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필자가 숙대신보 입사를 다짐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필자는 3학기를 앞둔 시점에서 숙대신보에 몸담게 됐다. 숙대신보와 약속한 4학기를 수료한다면 필자는 어느새 4학년이 돼 있을 것이다. 지원서를 작성할 때, 주변에서 조금 늦은 감이 있지 않느냐는 걱정의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남들보다 조금 늦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필자는 뒤늦게 시작한 이가 늦었음에 한탄하며 떠난 이보다 앞서있다고 생각한다. 기회를 놓치고 후회하고 싶지 않아 망설임 없이 숙대신보에 발을 들이게 됐다. 시간은 결단을 지체하는 자를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일주일’, 하나의 기사를 완성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다. 숙대신보에 들어오기 전에 접했던 기사라곤 스포츠면의 짧은 브리핑이 전부였다. 독자의 이목을 끄는 것에 집중한 스포츠 기사들만을 읽어왔던 필자에게 숙대신보 기자로서 작성해야 하는 기사는 익숙하지 않았다. ‘담백하고 깔끔하게 모든 정보를 담아라’ 기사가 요구하는 ‘담백하게’가 역설적으로 얼마나 복잡한지 기사를 집필하면서 깨달았다. 두서없이 늘어졌던 초고가 기사로 변하는 과정에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때마다 숙대신보에 입사할 때 가졌던 변하지 않을 마음으로 변화하는 세상을 담백하게 담아낼 것을 다짐하곤 한다.

‘한 달’, 주마다 한 번씩 총 4번의 발간이 이뤄진 시간이다. 발간을 진행했던 지난 9월, 한 달 동안 약 15번의 인터뷰 요청을 했다. 숙대신보에선 다양한 주제의 기사를 다루는 만큼 여러 직업군을 만나볼 수 있었다. 인터뷰이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긴 답변과 마주할 때마다 그들이 자신의 분야에 갖고 있는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열정은 그 어느 것보다 뜨거워 쉽게 전이된다. 그들의 열정은 고스란히 필자에게 전해져 기자 생활의 원동력으로 이어졌다.

‘앞으로의 시간’에 숙대신보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숙대신보는 마치 배움의 광맥과도 같아서 끝없는 학습이 이어진다. 범람하는 배움의 강에 잠식되는 것을 꿈꾸곤 했던 필자에게 이보다 적합한 곳은 없을 것이다. 어디서 이렇게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경험을 해보겠는가. 필자는 숙대신보 기자로서 배웠던 경험의 산물과 매 순간을 추억하고 환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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