줘야 한단 마음과 모른 척 지나가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지나치며 살아간다. 하지만 펄롱은 사소한 것들을 외면하지 않았고 그의 선택은 한 소녀의 삶을 살렸다. 타인을 향한 사소한 관심엔 생명력이 있다. 작은 친절에 구원의 힘이 있음을 작가는
제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세상이다. 그러나 주변을 돌아보면 남들보다 유난히 더 아프고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고통은 과연 개인의 문제일까. 이 책은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요인을 분석하는 학문인 '사회역학'의 관점으로 개인의 상처를 서술한다. 해고된 노동자가 겪는 불안장애부터 성소수자의 자살률까지 다양한 문제를 다룬다. 저자는 질병의 ‘원인의 원인’을 밝히며 개인의 아픔에 대한 책임을 사회에게 묻는다. 아픔은 공평하지 않다. 사회의 구조적인 불평등과 소외된 사람들에 주목하자. 타인의 상처를 개인의 고통이 아닌
태도란, ‘어떻게’라는 살아가는 방식과 가치관의 문제로, 사람을 가장 ‘그’ 사람답게 만드는 고유자산이다. 이 책은 자발성, 관대함, 정직함, 성실함, 공정함이라는 다섯 가지 태도로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삶의 문제를 공유하며 이해한다. 나아가 독자에게 ‘당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태도는 무엇인가’란 질문을 던진다. 작가의 솔직한 텍스트를 읽으며 필자의 삶의 태도를 돌아보게 됐다. 그리곤 용기를 얻었다. 잘될지 잘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경험 없이 성장해 버리면 도망가고 피하게 된다. 부딪히지 않은 채 자신을 단정 짓기만 하는 것은 스
영아는 착한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친구 은주의 말에 따라 재난 지역의 아동을 후원하고, 저렴한 마트 대신 친환경 빵집을 이용한다. 솔직해지고 싶지만 미움받기 싫던 그는 삶에 회의감을 느껴 심리 상담을 받는다. 뇌의 국소 부위를 자극하는 시술 후 그에겐 180도 바뀐 삶이 주어졌다. 영아는 타인의 불행에 웃기 시작했다. 은주에게 모진 말을 던지고, 죄 없는 아이에게 못되게 굴었다. 시술의 효과가 나타나는 마지막 날, 영아는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기존의 자신으로 돌아가길 망설인다.이 책은 ‘통제하는 나’와 ‘통제하지 않는 나’ 중 무엇
‘당신의 언어 온도는 몇 도쯤 될까요’라는 서문에 이끌려 책을 펼쳤다. 언어의 온도는 삶의 온도와 직결된다.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의 온도에 따라 하루의 기분이 결정되기도 한다. 따뜻한 온기의 대화를 하루에 한마디라도 나눈다면 집에 가는 길에 계속 그 말을 곱씹게 되어 좋은 감정이 종일 지속된다. 적정한 온도로 말을 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분주함 속에서 ‘명료한 공백’이 필요하다.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정작 소중한 사람에게 가치 있는 말 한마디를 건네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잠시 멈추더라도 끊임없이 자신과 소통하며 ‘
‘장마는 지속되고 수박은 맛없어진다. (중략) 태양 아래, 잘 익은 단감처럼 단단했던 지구가 당도를 잃고 물러지던 날들이. 말하자면 세계가 점점 싱거워지던 날들이 말이다.’여운 있는 소설을 좋아하는 필자는 어두운 분위기의 이 단편집에 금세 빠졌다. 특히 단편 ‘물속 골리앗’이 유독 마음에 남는다. 성경에선 소년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물리치지만 소설 속 소년은 다윗이 아니다. 소년은 거대한 타워크레인도, 거인처럼 난폭한 물도 대항하지 못한다. 소년의 아버지는 타워크레인에서 시위하다 실족했다. 홍수는 어머니의 시신마저 앗아갔다. 소시민
작가가 말하는 '천 개의 파랑'은 모두의 삶이 파란 하늘처럼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는 우리가 각자의 속도로 달리며 서로의 호흡에 귀 기울이길 원한다.우리는 뒤처지기 무서워 앞만 보고 달리고 있진 않을까. 하늘을 바라보다 낙마한 기수 로봇 콜리는 말한다. '하늘이 그곳에서 그렇게 빛나는데 어떻게 바라보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세상에 무의미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빠르게 달리느라 중요한 존재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각자의 경주로만 있다면 자신의 속도에 맞춰 그것만 보고 달리면 된다. 죽지 않는 한 시
당연하게 여겨지는 말일수록 실천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라’는 말도 그렇다. 주인공인 지은은 마음 세탁소를 운영하며 마을 사람들이 가진 마음의 얼룩을 지워준다. 누구에게나 지우고 싶은 기억이 존재한다. 그 기억을 마주하고 받아들이기란 언제나 힘든 법이다. 다만, 현실엔 마음 세탁소가 없으니 우린 각자의 아픈 기억을 그대로 안고 살아가야만 한다.그러나 문득 인생이 행복만으로 가득 차 있다면 오히려 행복이 무엇인지 모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삶 속에 존재하는 불행은 우리가 행복을 소중히 느낄 수 있도록
책은 천재 바이올린 연주자인 바옐과 그의 유일한 청중이었던 고요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클래식 음악을 즐겨듣는 필자는 책을 읽는 내내 바옐의 바이올린 소리를 실제로 들어보고 싶었다.이따금 바옐의 정신세계와 그에 대한 고요의 집착이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결말에서 긴 여운을 느꼈다. 바이올린 연주를 그만둔 후 바옐은 작은 마을에서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 소녀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친다. 바옐을 찾아온 고요가 소녀와 바옐의 연주를 듣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소녀는 ‘자신의 음악을 이해하는 청중이 없으면 어떡할 거냐’는 바옐의 질문에 ‘
현대사회에서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는 가볍게 여겨진다. 인터넷에 떠도는 ADHD 자가진단과 그 특징을 적어놓은 게시물을 보면 ADHD를 웃어 넘길만한 흔한 질병 정도로 묘사한다. 실상은 전혀 달랐다. ADHD는 벗어날 수 있는 병이 아니다. 평생의 숙제이자 짐이다. 물건을 잃어버리고, 약속에 늦고, 사소한 소리에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25살, ADHD 진단 후 저자의 세상은 무너졌다. 남들과 다른 ‘비정상’이란 생각은 저자를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의 늪으로 이끌었다. 고통의 순간을 끝낸 것은 모순되게도 ADHD였다.
정체 모를 바이러스로 세계가 초토화됐다. 책에선 바이러스의 근원을 설명하는 대신 재난 속 인간의 행동에 주목한다. 바이러스를 피해 러시아를 떠도는 류 가족은 종말 앞에서야 사랑을 마주한다. 바쁜 일상을 이유로 사랑을 미뤄왔지만 재난 상황에선 내일이 없다. 우연히 만난 도리와 지나는 인간성을 잃은 세상에서 서로를 보며 위안을 얻는다. 긴 시간 동안 헤어져 온갖 풍파를 겪을 때도 서로의 미소를 떠올리며 견딘다. 사랑하는 여동생 미소는 도리의 삶의 이유가 된다. 담담한 문체로 만나는 극적인 사랑이 아름답다. 때론 세상이 디스토피아처럼 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