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일(수) 아시아여성연구원 국제학술대회 '지속가능한 개발과 젠더혁신: 젠더 이슈의 도전, 재조명, 확장'이 성황리에 막을 올리고 촬영한 단체 사진이다.

본교 아시아여성연구원이 올해로 창립 60주년을 맞이했다. 지난 11일(수)부터 12일(목)까지 아시아여성연구원의 국제학술대회가 본교 백주년기념관에서 개최됐다. 아시아여성연구원의 지난 60년을 되돌아보면서 이번 국제학술대회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보자.


아시아여성연구원의 발자취
아시아여성연구원은 과거 1960년 여성 연구를 수행하는 기관으로서 국내 최초로 설립됐다. 장민선 아시아여성연구원 원장은 “아시아여성연구원이 세워지던 때는 대학 졸업 인구 중 여성의 비율이 1.5%에조차 미치지 못하던 시대였다”며 “아시아여성연구원은 여성에 관한 연구가 미진하던 과거의 한국에서 여성의 가능성에 주목해 세워진 기관이다”고 말했다. 아시아여성연구원은 처음엔 아세아여성문제연구소로 세워졌다가 지난 2017년 다문화통합연구소와 합쳐지며 아시아여성연구원으로 승격됐다. 현재 아시아여성연구원은 성평등과 함께 다양한 약자를 포용하는 사회통합 실현을 목표로 꾸준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아시아여성연구원에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아시아여성연구원은 지난 2016년부터 2017년까지 ‘학교 성희롱.성폭력 사건처리 표준매뉴얼 개발 연구’를 수행했으며 지난 2017년엔 ‘학교 성폭력 2차 피해 예방을 위한 사안처리 전문성 강화 방안 연구’도 진행했다. 두 연구 모두 학교 기관에서 성폭력 범죄가 발생 시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한 대응 방침을 제안하는 연구다.

아시아여성연구소는 지난 2008년부터 국내 결혼 이주 여성의 주체적 한국 생활을 지원하는 여러 사업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해당 사업의 일환으로 결혼 이주 여성들은 아시아여성연구소는 결혼 이주 여성들을 대상으로 글을 가르친다. 장 원장은 “여성은 국적이나 거주지와 무관하게 자신이 원하는 언어를 사용할 권리가 있다”며 “한국어 뿐 아니라 이주 여성들의 모국어도 교육한다”고 말했다. 결혼 이주 여성 지원사업은 최근 이주 여성의 자녀로 참가 대상을 넓혔다. 지난 2019년 진행된 ‘하나금융나눔재단 다문화가정 자녀지원사업’이 여기에 해당한다.

아시아여성연구원에선 교육 사업도 수행한다. 지난 2019년과 올해 진행된 ‘서울시 고교-대학연계 지역인재육성사업’은 서울 내 지역 간 교육 격차 해소를 목표로 한다. 아시아여성연구원은 해당 사업으로 강북 지역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과학기술, 인문사회 분야의 전문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장 원장은 “본교는 지역인재 양성과 더불어 여성인재 양성에 꾸준히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18년 운영된 ‘경기도 젠더스쿨(Gender School)’도 성역할 고정관념을 개선해 혐오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려는 목표로 진행된 교육 사업이다.

아시아여성연구원은 학문적 논의의 장을 형성하는 데에도 노력하고 있다. 아시아여성연구원이 매년 개최하는 국제학술대회는 올해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현장 참가자가 최대 20명으로 제한됐다. 아시아여성연구원은 화상 회의 전문 프로그램 ‘앤빌노트(ANVILNote)’로 온라인 참가자들에게 현장 영상을 실시간으로 송출했다. 질문은 채팅창을 통해 가능했고 질문에 대한 답은 추후 아시아여성연구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외국에 거주해 이동이 어려운 발표자가 녹화 영상으로 발표를 대체하기도 했다.


페미니즘을 이어나가기 위해
첫째 날 진행된 세션은 지속가능한 페미니즘을 주제로 구성됐다. 지난 2015년 국제 연합(United Nations, 이하 UN) 소속 국가들은 오는 2030년까지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이하 SDG)’를 달성하기로 합의했다. 성평등은 17개 SDG 항목 중 5번이다. 이는 여성의 권익을 향상시켜 성평등을 이루는 일이 국제적으로 요구될만큼 필요하다는 의미로 풀이될 수 있다.

