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경험을 소개하며 글을 시작하려 한다. 사촌 동생의 선물을 사러 들어간 가게의 인형 판매대에는 똑같은 인형 수십 개가 놓여있었다. 친구는 곰 인형 하나를 집어 들며 “이거 살 거지?”라고 물었고, 필자는 “아니, 옆에 더 예쁜 거”라고 대답했다. 곰 인형을 사서 집으로 돌아온 뒤, 필자는 곰 인형을 바라보며 ‘같은 디자인인데 뭐가 그렇게 더 예뻤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고민 끝에 찾은 결론은 이러했다. 필자가 고른 곰 인형은 친구가 고른 것보다 바느질이 더 꼼꼼히 돼 있었고, 눈코입이 더 고르게 달려 있었다. 필자가 고른 곰 인형은  ‘더 예쁜 것’이 아니라 ‘더 완성도 있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필자는 이 경험을 통해 우리가 일상 속에서 얼마나 많은 단어를 그저 ‘아름답다’는 말과 ‘예쁘다’는 말로 대체하고 있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아름답다는 것은 ‘보이는 대상이나 음향, 목소리 따위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눈과 귀에 즐거움과 만족을 줄 만한 것’이고, ‘하는 일이나 마음씨 따위가 훌륭하고 갸륵한 데가 있다’는 뜻이다. 예쁘다는 것은 ‘생긴 모양이 아름다워 눈으로 보기에 좋다’거나 ‘행동과 동작이 보기에 사랑스럽고 귀엽다’는 의미다. 그러나 우리가 사전의 설명과 일치하는 상황에만 이 표현을 쓸까? 그렇지 않다.

정확하지 않은 표현의 사용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매번 모든 것을 아름답다고만 표현한다면 진정한 미(美)의 본질은 알 수 없게 된다. 결국, 사람들은 눈에 확실히 보이는 외적인 것에 더욱 초점을 맞출 것이고, 이는 사회의 외모지상주의에 일조하는 일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예쁘다’ ‘아름답다’는 단어의 남용을 단순히 표현력이 부족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선 안 된다.

고작 단어 하나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고 느껴진다면 평소 우리가 얼마나 아름답다는 말에 갇혀 사는지부터 생각해보자. 아름답다는 단어 외에도 우리를 틀에 가두는 단어들은 수없이 많다. 사회에 고착된 고정관념을 바꾸기 위해서는 ‘고작 단어 하나’가 갖는 힘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단어 하나하나를 고민할 때 누군가를 차별하거나 억압하는 표현이 사라질 것이고, 조금씩 더 나은 세상이 올 것이다. 필자는 세상을 바꾸는 것이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달렸으며, 그 변화는 당신이 선택한 단어 하나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


영어영문 19 한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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