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1년 동안 지내면서 독일이 '살기 좋은 나라'라고 느낀 적이 많았는데, 그중 하나가 버스다. 독일의 버스는 한국 저상 버스의 두 배 정도 되는 길이에, 정차할 때마다 차체가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이 모든 것은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배려였다. 버스를 길게 만들어 휠체어 이용자들의 자리를 마련했고, 차체를 매번 낮추어 그들이 휠체어로 오르내리기 편하게 했다. 한국에서 휠체어 이용자가 버스를 타려면, 저상 버스가 아닌 이상 버스에 탑승하고 자리를 잡는 것은 타인의 도움이 없으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는 휠체어 이용자의 버스 이용이 그만큼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일상생활의 작은 부분조차도 모두의 입장을 배려하던 독일에서의 경험과 비교되는 기억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1호선 시위다. 필자는 그날 1호선을 타고 남영역으로 가던 중이었는데, 별안간 안내 방송이 나오면서 열차가 정차와 서행을 반복했다. 결국, 수업에 40분이 넘게 늦게 돼서 그 당시에는 연착에 대해 불평을 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휠체어 리프트 이용객의 잦은 사망사고 때문에 휠체어 이용자들이 서울교통공사에 지속적인 항의를 하다가 통하지 않자 농성을 한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 다시 한번 느꼈다. 필자는 ‘비장애인’이기 때문에 ‘배리어 프리(barrier free)’라는 개념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런 의미에서 이번 총학생회의 실천 공약 중 ‘배리어 프리’한 학교 만들기가 아주 반가웠다. 학교 곳곳에 붙어있던 ‘이곳은 배리어 프리한 공간이 아닙니다.’라는 문구를 볼 때마다, 필자가 불편함 없이 이용하던 공간들이 다른 이에게는 너무도 불편한 공간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또한, 강연을 들을 때도 청각 장애로 인해 강연을 원활히 들을 수 없었던 학우들이 있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필자는 철저히 필자의 입장에서 생각했기 때문에, 강연에 수화 통역사나 문자 통역 서비스가 필요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독일의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것을 보며, 한국과 정말 다르다고 느꼈다. 그 어떤 장애를 가지고 있든, 독일의 장애인들은 ‘배리어 프리’가 잘 보장되는 사회에서 제약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렇다면, 수많은 대한민국의 장애인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들을 왜 사회에서 보기 힘든 것일까. 앞으로의 더 나은 대한민국이 되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영어영문 17 우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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