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나는 나의 시에게 부탁한다. 나의 시여, 될수록 멀리, 멀리까지 날아가서 될수록 많은 사람들을 만나거라. 그래서 그들에게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되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그 무엇이 되어라.부디 유명한 시가 되지 말고 유용한 시가 되어라.' 나태주 시인의 산문집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 속 내용이다. 나 시인은 자신의 시가 유명해서 읽는 것이 아닌 유용해서 읽는 것이길 바란다. 우리와 다르지 않은 그의 일상을 통해 안부를 전한다. 거리에 핀 소박한 풀꽃처럼 위로를 전하는 나태주 시인을 만나 보자.

사랑을 쓰는 시인, 나태주
나태주 시인은 1945년생으로 일제강점기 해방 직후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의 역사를 살아왔다. 나 시인의 생업은 초등교사였다. 당시 초등교사는 사범학교를 졸업하는 즉시 임용돼 안정적인 생활이 보장됐다. 이러한 이유로 나 시인의 아버지는 초등교사를 생업으로 권했다. 나 시인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교사를 했어요”라며 “의무감에서 한 일이었기에 오히려 끝까지 할 수 있었죠”라고 말했다. 그가 장난기 많은 제자에게 잔소리를 하다 영감을 얻어 「풀꽃」을 창작했다는 사실은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진 일화다.

나 시인은 사랑의 가치를 중시하는 시인이다. 그는 “16살 때 한 학생에게 시를 통해 사랑을 표현한 경험을 계기삼아 시를 쓰기 시작했어요”라며 “무엇인가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현재까지 시로써 전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나 시인의 시가 대중에게 읽히면서부터 그의 마음속 한 대상만으로 했던 시의 의미가 독자들에게까지 전해졌다. 나 시인은 “한 사람을 위한 연애편지가 세월이 흘러 보편성을 갖게 돼 많은 독자에게 전해질 수 있었어요”라고 덧붙였다.

나 시인의 시가 대중에게 오래도록 사랑받는 것은 바로 그의 끊임없는 소통 덕분이다. 그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다양한 세대를 대상으로 한 여러 강연을 다녔으며, 방문 강연을 통한 젊은 세대와의 소통은 그가 시에 위로를 담는 계기가 됐다. 나 시인은 “제 개인적인 욕구만을 반영한 시를 쓰다가 젊은 세대의 고민을 직접 듣고 시의 방향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어요”라며 “마음 둘 곳이 없는 요즘 사람들에게 기댈 곳을 주는 시를 쓰기로 했죠”라고 말했다.

쉽게 읽히는 시로 독자에게 위로를 건네다
나 시인은 시를 쓰는 데 있어 특권 의식에 사로잡히는 태도를 가장 경계한다. 나 시인은 “시를 쓸 때 스스로 잘난 척하지 말자고 생각해요”라며 “잘난 척하지 않는 방법은 나와 남 사이에 선을 긋지 않는 거예요”라고 말한다. 나 시인은 좋은 시인에 관해 이야기하며 달걀의 비유를 들었다. 나 시인은 시인이 자신을 딱딱한 껍데기 속에 가둬선 안 된다고 말한다. 나 시인은 “시인이라면 스스로 껍데기를 깨어 달걀 프라이가 돼야 해요”라며 “많은 사람의 배를 채워 그들 삶의 자양분이 되는 것이죠”라고 말했다.

나 시인은 자신을 국민 시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한 분야를 대표하는 사람을 국민 ‘무엇’으로 지칭한다. 어떤 사람은 나 시인의 「풀꽃」이 연령, 시대 등을 초월하는 작품이므로 나 시인도 국민 시인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 시인은 “타인이 보는 나태주와 본인이 보는 나태주가 다를 수 있어요”라며 “저는 국민 시인이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나 시인은 그가 생각하는 국민 시인으로 윤동주 시인을 꼽았다. 그는 “윤동주 선생은 한국인의 가장 깨끗한 정서를 순우리말로 아름답게 표현하신 분이에요”라며 “시로 애국을, 나아가 독립운동까지 했던 시인도 윤동주 선생이죠”라고 말한다. 일제강점기는 우리말, 우리글을 빼앗겨 많은 문인이 일본어로 작품 활동을 하던 시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동주 시인은 그의 모든 시에서 일본어를 단 한마디도 사용하지 않았다. 나 시인은 윤동주 시인의 「쉽게 쓰여진 시」를 읊기도 했다. 해당 작품에서 나 시인이 주목한 표현은 ‘육첩방’이다. 현재도 ‘다다미방’이라는 일본어로 통용되는 말을 윤동주 시인은 육첩방으로 고쳐 표기한 점에 대해서도 나 시인은 감탄을 표했다.

