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자운뎐슈가될최인선’, 대한민국 여성 최초로 운전면허증을 취득한 최인선 씨의 소식을 알리는 1919년 12월 6일 매일신보의 기사 제목이다. 당시 경성자동차 강습소에선 학과 1개월, 실습 1개월의 총 2개월 과정을 이수한 사람들에게 운전면허증을 발급해주었다. 그러나 최 씨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1개월의 추가 교육을 받아야 했다. 여성 운전자로서의 편견을 이겨낸 최 씨의 용기 있는 도전은 현대의 여성들에게도 이어지고 있다.

▲‘녀자운뎐슈가될최인선’, 최인선 씨가 대한민국 여성 최초로 운전면허증을 소지하게 됐음을 알리는 기사다.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도로 위의 여성혐오
여성 운전자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운전면허소지자현황’에 따르면 전체 운전면허소지자 중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 2004년 36.8%부터 지난 2018년 41.8%까지 매년 꾸준하게 증가했다. 또한, 국토교통부 자동차 등록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8년 기준 개인 차량으로 등록된 2천만 1496대 중 503만 7100대의 차량이 여성 운전자의 소유인 것으로 집계됐다.

여성 운전자가 증가했음에도 도로 위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은 여전하다. 운전 경력 2년 차의 민이영(화학 14졸) 동문은 “동시 차선 변경으로 사고가 나자 상대 남성이 ‘아가씨가 운전을 못 한다’고 고함을 쳤다”며 “보험 처리 결과 쌍방과실로 드러나 불쾌했다”고 말했다. 이어 민 동문은 “‘여성인데도 주차를 잘한다’는 말을 마치 칭찬처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운전 경력 8년 차의 임진유(영유아교육학 석사과정) 학우는 “차에 탄 자녀를 챙기느라 운전 중 신호가 바뀌고 조금 늦게 출발한 적이 있다”며 “뒤따라오던 택시 운전사가 창문을 내려 운전자가 여성이라는 것을 확인하더니 경적을 울리며 욕설을 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도로 위의 여성은 여성혐오에 무방비하게 노출돼 있다.

미디어는 여성이 운전에 미숙할 것이라는 편견을 심화한다. ‘김여사가 또 사고 쳤다’ ‘여성 운전자가 몰던 승용차가 트럭 추돌’과 같이 운전자의 과실로 발생한 교통사고를 다루는 기사들의 제목에서는 운전자가 여성임을 강조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도로 규범을 지키지 않는 운전자는 무조건 여성일 것으로 추측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2015년 9월, 대전역 앞에 주차된 차가 다른 차의 주행을 방해하며 큰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 있다. 각종 미디어는 여성 운전자에 대한 멸칭인 ‘김여사’를 사용하며 일제히 여성 운전자를 비난했다. 그러나 실제 운전자는 남성인 것으로 밝혀졌다.

여성의 운전 실력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은 여성 운전자에게 심리적 부담을 준다. 민 동문은 “김여사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실제 주행 전 운전 연습을 많이 했다”며 “운전을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고 말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이수연 명예선임연구위원은 “김여사라는 단어는 여성들의 다양성을 무시하는 여성 비하적 표현이다”며 “김여사와 같은 혐오 표현은 여성 운전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명예선임연구위원은 “여성 운전자에 대한 무분별한 비난을 막기 위해선 운전자를 대상으로 한 성평등 교육 및 인권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양지현 국민대 자동차융합대학 교수는 “운전 실력을 오직 성별에만 근거해 평가할 순 없다”며 “운전 실력은 운전자의 성향이나 숙련도, 감정 상태 등 많은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자동차 산업에 도전한 여성들
자동차 업계는 남성 중심이라는 고정관념을 깬 여성들의 활약이 늘고 있다. ‘2020 기아자동차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대비 기아자동차의 국내 사업장의 여성 관리자는 91명에서 111명으로 22% 증가했고, 여성 직원은 1264명에서 1330명으로 5.2% 증가했다. 기아자동차 외에도 현대자동차, 현대모비스 등에서 여성 임직원 수가 증가세를 보였다.

