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후 화장실에 가서 배에 힘을 빡 줘, 그럼 다 나가서 임신이 안 돼’ 이는 MBN 예능 프로그램 ‘어른들은 모르는 고딩엄빠3’에 등장하는 남자친구가 여자친구에게 콘돔 사용을 거부하며 내뱉은 말이다. 이렇듯 일부 사람들은 잘못된 피임 지식을 갖고 있다. 질외사정, 월경주기법과 같이 실패율이 높은 피임법이 그 예다. 피임법은 임신 예방뿐만 아니라 월경통 완화, 월경 주기 조절, 성매개질환 감염 예방 등 다양한 측면에서 여성의 건강을 돕는다. 여성이라면 꼭 알아야 할 피임에 대해 샅샅이 파헤쳐 보자. 


여성이 짊어진 피임의 무게
피임은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하기 위한 방법이다. 질병관리청과 국립보건연구원의 ‘2023년 제5차 여성건강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임기 여성 중 81.5%가 피임을 실천하고 있다. 여성에게 이뤄지는 피임법은 월경주기법과 약물, 기구, 영구 수술로 나눌 수 있다. 13~39세 여성 중 36.6%가 사용하는 월경주기법은 가장 많이 사용되는 피임법이다. 월경주기법은 임신이 가능한 배란기에 성관계를 피하는 피임법이지만 18.4%의 실패율을 지닌다. 약물, 기구, 영구 수술을 이용하는 피임법은 95% 이상의 효과가 발생하지만 여성의 몸에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여성에게 위험했던 과거 피임법은 점차 안전하게 발전했다. 기원전 1800년경 고대 이집트인은 악어의 똥을 벌꿀이나 열매와 혼합해 경단처럼 만든 후 여성의 질 안에 삽입했다. 피임 성공률은 약 50%였지만 여성의 질에선 악취가 났고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감염되기도 했다. 중세 유럽에선 임신을 피하기 위해 백합 뿌리를 여성의 포궁에 넣었다. 백합 뿌리는 피부에 알레르기를 일으키고 성기를 손상시켰다. 약 100년 전 미국에선 피임과 임신 중지가 불법이었다. 당시 여성들은 위험하고 불법적인 임신 중절로 목숨을 잃었다. 간호사 마거릿 생어(Margaret Sanger)는 ‘산아제한 운동’을 벌이고 피임 클리닉을 열어 여성에게 올바른 피임법을 가르쳤다. 이후 1960년 생물학자 그레고리 핀커스(Gregory Pincus)와 함께 최초의 경구피임약을 만들었다. 피임약 에노비드(Enovid)는 미국 식약처 FDA 승인을 받아 여성들은 이전보다 안전하게 임신을 피할 수 있었다.

광고는 여성에게 피임의 책임을 전가한다. 매체에서 피임약 광고는 손쉽게 볼 수 있는 반면 콘돔 광고는 찾아볼 수 없다. 피임약 광고에선 여성에게 ‘피임약을 먹는 여성이 진취적이다’란 프레임을 씌운다. 2017년 공개된 동아제약 피임약 ‘마이보라’ 광고의 슬로건은 ‘난 내가 선택해, 사랑도 완벽해야 하니까’다. 광고에서 여성은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여성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A 학우(이하 A 학우)는 “피임약 광고 문구는 ‘진취적인 여성이 되기 위해선 피임약 부작용쯤은 감수해야 한다’란 메시지를 담고 있다”며 “여성의 일방적인 노력을 강요한다”고 말했다. 반면 남성용 콘돔은 신체에 특별한 부작용이 없지만 까다로운 방송 심의 기준과 필요성이 제기되지 않는단 이유로 광고하지 않는다. 2019년 3월 식약처가 발표한 ‘의료기기법 위반 광고 해설서’에 따르면 ‘센스만점 필수 아이템’에서 ‘필수’는 절대적 표현이므로 광고에서 사용할 수 없다. 이처럼 콘돔에겐 엄격한 방송 규제가 나타난다. 2019년 5월 여성가족부와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펴낸 ‘제3차 청소년보호종합대책(2019~2021) 수립을 위한 기초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콘돔 교육 및 광고는 경구피임약에 비해 미흡하다. 이는 피임의 책임을 여성에게 떠넘기고 성행위 자체를 비행으로 여겨 건전한 성문화 형성을 저해한다.

부작용에도 마지못해
여성에게 이뤄지는 다양한 피임법 중 경구피임약은 여성의 배란을 방해해 임신을 막는다. 경구피임약엔 에스트로겐(Estrogen)과 프로게스틴(Progestin)이 함유돼 있다. 에스트로겐은 난자의 성숙을 억제해 배란을 막는다. 프로게스틴은 포궁 경부를 두껍게 만들고 점액의 정도를 증가시켜 정자의 진입을 막는다. 경구피임약은 호르몬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21일간 매일 같은 시간에 복용해야 한다. 경구 피임약은 임신 예방 외에 ▶월경통 완화 ▶월경주기 조절 ▶다낭성난소증후군 ▶월경과다 시에도 사용할 수 있다. 경구피임약 복용 시엔 부작용도 주의해야 한다. 대표적인 부작용으론 메스꺼움, 구토, 부정 출혈이 있다.