청년여성운동과 정치전략
_조주현 계명대 정책대학원 여성학과 교수

조 교수는 여성학 방법론을 전공한 학자이자 경북·경남 지역에서 페미니즘의 세부 지침을 만드는 여성 활동가다. 세션에서 조 교수는 한국여성운동의 한계를 돌아보며 이를 넘어설 전략으로 아고니즘(Agonism) 정치를 제안했다. 아고니즘 정치는 상대와의 끊임없는 면대면 대화로 이뤄진다. 아고니즘 정치는 후기 근대 시기에 사회 변화를 가능케하는 전략이 된다. 후기 근대 사회에선 근대 사회의 독재 정권과 같은 단일한 저항 대상이 없다. 따라서 정치 운동은 개인 단위의 격렬하지 않은 저항으로 나타난다. 이때 사회 전체에 영향을 끼칠만한 큰 변혁을 위해선 개인 각자의 사회적 실천이 같은 목표를 향해야 한다. 대화를 방법으로 하는 아고니즘 정치가 필요한 부분이다. 조 교수는 “어떤 정치 전략이 유효하려면 그 전략에 대한 다른 사회 구성원의 반응에 맞춰가야 한다”고 말했다.

빅데이터, 인공지능, 젠더의 미래
_이지은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이 교수는 여성학의 관점에서 과학기술, 의료 등 다양한 분야를 바라보는 연구자다. 세션에서 이 교수는 미국 IT 기업 아마존(Amazon)의 채용 인공지능이 여성 지원자의 이력서를 감점한 사례를 들며 데이터 편향 문제를 지적했다. 이 교수는 “가치와 무관하다고 여겨지는 영역에서도 온갖 부작용이 발생한다”며 “기술과학, 의료 등에 아무런 가치가 개입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기술을 개발할 때 사회에 부정의하고 해로운 영향을 끼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페미니즘 대중화’ 시대에 생각하는 대학 여성학 교육
_전희경 이화여대 여성학과 초빙대우교수

전 교수는 지난 2002년부터 현재까지 약 12개 대학에서 여성학 강의를 진행해왔다. 전 교수는 교육 현장에서의 경험에 비추어 대학 여성학 수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전 교수는 ‘페미니즘이 소셜네트워킹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이하 SNS)를 통해 구성되고 있다’며 ‘교수자가 SNS와 교육 현장을 연결할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이어 전 교수는 페미니즘을 SNS가 아닌 대학 강의로 배울 때의 이점을 조명했다. 대학 강의에서 학생들은 매 시간 똑같은 학우들과 한 학기 동안 만난다. SNS에서보다 긴 시간을 함께 보내는 학생들은 수업 공동체 안에서 서로 지속적으로 의견을 나누고 자신의 잘못된 발언을 수정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 첫 번째 세션인 '지속가능한 페미니즘' 발표가 끝나고 토론이 진행 중인 모습이다.


여성주의가 불러온 과학계의 혁신
학술대회 두번째 날은 과학기술계의 젠더혁신을 주제로 한 세션으로 막이 올랐다. 젠더혁신은 과학 분야에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할 때 성-젠더 분석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이다. 론다 슈빙어(Londa Schiebinger) 스탠포드대(Standford Univ.) 교수는 여성을 포함한 전 인류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목표로 젠더혁신을 제안했다.

생명과학분야에서의 젠더혁신
_본교 김성은 식품영양학과 교수

김 교수는 영양유전체학 연구자로 생명과학 연구에서 성·젠더를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지지한다. 세션에서 김 교수는 약물 부작용이 여성에게 부정적으로 편향된 사례를 제시했다. 이는 약물의 전임상·임상시험의 표본이 수컷 혹은 남성으로만 구성됐기 때문이었다. 김 교수는 “여성이 임상시험에서 배제된 역사가 유구하다”며 “임신이 가능한 여성의 신체에 임상시험이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른다는 이유에서다”고 말했다. 김 교수의 발표에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학계의 노력도 제시됐다. 미국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NIH)은 연구비 지원 조건으로 연구에서 성을 하나의 변수로 고려할 것을 요구한다.

