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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의 여러 취재를 동행하며 한 주에도 수많은 인터뷰이를 만난다. 그중 가장 신나는 과정은 인터뷰다. 누군가의 생각을 듣는 시간은 소중하고도 즐겁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을 만나 함께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공감대를 발견하기도 한다.취재원이 인터뷰에 답변하기 위해선 바쁜 일과 중 특별히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이를 알기에 본지를 위해 시간을 내준 인터뷰이를 만나면 몇 번이고 감사의 말을 전한다. 사실 이 말만으론 마음을 다 설명할 수 없다. 그럼에도 감사하단 표현이 최선인 것 같아 연신 같은 말을 반복하곤 한다.
편집장의 말
함채린 기자
2024.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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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여론면의 주제는 모든 구성원이 참석하는 회의로 결정된다. 특히 논제에 대한 찬성과 반대 의견을 들어보는 코너인 ‘솔솔한 대화’ 주제는 더 예민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찬성 혹은 반대편의 의견이 사회에 유해한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의에선 어떤 화제가 가장 중요한지, 학우들에게 알릴 가치가 있는지 치열하게 따져본다. 이때 늘 염두에 두고 있는 중요한 가치가 있다. 해당 논제에 대한 의견을 나눌 땐 그 무엇도 소외되지 않아야 한단 점이다. 지난해엔 노키즈존(No Kids Zone)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았다. 노키즈
편집장의 말
함채린 기자
2024.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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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부터 본지는 한 학기에 5회 발행한다. 신문 인쇄비 인상으로 발행 부수도 기존 2500부에서 2000부로 줄었다. 기존 체제였던 한 학기 8회 발행을 힘겹게 이어가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러나 발행 횟수가 줄어 업무가 비교적 수월해졌음에도 마음이 가볍진 않다. 본지 기자 부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결과였기 때문이다.학보사의 사정이 필자가 활동하는 이 시기만 어려운 것은 아니다. 인원 부족과 독자의 무관심 속에서도 본지는 꾸준히 자리를 지켜왔다. 발간 축소 계획을 논하며 본지의 미래를 떠올렸다. 필자가 그 미래를 지켜
편집장의 말
함채린 기자
2024.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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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좌우명은 ‘열정 없이 살 바엔 죽는 게 낫다’는 의미인 ‘Rather be dead than cool’이다. 늘 열정적인 삶을 원했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본지 활동엔 한동안 열정을 불태우지 못했다. 고된 활동 일정을 탓하며 ‘애증’이란 말을 우스갯소리로 내뱉었다. 바쁜 일상에선 핑계를 일삼았다. 현실적인 한계를 토로하며 매사 최선을 다할 수 없는 이유만 변명처럼 늘어놓았다. 동시에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에도 꿋꿋이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이들을 동경했다. 최고의 결과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곧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다. 최선의
편집장의 말
함채린 기자
2023.1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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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 정답이 있다고 믿었다. 정답이 곧 최고라고 생각했다. 타인이 정해둔 답에 맞춰가며 안도감을 느꼈다. 스스로 길을 개척할 필요가 없으니 마음이 편했다. 어린 시절엔 정답을 찾는 것도 쉬웠다. 동그라미 가득한 성적표만 있으면 최고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신문이 어려웠다. 매번 새로운 일을 마주하며 올바른 답을 만들어 내야 했기 때문이다. 8면의 신문을 완성하기 위해 수천 번의 선택을 마주하며 어느 것이 정답인지 고민했다. 매번 막막함에 한숨지었다. ‘내가 틀리면 어떡하지’란 상념에 사로잡혔다. 신문을 만드는 과정은 혹독하다
편집장의 말
함채린 기자
2023.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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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종착지다. 필자는 5월을 끝으로 지난 2년 6개월간의 활동을 마무리한다. ‘대학에 왔으니 열심히 살아보자’는 막연한 목표 하나로 본지에 입사했다. 그러나 숙대신보는 어느새 대학 생활의 전부가 됐다. 마지막으로 이곳에 필자의 흔적을 남긴다고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한다.신문을 만드는 과정은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 기삿거리를 정하고, 취재하고, 글을 쓰고, 지면을 구성해 완성하기까지 길고 험난하다. ‘발간’이란 목적지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어떤 파도가 장애물이 돼 우릴 덮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목적지에
편집장의 말
권지은 기자
2023.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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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를 중히 여기는 마음. ‘책임감’의 사전적 의미다. 사람마다 이 단어를 어떻게 정의하는지는 조금씩 다를 것이다. 최근 필자는 책임감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봤다.필자에게 책임감이란 ‘내가 하지 않으면 안되는’ 감각이다. 필자는 본지에 입사해 활동하며 그를 뼈저리게 배웠다. 책임감 없인 취재부터 기사 작성까지 어느 하나 제대로 해낼 수 없다. 기자의 태만과 무책임은 신문의 질 저하와 직결된다. 다른 구성원에게 피해를 주는 건 물론이다. 필자가 하지 않으면 동기와 선배가 그 짐을 대신 짊어져야 한다. 포기하고