구어, 즉 입말로 시를 쓰는 것은 나 시인과 윤동주 시인의 공통점이다. 나 시인은 “시에 쓰이는 언어는 본래 입말에서 왔어요”라며 “윤동주 선생의 시가 오늘날까지 널리 읽히는 이유도 입말로 썼기 때문이죠”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입말로 쓰인 나 시인의 시는 독자들이 쉽게 몰입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나 시인의 목표는 독자가 쉽게 공감하는 시로 위로를 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나 시인은 소재를 일상에서 찾고 가능한 짧은 문장을 사용한다. 장황한 해설 없이도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시를 쓰려는 나 시인의 신념이다. 그는 “마음 맡길 곳 없는 세상에서 기댈 수 있는, ‘마음의 의자’ 같은 시를 쓰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대, 기죽지 말고 살기를
시를 접하는 것은 코로나 블루(Corona Blue)를 이겨내는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코로나 블루는 코로나19 장기화로 달라진 일상이 지속되며 겪는 스트레스, 우울감 등을 지칭하는 신조어다. 나 시인은 코로나 블루가 기존에 있던 현대인의 우울이 코로나 시대에 깊어진 것으로 본다. 지금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각자 고립되고 대인 간 유대가 약해진 때다. 나 시인은 “시인들이 옛날의 일상을 떠올리게끔 하는 시를 써줘야 해요”라고 말했다. 대면 만남이 어려워진 코로나 시대, 사람과 사람이 나란히 걷는 일은 불가능할지라도 시는 오랫동안 사람의 곁에 머무를 수 있다.

나 시인은 도전을 망설이는 이들에게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를 추천한다. 코로나19로 취업이 더욱 어려워진 요즘이다. 그런 때에 많은 사람이 택하는 길을 억지로 가기보다 새로운 선택을 할 수도 있다. 나 시인은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읊으며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택한 프로스트의 용기가 젊은 친구들에게 전해지면 좋겠어요”라고 바랐다. 나 시인은 무리에서 떨어진 것 같아 잠깐은 불안해도 종착점은 같으니 괜찮다며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한 사람들을 위로한다. 한편 나 시인은 “대중적인 선택도 비난하지 말아야 해요”라며 “각자 삶의 길이 다르니까 서로 존중하는 거죠”라고 말했다. 이렇듯 나 시인은 자신만의 길을 선택을 한 사람이든, 모두와 함께 가는 길을 선택을 한 사람이든 모두를 응원하고 있다.

시인을 꿈꾸는 이들에게 나 시인은 삶의 경험 속에 시가 있다고 조언한다. 이는 시를 위한 시를 쓴다고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건 아니라는 의미다. 나 시인의 시가 많은 이들을 위로할 수 있는 이유도 그의 삶으로 엮어낸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는 “시만 쓰려고 해서는 시인이 될 수 없어요”라며 “시를 쓰는 것만으로 생계유지가 어렵다면 생업도 병행하며 살고 그러다 삶이 쌓여 좋은 시가 되는 거죠”라고 조언했다. 이어 나 시인은 “시를 쓰는 것엔 끝이 없기에 시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느긋한 마음을 가지길 바라요”라고 덧붙였다.


'아이들은 아이들을 보고/ 젊은이들은 젊은이들을 보는데/ 자꾸만 노인들이 나를 흘낏거린다// 그렇지만 나는 아이들을 보고/ 젊은이들을 본다' 나태주 시인의 「늙은 시인」이라는 시다. 본지 기자단과 만남에서 자신을 ‘늙은 시인’이라 소개했던 나 시인은 이 시의 화자와 닮아있다. 시와 강연을 통해 젊은 세대를 걱정했고, 위로했고, 응원했다. 오늘도 그는 젊은 세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자 시를 쓴다. 풀꽃같이 소박한 우리의 삶을 위로하는 나 시인의 작품활동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지난 5일(목) 서울 충무로에서 인터뷰 중인 나태주 시인과 본지 기자단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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