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칼럼]

‘Dear’의 뜻을 아는가. 내게 너를 설명하라고 한다면 나는 곧장 ‘Dear’이라 대답할 것이다. 너는 내게 단순한 사랑이 아니다. 전하고자 하는 말이 있어 매일 편지를 써야 하는, 그런 알 수 없는 끈질긴 관심. 그게 내가 너를 정의하는 방식이다.

누군가 그러더라. 유년 시절 가장 짙은 기억을 남기고 사라지는 인연이 있다고. 그것은 사라질 운명이라고. 그래서 붙잡으려 하거나 다시 그 상대를 찾으려 애써도, 뜻대로 되지 않는 인연이 누구에게나 있다고 한다. 좋고 싫음을 떠나 헤어짐을 다짐했던 그때, 우리는 인생의 여러 지점을 결정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 있었다. 나는 언젠가 이 갈림길의 끝에서 너를 만날 줄 알았다. 그러나 한 번 갈린 길은 끝까지 이어졌다. 그제야 나는 너를 영영 만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우리의 헤어짐엔 ‘나의 성장’이라는 이유가 있었다. 나는 내가 나아가는 시간만큼 널 잊어가고 있다. 마치 자식이 언젠간 부모에게서 독립하듯이. 영원할 것 같던 초등학교에서 졸업하듯이. 이젠 시원 씁쓸한 감정만이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Dear, 그래도 난 겨울이 올 때마다 널 떠올린다. 이젠 주소조차 몰라 네게 편지도 쓰지 못하는 내 마음을 알까? 어디에다 내 마음을 적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 나는 너에 대해 쓰고 있다. 너를 적고 있다. 넌 내게 영원한 글감이자 감정이고, 기억이다. 나는 아직도 내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모른다. 나는 목적지 없는 길을 헤매고 또 헤매다, 그 길 가운데서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계속 반복하겠지. 그러나 이처럼 계획 없는 헤맴엔 어쩌다 너를 한 번쯤 마주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녹아 있다.

네가 기억하는 내 모습이 말 없고 차분한, 생각 많은 몽상가였음을 알고 있다. 네가 티 내진 않았지만, 너는 내 감당할 수 없는 몽상의 크기에 동정의 시선을 보내주기도 했고, 때론 세상이 내 몽상을 감당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 위로해주기도 했다. 현실과 해결책을 떠드는 어른의 조언보다 네 그 얼토당토않은 한 마디가 내 인생 최고의 위로가 돼 줬음을 지금에서야 전한다.

글을 쓴 기억이 너무 오래전이다. 논리도 일관성도 없는 민망한 글이다. 그래도 부디 네가 이 글을 읽는다면 나를 추억해주길 바란다.

법 20 여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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