성관계 후 복용하는 응급 피임약은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만 구매할 수 있다. 복용 시기는 성관계 후 3일까지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임 실패 확률은 높아진다. 성관계 이후 24시간 이내 복용 시 피임 실패율이 5%, 18시간 이내는 15%, 72시간 이내는 42%다. 응급 피임약에 포함된 고농도의 프로게스틴은 배란을 억제하고 포궁 경부 점액을 변화시켜 정자의 통과를 방해한다. 전문의약품인 응급피임약은 고농도의 호르몬이 들어있어 부작용이 크다. 부작용엔 무월경, 구토, 두통, 어지러움이 있고 유방암, 포궁경부암의 위험도 존재한다. 

포궁 내 기구인 루프(Loop)와 난관 수술은 신체에 부담이 크지만 피임 성공률이 높다. 포궁에 루프를 삽입하면 3~5년간 99%의 피임 효과를 볼 수 있다. 루프는 호르몬인 레보노르게스트렐(Levonorgestrel)을 방출한다. 해당 호르몬은 포궁 내막을 얇게 만들고 수정란 착상을 막는다. 또한 포궁 내막이 얇아지면서 월경량, 월경통 감소 효과도 나타난다. 특히 루프는 포궁에 호르몬을 방출하기 때문에 월경량이 급격히 줄어들거나 완전히 중단되는 부작용도 존재한다. 여성의 영구 피임법엔 난관 수술이 있다. 수술로 난소와 포궁을 연결하는 난관을 차단한다. 난관 수술엔 전신마취와 개복이 이뤄지기 때문에 신체적인 부담이 크다. 이후 난관 복원 수술을 하더라도 임신 성공률이 낮다.

성관계의 쾌락은 동등하지만 그에 대한 부담은 오로지 여성의 몫이다. 피임의 책임은 남녀 모두에게 있다. 그러나 피임에 대한 불안은 대체로 임신이 가능한 여성이 느낀다. 알보젠코리아의 경구피임약 브랜드 머시론이 2018년 20대 여성 200명을 조사한 결과 93%(186명)가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불안감을 느껴본 적 있다’라고 답했다. 여성은 확실한 피임법을 사용해도 월경 예정일에 월경이 시작하지 않는 순간 엄청난 불안감에 휩싸인다. A 학우는 “올바른 피임을 해도 월경이 늦어지거나, 몸에 크고 작은 변화가 생기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는다”고 말했다. 

함께하는 똑똑한 피임
여성과 남성 모두 피임에 책임을 가져야 한다. 콘돔이 쾌락을 감소시킨단 이유로 사용을 거부하는 남성도 있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한국 여성 건강조사’에 따르면 13~39세 여성의 25.8%(194명)가 ‘상대방이 원하지 않아서 콘돔을 사용하지 않았다’라고 답했다. 백서영 인구보건복지협회 출산지원과장은 “피임은 여성만의 일이 아니다”며 “내가 소중한 것처럼 상대방의 소중함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 역시 ‘안전한 피임법’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안전한 피임법은 피임 성공률이 낮은 질외사정이나 월경주기법을 제외한 피임법이다. 질외사정과 월경주기법은 도구를 따로 사용하지 않는 피임법이기 때문에 실패 가능성이 높다. 질병관리청이 조사한 ‘2023년 한국여성건강통계 5차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의 안전한 피임 실천율은 47.3%로 세계 가임여성의 안전한 피임 실천율인 77%에 비해서 현저히 낮다. 

피임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선 적절한 성교육이 우선시돼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성교육은 정규 교육과정으로 편성돼 있지 않다. 또한 성교육에선 콘돔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콘돔 선택법이나 착용 방법 등 세부적인 내용은 가르치지 않는다. 실제로 크기가 맞지 않거나 잘못된 사용법으로 야기된 콘돔 실패율은 18%다. 알맞은 크기의 콘돔을 제대로 착용하면 실패율은 2%까지 내려갈 수 있다. A 학우는 “학교 성교육에서 남성의 피임법은 들어봤지만 피임약 복용과 같은 여성의 피임에 대해선 배운 기억이 없다”며 남성 중심의 피임 교육을 지적했다. 2019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전국 중학생 406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소년 성교육 수요 조사’에서 학교 성교육을 받은 응답자 중 34.1%(1382명)의 응답자는 ‘학교 성교육이 도움 되지 않았다’라고 답했다. 청소년의 부족한 성 지식은 미성숙한 성적 접촉을 유발할 수 있다. 천희란 중원대 보건행정학과 부교수는 “안전한 피임을 위해선 현실적인 성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며 “나이와 성별을 고려한 체계적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올바른 피임에 대해 더 배우고 싶다면 성 건강 상담이나 교육을 찾아볼 수 있다.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웹사이트 ‘러브플랜(Loveplan)’을 운영해 ▶성 건강 정보 ▶전문가 상담 ▶피임 교육을 제공한다. 사이트에서 이용자는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성 고민을 전문가에게 상담할 수 있다. 백 과장은 “상담에선 ‘갈색 분비물이 나왔는데 임신 가능성 있나요?’와 같은 고민을 질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청소년의 경우 여성가족부의 성교육 전문기관인 ‘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 도움받을 수 있다. 기관에선 학습자에게 알맞은 시청각 교육과 참여형 성교육이 이뤄져 건강한 성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다.


피임은 여성에게 중요한 안전망이다. 여성은 피임이란 안전망으로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을 가질 수 있다. 피임약을 꾸준히 복용하거나 성관계마다 피임 도구를 준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귀찮아서’ ‘불편해서’ ‘남자친구가 원하지 않아서’ 피임을 외면한다면 자신의 몸을 포기하는 결과를 낳는다. 여성의 자유와 건강은 안전한 피임법으로부터 온다.

참고문헌
박은자,최승아,전진아,천희란. (2023). 한국 여성의 건강 관리 현황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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