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칼럼]

사전에 ‘Kafkaesque’를 검색하면 ‘카프카적인, 부조리하고 암울한’이란 뜻이 나온다. 단어의 유래인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엔 억압과 소외가 담겨 있다. 작품이 탄생한 요인 중 하나로 그의 복잡한 정체성이 있다. 카프카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령이던 프라하에서 태어나 독일어를 사용한 유대인이었다. 작가가 유대인으로서 시오니즘의 태동기에 살던 점을 주목해 단편 「자칼과 아랍인」을 해석해 보고자 한다.

소설 속 화자는 사막에서 자칼 무리에 둘러싸인다. 자칼은 긴 시간 동안 화자를 기다려 왔다며 아랍인과의 오랜 싸움을 끝내달라고 요청한다. 이후 아랍인을 공격할 가위를 가져오며 그들의 피를 취하면 싸움이 끝난다고 울부짖는다. 그때 아랍인이 등장해 자칼을 비웃으며 낙타 사체를 가져온다. 자칼 무리는 낙타 고기에 이성을 잃고 주린 배를 채우는 데 몰두한다.
“그것은 물론 유명한 이야기지요. 아랍인이 존재하는 한, 이 가위는 사막을 돌아다닐 것이고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우리와 함께 돌아다니게 될 것이오”

소설은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이주 역사와 함께 해석할 수 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에 일어난 드레퓌스 사건은 유럽의 반유대주의를 드러낸다. 이후 시오니즘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들은 조상이 살던 팔레스타인 영토를 향해 이주했다. 카프카는 이 소설을 1916년에 썼고 영국은 유대인 국가 건설을 긍정하는 벨푸어 선언을 1917년에 발표했다. 혼란스러운 시기에 카프카는 유대인으로서 시오니즘에 복잡한 감정을 가졌던 것 같다. 

아랍인과 영토를 두고 대립하는 자칼은 유대인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아랍인을 몰아내고 땅을 차지하려는 시온주의자로 볼 수 있고 작가는 이에 회의를 느낀 것 같다. 나라 없는 민족으로서 억압당한 만큼 국가의 필요성은 그도 깊이 공감했겠지만 원래 살고 있던 아랍인을 쫓아낸다면 새로운 억압과 피해자가 생길 뿐이다.

유럽인 화자는 시온주의자 동료의 설득에도 동조하지 않던 카프카로 해석할 수 있다. 그의 친구 막스 브로트는 시온주의자였고 이스라엘에 정착했다. 또 자신의 글을 태우란 유언에도 카프카의 저작을 출판했다. 카프카는 존경받는 작가가 됐지만 브로트가 남긴 원고는 이스라엘과 독일이 얽힌 국제 소송전으로 번졌다. 생전 복잡한 정체성으로 소외를 느낀 작가를 생각하면 ‘카프카적인’ 아이러니가 아닌가.

작가는 아랍인이 존재하는 한 가위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서술했다. 씁쓸하지만 그 말대로 가위는 사라지지 않았고 여전히 날카롭다. 지난달 21일(목)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숨진 팔레스타인인 중 83%는 민간인이라고 보도했다. 같은 달 29일(금) 미국 정부는 팔레스타인 대표단이 9월 뉴욕 유엔 총회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입국 비자를 취소했다.

카프카가 2025년 세계의 참상을 본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 이 시대의 우린 희망과 연대로 가위를 녹일 수 있는가. 승리는 보장되지 않으나 포기할 수 없다.


중어중문 24 이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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