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 연휴에 가족들과 함께 중국 후난성 서북부에 있는 장가계로 여행을 다녀왔다. 북경에서 비행기로 2시간 20분 걸리는 장가계는, 이곳에 살고 있는 토가족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여행지이다. 키가 작고 단단하게 생긴 토가족들은 1965년까지 산적 활동을 하다 중국정부의 정책으로 농사와 생업에 종사하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현재 농사는커녕 자신들만의 언어와 글도 없이 문명의 혜택과 떨어져 살고 있다.


필자가 토가족을 처음 만난 곳은 장가계 국가 삼림 공원 안에 있는 보봉호수였다. 호수를 구경하기 위해 산길을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산 위에서 짧은 외침과 함께 대나무 가마를 진 토가족들이 마치 다람쥐처럼 후다닥 내려왔다. 그들은 어르신들에게 ‘가마를 타고 가는데 천원’이라며 호객 행위를 했다.


이후 관광객에게 ‘천원’을 외치는 토가족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아름답고 웅장한 절벽, 드넓은 호수와 폭포, 토가족 처녀들의 민속춤과 청년들의 소림무술에 감탄하며 ‘아!’ 소리를 연발하는 사이, 토가족 아저씨가 어느새 한 사람 한 사람 사진을 찍어 열쇠고리를 만들고 있었다. 아저씨가 ‘천원!’하며 내 얼굴이 나온 사진으로 만든 열쇠고리를 흔드는데 어찌 안 살 수 있었을까. 나중에는 가는 곳마다 내 얼굴이 나온 열쇠고리를 만들어 파는 바람에 천원을 내는 대신, 얼굴을 가리는 방법을 택하긴 했지만 말이다.


호수를 모두 구경한 뒤에도 토가족의 ‘천원’의 외침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발이 아파 개울에 발을 담그고 있었더니 토가족 아줌마들이 다가와 안마를 해주겠다고 했다. ‘천원!’이라고 외치길래 천원을 주고 발을 맡겼다. 그러나 왼쪽만 해주고 오른쪽은 해주지 않았다. 알고 보니 한 쪽에 천원이었다. 항상 물건을 먼저 받고 천원을 주라던 현지가이드의 말을 잊은 결과였다. 그러나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상술이라고 하기엔 토가족의 모습이 어색하면서도 순수했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천원이 한 끼 식사도 해결할 수 없는 적은 돈이지만, 토가족에겐 한 달 생활비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한 현실에서 나는 매번 그저 웃으면서 천원을 건넸다. 천원이면 세상을 다 가진듯한 행복한 표정을 짓는 토가족의 순수한 모습이 변치 않길 바라면서 말이다.


이은지(경영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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