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천재 바이올린 연주자인 바옐과 그의 유일한 청중이었던 고요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클래식 음악을 즐겨듣는 필자는 책을 읽는 내내 바옐의 바이올린 소리를 실제로 들어보고 싶었다.이따금 바옐의 정신세계와 그에 대한 고요의 집착이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결말에서 긴 여운을 느꼈다. 바이올린 연주를 그만둔 후 바옐은 작은 마을에서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 소녀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친다. 바옐을 찾아온 고요가 소녀와 바옐의 연주를 듣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소녀는 ‘자신의 음악을 이해하는 청중이 없으면 어떡할 거냐’는 바옐의 질문에 ‘
현대사회에서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는 가볍게 여겨진다. 인터넷에 떠도는 ADHD 자가진단과 그 특징을 적어놓은 게시물을 보면 ADHD를 웃어 넘길만한 흔한 질병 정도로 묘사한다. 실상은 전혀 달랐다. ADHD는 벗어날 수 있는 병이 아니다. 평생의 숙제이자 짐이다. 물건을 잃어버리고, 약속에 늦고, 사소한 소리에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25살, ADHD 진단 후 저자의 세상은 무너졌다. 남들과 다른 ‘비정상’이란 생각은 저자를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의 늪으로 이끌었다. 고통의 순간을 끝낸 것은 모순되게도 ADHD였다.
정체 모를 바이러스로 세계가 초토화됐다. 책에선 바이러스의 근원을 설명하는 대신 재난 속 인간의 행동에 주목한다. 바이러스를 피해 러시아를 떠도는 류 가족은 종말 앞에서야 사랑을 마주한다. 바쁜 일상을 이유로 사랑을 미뤄왔지만 재난 상황에선 내일이 없다. 우연히 만난 도리와 지나는 인간성을 잃은 세상에서 서로를 보며 위안을 얻는다. 긴 시간 동안 헤어져 온갖 풍파를 겪을 때도 서로의 미소를 떠올리며 견딘다. 사랑하는 여동생 미소는 도리의 삶의 이유가 된다. 담담한 문체로 만나는 극적인 사랑이 아름답다. 때론 세상이 디스토피아처럼 느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는 프랑스어로 맞춤형 고급 의류를 의미한다. 본교 동문 시인 이지아는 강렬한 색채 대비를 지닌 시어를 활용한다. 시집을 펼친 순간의 첫인상은 난해하지만 시인의 세계 속으로 한 걸음 디디면 이내 마음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마치 독자를 위한 ‘맞춤형 시’란 생각이 든다. 시인의 작품은 무한한 가능성을 잠재한 예술처럼 보인다. 시 속에서 화자와 타인은 짐승이 되기도, 물건이 되기도, 곤충이 되기도 한다. 당연해 보였던 일상이 서로 맞부딪히고 깨진다. 조각난 파편엔 독자의 삶이 투영되기도 한다.
과외 교사인 주인공 경진은 수업 중 학생 해미의 고민을 무시했다. 이후 해미의 가출에 경진은 불편한 마음으로 예정된 휴가를 떠난다. 그는 사흘간의 휴가 동안 만난 사람들에게 저마다의 내밀한 사연을 듣게 된다. 소통과 공감에 소극적이던 경진은 듣는 사람으로서 휴가를 보낸 후 점차 다정한 청자로 거듭난다.말하고 쓰는 사람은 반드시 듣고 읽는 사람이어야만 한다. 남들이 듣지 않는 이야기를 듣고자 할 때 좋은 화자가 될 수 있다. 더 많이, 더 깊이 듣는 본지가 되자. ‘사라졌던 사흘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에 앞서 무엇이 잊히지 않
학교나 직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주변 사람에게 ‘잘한다’, ‘대단하다’라는 말을 듣는 인생이 좋은 인생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지금 인정 욕구라는 굴레 속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책은 ‘인정 욕구’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저자는 ‘인정 욕구’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남에게 인정받고 싶다’ ‘미움받고 싶지 않다’란 마음. 현대인은 이 욕구가 너무 강해 스스로를 옭아맨다. 인정이란 모호한 환상이다. ‘타인의 눈에 비친 나’로 살며 주변의 평가로 인생의 가치를 매기는 것. 저자는 인정의 굴레에서 벗어나
필자는 인간의 삶을 담은 다큐를 좋아한다.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의 일상이 궁금하다. 각자의 경험으로 일궈진 삶엔 활자를 통한 배움 이상의 것이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여행하며 보고 들은 것들을 있는 그대로, 일련의 다큐처럼 녹여 냈다. 5개월 동안 배낭만 메고 전국 여행하기. 저자의 도전은 우리나라 각지의 지방 음식을 먹어보리란 생각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방문해 농사 일손을 돕고 시골 밥상 한 끼를 함께했다. 저자가 방문하는 곳은 주로 시골에서 농사짓는 어르신 댁이다. 저자는 여유로운 동네에서 주민들과
여행객의 시선에선 만물이 아름답다. 어느 것도 무심코 지나칠 수 없다. 낯선 곳이 주는 새로움은 무척이나 소중하다. 여행은 지겨울 만큼 익숙한 환경을 떠나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특별한 기회다. 식사 메뉴 하나에도 깊은 고민을 담는다. 그 한 번의 기회가 소중하기 때문이다. 직접 보고, 듣고, 느껴야만 얻을 수 있는 감정이 있다. 마음을 꾹 눌러 담은 사진엔 이 순간을 붙잡고 싶은 간절함이 드러난다. 책에선 여행할 수밖에 없는 지구의 매력을 호소하는 ‘작가 지구인’을 만날 수 있다. 여행자만 느낄 수 있는 미묘한 흥분과 여행을 마칠