편집장의 말
권지은 기자
2022.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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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 더 레코드(Off the Record)’ 인터뷰 중 취재원이 기사에 실리지 않길 원할 때 하는 말이다. 대개 오프 더 레코드를 위친 뒤 나오는 말은 사건의 신뢰도를 높이는 내용 또는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에 해당한다. 기자로부터 기사에 싣지 않는단 확인을 받아낸 취재원은 녹음기에 담길까 우려돼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 과정에서 사건에 대한 기자의 이해도는 높아지고 추가 취재에 대한 실마리를 얻기도 한다. 문제점은 가끔 오프 더 레코드가 ‘오프 더 에티켓(Off the Etiquette)’으로 변한단 점이다. 오프
편집장의 말
정가현 기자
2022.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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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리도 열심히 사는가. 남 부러울 것 없는 삶, 보장된 노후, 내 집 마련 등의 꿈을 품은 또 하나의 이력서가 오늘도 휘발된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왔건만 매번 들려오는 건 탈락이란 씁쓸함이다. 조금 더 쉽게, 남들보다 빠르게 성공에 도착할 수 있는 지름길이 있다면 누가 마다할까. 물론 그 지름길이 ‘평등한’ 지름길이라면 말이다.정계에서 고위직을 차지하려면 ‘자녀 검증’이 필수인 시대다. 상대가 맘에 들지 않으면 일단 자식부터 물고 늘어진다. 상대가 맘에 들 일은 없으니 이는 비단 한 당의 이야기는 아니다. 안
편집장의 말
정가현 기자
2022.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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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시간마다 부모님을 곤란하게 하는 아이들이 있다. 필자도 어렸을 땐 몰래 밥을 전부 뱉어버린 적도 있을 만큼 밥 먹기를 싫어하는 아이였다. 유치원을 다닐 때 가장 싫었던 것은 점심시간이었다. 음식이 가득 남은 식판을 앞에 두고, 밥을 다 먹은 친구들이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해야 했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은 다 먹기만 하면 나가 놀 수 있다고 말씀하셨지만 서러운 마음에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숟가락은 절대 들지 않았다.그랬던 필자가 요즘엔 식사 시간을 기다리는 날이 늘었다. ‘같은 집에서 살며 끼니를 함께하는 사람’
편집장의 말
이유민 기자
2021.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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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피안의 법칙’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우리의 사고에 영향을 준다고 설명하는 이론이다. 언어는 우리의 인식에서 나오는 동시에 우리의 인식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는 것이다.“아니, 근데, 진짜, 시x”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글을 통해 누리꾼 사이에서 ‘한국인의 4대 문장 시작 요소’로 알려진 네 가지 어휘다. 필자는 그 글을 읽고 그저 웃어넘길 수 없었다. 언어를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언어가 사람의 사고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서도 무의식중에 그러한 언어를 남발해왔다는 것이 못내 부끄러웠다.편집장으로서 다른
편집장의 말
이유민 기자
2021.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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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기억을 떠올려 본다. 대부분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다니던 아동 시절을 떠올릴 것이다. 필자에겐 아직 걷지 못하던 시절 바닥을 기어 다니다 식탁 의자에 이마를 찧고 울음을 터뜨린 기억이 있다. 또 말을 하지 못하던 시절 눈앞의 어머니께 말을 건넬 수 없어 답답해하던 기억도 있다.분명 누군가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할 테다. 필자도 어느 정도는 왜곡된 기억이리라 생각한다. 어린 시절의 사진들을 모아둔 앨범이나 부모님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만든 착각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몇몇 희미한 착각을 빼고서라도 필자는 아주 어릴 때 실
편집장의 말
이유민 기자
2021.03.15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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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를 청에 봄 춘. 만물이 푸른 봄철이라는 뜻마저도 예쁜 단어 청춘靑春. 사전에선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젊은 나이로 정의되는 말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 정의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누구에게나 인생에서 가장 푸르른 시기가 비슷하게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지금이 가장 푸를지, 혹은 앞으로 더 환하게 피어날지조차 알 수 없다. 단순히 살아온 세월의 햇수만으로 누군가의 인생을 마지막이라 이르기엔 저마다 지닌 이파리와 꽃봉오리와 뿌리들이 너무나 아깝지 않은가. 몸속의 물관에 다시는 푸른 기운이 흐르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드는 순간
편집장의 말
이유민 기자
2021.03.07 2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