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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는 지속되고 수박은 맛없어진다. (중략) 태양 아래, 잘 익은 단감처럼 단단했던 지구가 당도를 잃고 물러지던 날들이. 말하자면 세계가 점점 싱거워지던 날들이 말이다.’
여운 있는 소설을 좋아하는 필자는 어두운 분위기의 이 단편집에 금세 빠졌다. 특히 단편 ‘물속 골리앗’이 유독 마음에 남는다. 성경에선 소년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물리치지만 소설 속 소년은 다윗이 아니다. 소년은 거대한 타워크레인도, 거인처럼 난폭한 물도 대항하지 못한다. 소년의 아버지는 타워크레인에서 시위하다 실족했다. 홍수는 어머니의 시신마저 앗아갔다. 소시민인 소년의 가족은 자본에 맞설 수 없고 인간은 자연의 복수를 당해내지 못한다. 현대 사회를 관통하는 은유를 곱씹다 보면 비극적인 소설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박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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