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의 끝자락에 엄마, 언니와 함께 제주도에 다녀왔다. 코로나 19에 대한 경계심이 슬슬 피어오르던 시기에 갑작스럽게 결정된 여행였기에 필자는 공항에서부터 시큰둥했다. 게다가 제주도에 도착한 첫날엔 이슬비가 내렸다. 축축이 젖은 몸을 이끌고 숙소로 들어가니,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피곤함이 몰려들었다. 그래도 몸을 일으켜 간단히 짐 정리를 하고, 근처 흑돼지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신기하게도 불판을 둘러싸고 앉는 순간 피곤함은 사라지고 기분 좋은 나른함만이 남았다. 셋이서 소주 한 잔씩 기울이면서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제야 여행이 시작됐다는 사실이 비로소 실감 났다.

둘째 날은 백약이 오름에 올랐다. 화산이 폭발할 때 화산 옆구리에서 함께 폭발한 기생화산들에 제주도 사람들은 ‘오름’이라는 예쁜 이름을 지어줬다. 예쁜 이름과 달리 오름에 오르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날 내린 비 때문에 길이 미끄러웠고, 곳곳에는 웅덩이가 고여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 덕분에 흙과 풀냄새가 더 진하게 느껴져 좋았다. 힘내서 오른 정상에선 고맙게도 콧잔등에 맺힌 땀이 다 마를 만큼 바람이 불었다. 그때 본 풍경은 최근에 본 것 중에서 가장 단순하고 멋진 풍경이었다.

야속하게도 하늘이 가장 맑고 예뻤던 마지막 날엔 협재 해변을 구경했다. 해안도로 갓길에 위치한 카페의 2층에서 나란히 앉아 따뜻한 차와 빵을 먹었다. 그러다 지갑을 잃어버린 것을 깨닫고 그 여유가 깨져버리기는 했지만, 푸른 바다를 눈에 넘치도록 담고 올 수 있었다.

이번 제주도 여행은 회사 근처에서 자취해 얼굴을 보기 힘든 둘째 언니와 아침 식탁에서만 만나는 엄마와의 짧은 여행이었다. 두 사람과 함께 길을 찾고, 맛집을 물색하고, 일정을 계획하면서 참 행복했다. 늘 자기 일을 하기에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서 모두가 같은 방향을 바라봤다. 여행하는 동안 가벼운 어깨로 새로운 풍경을 즐기며 일상의 그 어떤 순간보다 더 깊이 대화할 수 있었다. 늘 여행이 싫다고 말하고 다녔지만, 그건 어쩌면 여행의 본질을 경험하지 못해서였을지도 모른다. 동행자 혹은 자기 자신과 깊은 대화를 하는 것, 가슴 깊이 그 기억을 담아오는 것이 여행이 갖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앞으로 필자에게 주어질 일상도 여행하듯 소중히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기계시스템학부 18 이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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