그해 우리는 서로의 섣부름이었습니다, ‘선잠’. 작가는 자신의 삶에서 큰 행복이나 불행일 수 있는 순간을 타인에게 고작 ‘섣부름’이란 단어로 소개한다. 이 대목에서 작가가 일상을 얼마나 일상답게 받아들이고 즐겼는지 알 수 있다. 섣부름이란 때론 어설프지만 애틋하고, 익숙하지 않지만 뜨겁도록 열정적이다. ‘우리’의 끝이 뿌리 깊은 나무일지, 심은 지 하루 채 되지 않은 나무일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끝엔 사랑이 남았다. 미련이 없었기에 이런 울림의 글을 적었으리라 생각한다. 더해야 할 말도 덜어낼 기억도 없는 그해 여름의 일입니다,
‘물건들이 제자리에 없다… (중략) 나와 함께하는 삶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일까, 틈만 나면 다른 자리를 알아보러 다니는지도 모를 일이다’우릴 스쳐 간 모든 것들의 이야기다. 우리가 즐겨 사용하는 사물에 대한 간단한 산문이 여러 편 엮어있다. 책에선 사물을 인격화하기도 하고 골똘히 그 존재에 대해 고민하기도 한다. 사물의 물리적 쓰임에서 그들의 존재 자체로 시선을 옮겨간다. 그들의 시선으로 우릴 바라보기도 하고, 우리의 관념을 그들에게 대입하기도 한다. 시선을 새로 두고 생각하며 무언가의 이면을 들여다본다는 것. 세상에 정해진 건 아
‘계속해보겠습니다’. ‘소라’와 ‘나나’ ‘나기’의 이야기는 이 문장으로 연결된다. 이들은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아주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덤덤하게 풀어나간다. 모든 존재는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몫만큼 애써 살아간다. 작가는 그 모든 사소한 움직임 하나도 누군가에게 전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도 타인의 기준이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계속 살아가길 바라며.학내보도부 차장기자 김민경
몬순은 계절풍이다. 동시에 거세게 내리는 비다. 희곡 속 인물들에게 몬순은 각각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살갗이 찢기는 듯한 고통을 주기도, ‘내가 지금 이곳에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기도 한다. 전쟁이 다른 단어로 환원될 수 없는 그냥 전쟁이듯, 몬순도 그저 몬순이다. 각 인물은 전쟁의 안과 밖, 그리고 옆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교차하고 중첩되는 대사와 무대는 인물 사이를 휘감는 바람과도 같다. 작가는 전 지구적 전쟁과 폭력 속에서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질문한다. 사려 깊은 물음들은 모두가 전쟁과 무관하지 않다고 이
누군가가 ‘사람’이라고 말하는 건 어떤 의미인가. 사회 구성원으로 기능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 사람의 자격을 빼앗는 세상이다. 사소한 차이가 혐오의 근거로 둔갑하는 오늘날, 책에서 말하는 ‘절대적 환대’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타인을 배제한 채 ‘내 자리’를 고집하는 건 어쩌면 모순일지 모른다. 우리 모두 새로 태어나 이 세상에 왔으며 언제든지 이방인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배경을 뒤로한 채 타자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그가 사회적 성원권을 얻을 수 있게 인정한다면 환대는 완성된다. 칸트(Kant)는 영구 평화를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조지 오웰(George Orwell)이 그리는 디스토피아엔 털끝만큼의 희망도 없다. 절망 속 유일했던 오브라이언과의 신뢰가 참혹한 거짓으로 변하고, 줄리아와 이었던 순수한 사랑의 끈이 목을 조르는 올가미가 된다. 이런 가혹한 통제와 감시 속에서 편안하게 살아가는 방법은 당에 완벽하게 세뇌당하는 것, 또는 철저하게 굴복하는 것뿐이다.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작은 시도, 변화, 개혁, 혁명은 큰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변화를 꾀하려던 마음을 총살하는 것으로 최후의 굴복을 선택한 「1984」의 윈스턴. 반면 동료 간 연대와 탈출을 끊임없
책의 첫 수록작인 '엘리제를 위하여'는 앤솔러지(Anthology)에 수록된 소설을 수정한 것이다. 해당 단편을 먼저 접한 뒤 만난 「이어달리기」는 성희의 편지처럼 반갑게 느껴졌다. 성희는 다양한 인연으로 만난 조카들에게 미션이 적힌 편지를 꾸준히 보낸다. 조카들은 미션을 수행하고 보상을 받으며 더 넓은 세상으로 발 딛는다. 어른이 되어서도 녹록지만은 않은 삶을 사는 조카들에게 성희는 마지막 미션을 보낸다. 다시 뛸 힘을 얻은 조카들은 또 다른 이들에게 성희의 다정함을 이어준다. 대가 없이 타인을 응원하는 다정함의 이어달리기 속에서
정말 말하고 싶지만 목구멍 끝에 걸려 나오지 않는 말이 있다. '그 말은 꺼내면 안 된다'는 무언의 압박 속에 숨어 있어야 할 때도 있다. 그럴 때 우린 이루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을 느낀다.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은 문장이 많지만 말더듬증이 있어 단 한 마디도 꺼내지 못한다. 그래서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일기는 이야기가 되고, 소년은 어느새 자신을 위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된다. 이 소설은 표면적으론 열네 살 소년이 언어 교정원에 다니면서 장애를 극복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