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온라인 서점은 매주 한 번씩 일정 금액 이상을 구매하면 10%를 할인해주는 쿠폰을 메일로 보내는 홍보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도서정가제의 시행 이후로 불가능해진 대형 할인 행사를 대체하기 위해서다. 지난 2014년 마지막으로 개정된 도서정가제는 현재 3년마다 진행되는 제도의 재검토를 앞두고 있다. 출판업계를 활성화하고 소비자에게 양질의 도서를 제공하기 위해 도입됐던 도서정가제는 지금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도서 가격 ‘얼음'
도서정가제는 책이 정가 이외의 가격에 판매되는 것을 규제하는 제도다. ‘출판문화산업 진흥법’(이하 출판법) 제22조 제4항에 따르면 도서는 출판사가 정한 정가대로 판매되는 것이 원칙이다. 동조 제5항은 독서 진흥과 소비자 보호를 위한 경우엔 도서를 정가에서 일부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도서정가제는 지난 2003년 온라인 판매에서 출간된 지 1년 미만인 도서의 10% 이상 할인을 규제하면서 처음 도입됐다. 이후 지난 2007년, 할인 규제 대상이 출간 18개월 미만의 도서로 확대됐으며 오프라인 서점도 도서정가제 적용 대상에 포함됐다.

지난 2014년 개정된 현행 도서정가제는 발매일과 무관하게 온·오프라인으로 판매되는 모든 도서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단, 출판법 제22조 제2항에 따라 발매일부터 18개월이 지난 도서의 정가는 출판사가 다시 책정할 수 있도록 하는 재정가 제도가 보장된다. 또한 출판법 동조 제4항과 제5항에 따르면 판매자가 가격할인 또는 소비자에게 추가로 제공하는 경제상의 이익의 합을 정가의 15% 범위에서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 이때 가격할인율은 10% 이내여야 한다. 출판법 제22조 제7항에 따르면 경제상의 이익이란 마일리지나 상품권과 같은 부수적인 추가 혜택을 뜻하며 이는 정가의 5%를 초과해 지급될 수 없다.

도서정가제는 출판문화산업의 지원·육성과 간행물의 심의, 건전한 유통 질서의 확립을 목적으로 도입됐다. 판매 가격의 규제는 중·소규모의 서점과 출판사를 대형 온라인 서점과의 가격 경쟁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 이는 지역 서점을 활성화하고 중·소규모 서점과 출판사가 소비자에게 다양한 분야의 도서를 제공할 수 있는 출판문화로 이어지도록 한다. 출판사가 정한 가격으로 유통되면 출판사와 서점의 ‘잘 팔리는 도서’에 대한 집중도를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도종환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은 “도서정가제는 도서 시장을 지속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며 “도서 시장의 유지는 출판계의 다양화와 문학계를 비롯한 작가들의 창작 활동의 지속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고 설명했다.

출판업계는 도서정가제의 도입 목적에 동의하는 입장이다. 박성모 소명출판 대표는 “도서정가제가 중·소규모 출판사의 지속과 다양한 출판물 등장에 일정 부분 도움 되는 것은 분명하다”며 “도서정가제의 기본 취지를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지난 4일(수) ‘도서정가제 사수를 위한 출판·문화계 공동대책위원회’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도서정가제 개정안의 현행 유지를 환영한다는 입장문을 공개했다. 해당 입장문은 지속적인 논의와 협의를 통해 도서정가제를 안정화할 것이란 내용을 담았다.

도서정가제 시행으로 도서 가격이 비교적 높게 형성되면서 소비자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 김지수 (문헌정보 19) 학우는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책을 구매할 때 할인되지 않은 가격에 부담을 느껴 구매를 망설이게 된다”며 “도서정가제의 도입 취지는 바람직하지만 소비자로선 도서정가제를 호의적으로만 보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반품 도서나 오래된 도서에 도서정가제를 적용하는 것에 문제를 삼기도 했다.

현행 유지로 안정화 도모하다
지난 3일(화)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오는 20일(금) 3년 주기의 도서정가제 재검토 시한을 앞두고 도서정가제의 새로운 개정 방향을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도서정가제가 출판업계에 미친 긍정적인 효과를 고려해 큰 틀에서는 현행과 같이 유지하되 출판시장 변화 등을 반영해 세부사항을 조정한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도종환 문화체육관광위원회장은 지난 5일(목) ‘문화산업 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 했다.

개정안에선 출판사의 재정가 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해 재정가 허용 기준이 18개월에서 12개월로 단축된다. 도 위원장은 “정가 변경이 반드시 가격 인하를 의미하진 않는다”며 “재정가 허용 기준을 변경하는 것은 출판시장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한 조치다”고 설명했다. 또한, 재정가제도를 활용한 정가 인하 행사를 개최해 소비자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양질의 도서를 구매할 기회를 제공한다. 박 대표는 “신간 도서가 주목받는 기간은 일반적으로 약 6개월이며 길어도 1년을 넘지 않는다”며 “정가를 낮춰 판매해 봤지만 판매율에 큰 변화는 없었다”고 말했다.

