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꿈은 오래도록 기자였다. 늘 새로움과 마주하는 사람, 글을 많이 쓰는 사람, 글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 등 기자를 지칭하는 모든 수식어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중·고등학교에서도 신문부였던 필자는 당연하게도 입학하자마자 학보사를 찾았다. 과동기들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부터 학보사에 들어 가고 다는 포부를 밝히자, 학생회 선배가 챙겨준 숙대신보 새내기호가 필자와 숙대신보의 첫 만남이었다. 필자는 사실 숙대신보에 두 번 지원했다. 새학기 공채는 떨어졌고, 여름방학 말에 이뤄진 특채  공고에서 보결로 선발됐다.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도 포기하지 않고 특채를 노린 점에서 학보사 기자를 향한 집념은 증명됐으리라.

호기롭게 들어온 학보사는 예상보다 훨씬 힘들었다. 세 번의 발간을 마치고 남은 건 지쳐버린 정신과 지나간 후회뿐이었다. 첫 대학교 생활, 첫 취재, 첫 기사 등 처음이 너무 많이 겹쳐버린 탓에 마음가짐도 다잡지 못한 채 밀려드는 일을 수습하느라 바빴다. 시간이 답이길 바라기엔 당장 금요일이 마감이었다. 사실 가장 힘든 점은 필자 본인의 실력부족이었다. 어떻게 써도 만족스러운 기사가 나오지 않았다. ‘취재를 조금 더 빠르게 했다면’ ‘개요를조금 더 치밀하게 고민했다면’ 나아졌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는 사실에 반성하고 자책했다. 평가회의때 들었던 말들이 완성된 기사를 본 필자가 스스로에게 했던 말이라는 걸 상기할 때는 더 그랬다. 알면서 안일했다, 그게 문제였다. 고작 세 번의 마감이었지만, 머릿속으로 수없이 이곳에 필요한 존재인가를 고민했다. 취재증을 반납하고 관두겠다는 말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필자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취재증을 목에 걸 때, 필자는 자부심을 함께 걸었다. 대학 언론을 주도하는 학보사의 최전선에 선다는 자부심이었다. 취재증에 담긴 것은 비단 필자의 소속뿐만 아니라, 앞으로 만나게 될 글감에 대한 기대와 성장할 실력과 밤을 새우며 마감하는 숙대신보 선배 및 동기들의 노고다. 이 자부심을 아직 놓고 싶지 않다. 그 무게를 버티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노력뿐일 테다. 그러니 필자가 이 말을 외칠 날은 아직 멀었다. 숙대신보를 수료할 때가 돼서야 턱 아래로 잠재우던 말을 뱉을 수 있을 것이다. “취재증 반납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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