카레이싱(Car racing)은 성별 구분 없이 경기가 치러지는 스포츠다. 카레이서(Car racer)로 활동하는  여성은 매우 적어 남성에 비해 입지가 좁다는 어려움이 있다. 최연소 여성 카레이서 임두연 씨는 지난 2018년, ‘넥센스피드레이싱(Nexen speedracing)’ 4라운드 AD 스포츠 원메이크(One make) 부문에서 3위에 올랐다. 임 씨는 “남성 카레이서와 비교했을 때 여성 카레이서는 체중이 적게 나가 체력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면서도 “이는 개인이 극복해야 할 약점일 뿐 여성 카레이서 자체의 한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임 씨는 여성 운전자를 대상으로 한 운전 특강에 강사로 참여하거나 레이싱 카트 장내 해설가로 활동하는 등 자동차 관련 분야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지난 2017년 통계청이 발표한 ‘지역별고용조사’에 따르면 자동차정비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1.5%다. 올해로 운전 경력 28년 차인 한국자동차진단보증협회 정태성 과장은 5년 전 교통사고를 겪은 후 자동차에 대한 무지를 극복하고자 자동차 정비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후 전문적인 자동차정비원이 되기 위해 자동차정비산업기사, 자동차보수도장기능사, 자동차자체수리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정 과장은 “취업 당시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은 나뿐이었다”며 “의뢰인에게 정비과정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해 여성 자동차정비원의 실무 능력에 대한 편견을 깼다”고 말했다.

남성 중심이었던 자동차공학 분야에서도 자신만의 연구 성과를 낸 여성이 있다. 양 교수는 자동차 충돌 방지 시스템에 대한 융합 연구를 시작으로 자동차인간공학연구 전문가가 됐다. 여성이 소수인 공학계와 자동차 공학 분야에서 성공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양 교수는 “차별적인 시선이 없진 않았다”면서도 “꾸준히 연구한 결과 자동차인간공학 전문가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2018년 임두연 카레이서가 ‘넥센스피드레이싱’ 4라운드 AD 스포츠 원메이크 부문에서 3위에 올랐다.<사진제공=임두연>

여성, 자동차 분야의 새 시대를 열다
여성의 자동차 분야 진출을 위해선 여성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양 교수는 “여성 공학도의 수가 적어 여성들이 공학 분야에 진출하기를 망설이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 같다”며 “어려서부터 여성공학자를 주위에서 자연스럽게 보고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임 씨는 “최근 일반 승용차를 이용한 *원 메이크 레이스와 같이 가볍게 도전할 수 있는 시합이 많아졌다”며 “레이싱 입문이 쉬워지면서 여성 카레이서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본교에서도 자동차 분야의 여성 인재 양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본교엔 지난 2017년 ‘산업연계 교육 활성화 선도대학(Program for Industrial needs-Matched Education, PRIME) 사업’의 일환으로 공과대학이 신설됐다. 신설 학부 중 하나인 기계시스템학부는 미래 자동차 분야를 위한 교육과정을 갖춰 재학생들이 자동차 분야로 진출할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자동차와 에너지’ 수업을 담당하고 있는 본교 기계시스템학부 임용훈 교수는 “자동차 관련 기업에서도 여성 공학도에 대한 수요가 높다”며 “본교에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게 차별화된 여성 공학도를 양성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직 여성들도 많은 여성의 자동차 분야 진출을 응원한다. 정 과장은 “꿈을 향한 도전에 성별과 나이는 중요치 않다”며 “자동차 관련업의 종류가 다양해지는 만큼 관심 있는 여성은 꼭 도전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임 씨는 “최근 현재 활동하고 있는 국민대 자작 차 동아리 ‘KORA’에도 최초로 여성 팀장이 나왔다”며 “모터-스포츠 분야가 대중화돼 더 많은 여성이 진출하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특출난 재능이 있는 여성만 자동차 분야에 종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양 교수는 “아직도 왜 여성이 공학을 택했는지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많다”며 “유달리 자동차나 기계를 좋아하거나 특별한 사명감으로 공학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좋아하고 잘하는 과목을 찾다 보니 공학이었다”고 말했다. 임 카레이서는 중학생 때 한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정 과장은 46세에 겪었던 교통사고를 계기로 자동차 분야에 입문하게 됐다. 여성들이 자동차 분야로의 진출 가능성을 열어둔다면 머지않아 자동차 분야에서 많은 여성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동일 차종에 의한 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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