과학기술 젠더혁신 교양교과목이 성·젠더 인식발달에 미치는 효과
_본교 김경옥 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김 교수는 지난 2019년 본교 기초교양학부 소속으로 ‘4차산업혁명과 젠더혁신’ 강의를 진행했다. 세션에서 김 교수는 해당 강의 수강생 4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 결과를 공유했다. 성·젠더 교과목의 효과를 분석하기 위해 김 교수는 설문조사를 이용했다. 설문지는 젠더혁신 인식을 측정하는 5개 문항과 젠더혁신 실천을 측정하는 5개 문항으로 구성됐다. 학생들은 개강 직후인 2주차와 종강 시점인 15주차에 각각 한 번씩 설문지에 응답했다. 이후 두 시점의 응답을 비교한 결과 모든 문항에서 학생들의 15주차 점수가 2주차 점수보다 높았다. 이는 해당 강의를 통해 학생들의 젠더혁신에 관한 인식 및 실천이 향상됐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김 교수는 “학생들이 과학, 기술, 그리고 공학 분야의 문제 해결에 있어서 윤리적 요소만이 아니라 성·젠더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공학 교육과 젠더혁신(Engineering Education and Gendered Innovations)
_마은정 포항공과대학교 창의IT융합공학과 초빙대우교수

마 교수는 과학기술 분야를 사회학적이고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연구한다. 세션에서 마 교수는 과학, 기술, 그리고 공학 분야에서 여성을 소외시키는 몇 가지 요소로 개발자의 자기중심적 사고(I-Methodology)를 지적했다. 개발자의 자기중심적 사고는 개발자가 자신이 만든 제품을 사용하는 모든 사람이 그와 같은 흥미나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짐작하는 사고 방식이다. 마 교수는 ‘개발자도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으로 세상을 보고 그에 기초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든다’며 ‘여성을 배제하는 기술이 등장하는 건 개발자 중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아 직업 문화나 사회가 그들을 중심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여성, 일상 속 평등을 만들다
둘째날 오후엔 여성권한 강화와 일상화를 주제로 한 세션이 진행됐다. 여성권한 강화와 일상화는 여성의 인권을 법률로 보장할 뿐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그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예술과 테크놀로지에서의 젠더 공간(Transgressing gendered spaces in art and technology)
_주디스 에스칼로나(Judith Escalona) 연출가

에스칼로나 연출가는 미디어아트 대안공간 미디어노체(Media Noche)에서 전시를 구성한다. 미디어노체에선 주로 여성 작가의 전시가 진행되며 미술계에서 소외되는 여성 뉴미디어 아티스트의 작품을 소개한다. 미디어노체는 미국 뉴욕의 소외된 지역인 스패니쉬 할렘(Spanish Harlem)에 있다. 일부 방문객은 에스칼로나 연출가에게 사람이 많고 안전한 곳으로 미디어노체를 옮기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그러나 에스칼로나 연출가는 “스패니쉬 할렘에 존재하는 것은 우리의 과거 그리고 현재 정체성의 핵심이다”고 말했다.

문화와 젠더: 성평등 문화정책의 방향
_류정아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류 선임연구위원은 문화계 종사 여성의 처우를 살피는 연구자다. 류 선임연구위원은 세션에서 문화계 종사 여성이 처한 열악한 상황을 객관적 통계 자료로 제시했다. 성별에 따른 예술활동 수입 차이, 지원금 수혜금액의 차이, 문화계 전공 졸업생의 성별에 따른 취업률 등에 관한 통계자료를 보였다. 류 선임연구위원은 “많은 사람이 문화계 종사자와 소비자 대부분이 여성이라고 생각한다”며 “문화계에서 여성의 환경을 잘 모르는 동시에 문화계 종사 여성의 환경이 열악하다는 진실을 알려줘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문화계에서 여성이 차별당한다는 주장이 감정적 주장으로 여겨지는 만큼 객관적 자료 사실을 주장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 주디스 에스칼로나(Judith Escalona) 연출가가 사전에 녹화된 영상으로 발표를 진행하는 모습이다.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No one is left behind). 아시아여성연구원의 이념을 관통하는 한 문장이다. 아시아여성연구원은 연구, 교육 그리고 나눔을 목표로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모두와 함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장 원장은 “모든 임기 동안 아시아여서연구원의 목표를 재정립하고 확장하고자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장 원장의 말처럼 아시아여성연구원이 소외된 모두를 포용할 수 있기를 바라며 앞으로도 아시아여성연구원의 활발한 활동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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