개정안은 현행 제도를 유지하며 세부사항을 조정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도서정가제의 안정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변경되는 세부사항은 ▶공공기관 및 공공도서관에 대한 가격할인 제한 ▶정가 판매 의무 위반에 따른 과태료의 차등 부과 ▶전자 출판물 정가 표시 완화가 포함됐다. 공공기관 및 공공도서관은 경제상 이익 제공 대상에서 제외돼 10%의 가격할인만 받을 수 있다. 또한, 기존엔 정가 판매 의무를 위반한 횟수와 관계없이 3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으나 개정 후엔 1차 위반 시 300만원, 2차 위반 시 400만원, 3차 위반 시 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전자 출판물의 정가 표시 의무는 완화된다. 기존엔 작품의 모든 개별 회차에 정가를 표시해야 했던 것과 달리, 개정안이 반영되면 작품정보란과 같이 소비자가 쉽게 찾을 수 있는 위치에만 정가를 표시한다.

문체부는 전자 출판업계 및 소비자와의 논의를 통해 급변하는 전자 출판물 시장의 특성에 적합한 도서정가제를 적용할 계획이다. 현재 전자책은 종이책의 약 70%에 해당하는 가격으로 판매하도록 권장되고 있다. 도 위원장은 “전자 출판물에 대한 할인율을 확대하는 것은 종이책 시장에 타격을 줄 수 있다”며 “웹툰과 웹소설에 정가제를 적용하지 않는 경우엔 신인 작가와 무명작가에 대한 착취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반면 성인규 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협회장은 “2013~2014년 본격화되기 시작한 웹소설은 1화씩 연재되는 방식으로 비교적 도서정가제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다”며 “웹소설엔 기존 종이책과 전자책에 맞춘 도서정가제가 아닌 새로운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자 출판계, 도서정가제 ‘완전’ 도입 이뤄지나
도서정가제는 현재 전자 출판물에도 일부 적용되고 있다. 전자 출판물은 전자 매체를 통해 출판된 작품을 뜻하며, 전자책과 웹툰·웹소설 등을 포함한다. 2009년 도서관법 제21조가 신설되면서 필수적으로 전자책은 같은 내용의 종이 간행물과는 별개의 국제표준번호(International Standard Book Number, 이하 ISBN)를 발급받도록 규정됐다. ISBN은 원래 종이책의 도서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붙이던 고유번호다. 전자책이 출판법의 규제를 받는 도서정가제의 대상이 된 것이다.

현재 웹툰·웹소설도 도서정가제의 적용 범위에 완전히 포함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치열하다. 웹툰·웹소설은 연재가 종료돼 완결된 전자책의 형태로 출판된 경우 ISBN을 발급받아 왔다. 지난해 2월 28일(목)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전자 출판물의 ISBN을 작품당 등록 원칙에서 회차별 등록 원칙으로 변경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또한, 전자 출판물을 포함해 모든 출판물에 ISBN 발급을 의무화하기 위해 ISBN 미발급 출판물에 과태료를 부과한다. 이에 웹툰·웹소설 업계는 웹툰·웹소설에도 도서정가제를 완전 적용하는 것에 반대했다. 성 협회장은 “ISBN을 종이책과 성격이 다른 전자 출판물의 규제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면 신인 작가의 등용문이 좁아지는 등의 부작용만 따를 것이다”며 “ISBN을 적용하되 웹툰·웹소설은 물론 전자책도 도서정가제에서 예외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자 출판물이 도서정가제에 포함에 대해 전자 출판업계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이들은 도서정가제가 전자 출판물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한 제도라고 주장했다. 전자 출판물은 종이책과 비교했을 때 유통 과정뿐 아니라 시장의 성격도 다르다. 종이책은 서점을 통해 판매되는 반면 전자 출판물은 플랫폼을 통해 판매된다. 종이책 시장은 출판사와 서점 사이의 경쟁 구도를 유도할 수 있지만, 전자 출판물 시장에선 종이책과 달리 자율성이 높아 경쟁 구도가 만들어지기 어렵다. 성 협회장은 “종이책 시장은 도서정가제를 통해 대형 출판사와 서점의 독점을 막고 과도한 경쟁을 제한할 수 있다”면서도 “전자 출판물 시장은 오히려 규제로 인해 발전이 더뎌질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성 회장은 “기존의 도서정가제가 아닌 전자 출판물을 위한 새로운 가격 책정 제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전자 출판물 소비자들의 도서정가제를 향한 반대의 목소리는 꾸준하다. 지난해 10월 14일(월)부터 11월 13일(수)까지 진행됐던 국민청원 ‘도서정가제의 폐지를 청원합니다’는 약 20만9천명의 동의를 얻었다. 본 청원은 전자 출판업계가 지역 서점 활성화를 위해 적용되는 도서정가제의 대상이 아니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신수빈 (화공생명공학 18) 학우는 “전자 출판물은 일시적으로 정보를 대여하는 것과 같아 종이책과 동일한 규제를 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도서정가제의 시행으로 전자 출판물의 가격이 높아지면 불법 공유가 늘어날 위험이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새로운 출판 매체가 등장하면서 출판 시장이 소비자에 영향을 미치는 범위도 넓어졌다. 도서정가제는 확장된 출판업계의 다양한 콘텐츠를 포괄하는 제도인 만큼 여러 이견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여러 협회가 제기하는 검토 사항에 대한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도서정가제는 앞으로도 도서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본래의 의의를 추구하는 동시에 제도의 혜택에서 소외된 전자 출판계의 입장까지 고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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