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수),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림동 경찰관 폭행 논란’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게시된 후 여성 경찰관(이하 여경)의 채용 확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해당 동영상에서 남성 경찰(이하 남경)은 취객으로부터 뺨을 맞았고 이후 여경은 교통경찰에게 취객 제압을 위한 지원을 요청했다. 일각에서는 취객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여경을 비난했다. 이른바 ‘여경 무용론’이 제기된 것이다.

 

여경을 향한 이유 없는 비난
‘대림동 여경’ 영상이 언론에 공개된 이후 일부 여론은 영상에 등장한 여경의 태도를 지적했다.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표지수(여·24) 씨는 “영상 속 여경의 대응엔 문제가 없었다”며 “여경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논란 초기, 언론은 전체 영상 중 일부만을 보도했다. 그러나 경찰청 측은 해당 사건의 전체 영상을 공개하며 영상 속 여경의 대처가 적절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초반 여경의 태도가 미흡했다는 식의 언론 보도로 인해 해당 사건이 여성의 문제로 논란이 됐다”며 “여경은 경찰관의 업무 수칙에 따라 적절한 대응을 취했기 때문에 해당 사건에선 여경이 비난받을 만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보람 용산 경찰서 경장은 “남경도 취객 한 명을 대응하기 힘들 때가 있다”며 “오히려 지원 요청을 한 대응 방식은 적절했다”고 말했다.


한편 여경의 체력 부족을 지적하며 성별과 무관하게 동일한 기준으로 경찰 체력 검정 평가(이하 체력 검정)가 실시돼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현행 체력 검정은 종목제, 점수제로 실시되고 있다. 체력 검정 중 논란이 되고 있는 종목은 팔굽혀펴기다. 팔굽혀펴기를 할 때 여성은 무릎을 바닥에 댈 수 있기 때문이다. 팔굽혀펴기 종목에서 여성은 1분에 55회 이상, 남성은 1분에 58회 이상에 도달하면 최고 점수가 부여된다. 표 씨는 “여성과 남성은 신체적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현행 방식을 유지하되 여성의 팔굽혀펴기 횟수를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성은 경찰청 양성평등 정책 담당관은 “현행 체력 검정이 경찰 직무를 고려한 기준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며 “가장 합리적인 개선 방안은 모든 성별을 통합해 모집하거나 순환 계측식으로 여성과 남성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 선발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순환 계측식이란 경찰 실무와 연관이 깊은 ‘장애물 넘기’ ‘마네킹 끌기’ ‘차에 빨리 타고 수갑 채우기’ 등의 여러 단계의 종목을 시간 내에 진행하는 것을 뜻한다. 미국과 영국 등에선 순환 계측식으로 경찰을 선발한다.


해당 사건의 본질은 여경의 태도가 아닌 공권력 경시다. 영상 속 취객이 남경의 뺨을 때리고 욕설을 하는 등의 행동은 경찰의 공권력을 침해한 행동이다. 이 담당관은 “취객들의 과한 행동에 엄정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공권력 문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김 경장은 “성별의 문제를 떠나 우리 사회에서 경찰관의 입지가 좁고 힘이 없다”며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할 때 신고자가 경찰관에게 욕을 하는 등 경찰을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김 경장은 “현장에 나가면 남성이 나를 ‘아가씨’라고 부른다”며 “경찰인 나에게 그런 호칭은 다소 불쾌하다”고 말했다.

 

"'여경'이라고요?"
여경 무용론은 여성 혐오로도 해석될 수 있다. 여경 한 명의 행동을 개인 문제가 아닌 집단 문제로 환원하는 것은 대표적인 여성 혐오 방식 중 하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사회는 여성 개인이 잘못하면 여성 집단에 문제가 있다고 여긴다”며 “해당 사건은 여전한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과 구조화된 성차별, 여성혐오 문제를 보여준다”고 본 사건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여성 집단을 앞세운 비난은 앞으로도 지속될 우려가 있다. 본교 김영옥 여성학 교수는 “남성은 여성을 비난하기 위한 사건을 기다리고 있다”며 “더 이상 힘의 논리로 우위에 설 수 없다고 느끼는 남성이 가진 억울함이 일종의 백래시(Backlash)로 발현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장윤지(법 19) 학우는 “여성에게만 높은 도덕적 기준을 요구하며 여성 집단 전체를 공격하는 행위는 명백한 여성 혐오다”고 말했다.


‘여경’이라는 단어는 직업 내 남성과 여성을 분리하기도 한다. 김지수(문헌정보 19) 학우는 “여경이란 단어는 있지만, 남경이란 단어는 없다”며 “사람들은 ‘여경’이란 단어를 통해 여성 경찰만을 특정해 비난한다”고 강조했다.


여경이 시민을 보호할 체력이 부족하다는 것 역시 여경에 관한 편견이다. 경찰은 외근직과 내근직 등 여러 부서에서 업무를 이행한다. 범죄자와의 물리적 접촉만을 강조하는 것은 경찰 업무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이에 김 교수는 “이번 사건이 경찰의 남성적 이미지를 탈피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경 적은 현실 고통 받는 여성들
적은 여경의 수로 인해 경찰은 여성 인력 부족을 겪고 있다. 현재 경찰관 중 여경의 비율은 약 11%로, 남경에 비해 현저히 적다. OECD 국가 평균 여경 비율이 20% 내외인 것을 고려할 때 국내 여경의 비율은 상당히 낮은 편이다. 김 경장은 “현재 여경 인력이 부족함을 자주 느낀다”며 “여경이 없는 경찰서로부터 지원 요청을 받아 출동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여경은 인력 부족으로 인해 휴식 시간을 확보하기도 어렵다. 김 경장은 “근무 휴식 시간에 다른 지구대의 사건에 지원을 나가곤 했다”며 “그렇지 않으면 사건 처리가 지연되기 때문에 지원 요청에 응했다”고 말했다.


한편 성폭력과 가정폭력 등 여성 범죄를 수사하는 부서엔 최소 1명 이상의 여경이 필수로 배치돼야 한다. 여성청소년과가 그 예다. 반면 여성 인력이 부족한 부서도 존재한다. 김 경장은 “형사, 수사부서 등 국민이 경찰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부서라면 어느 부서든지 간에 항상 여경이 배치돼야 한다”고 말했다.


여경은 여성 피해자 또는 피의자를 보호하고 수사를 진행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이 담당관은 “남경이 여성 취객을 보호할 때 오해의 소지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남경이 여성 취객을 발견해도 사건에 개입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성범죄 수사에서도 여경의 존재감이 크다. 이 담당관은 “여성 피해자는 여경에게 수사를 받고자 하는 경향이 있어 여경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상의 성희롱 사건에 대해 여경과 남경으로부터 조사를 받은 경험이 있는 장 학우는 “남경에게 조사를 받던 중 사건 경위에 관해 이야기 하는 과정에서 수치스러웠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장 학우는 “여경에게 조사를 받았을 땐 민감한 문제도 자세히 설명할 수 있었다”며 “여성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조사에 임하는 여경의 태도가 좋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동문은 “가정폭력으로 인해 경찰 조사를 받았을 때 여경과 남경의 태도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익명의 동문은 “남경은 진지하게 사건의 경위를 듣지 않고 나에게 훈계를 하려 했다”면서도 “여경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이고 효과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청은 부족한 여경 인력을 충원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오는 2022년까지 여경 선발 비율을 15%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최근 누적 관객수 130만을 넘긴 영화 ‘걸캅스’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영화 속에서 여경은 기존의 사회가 강요하는 여성성을 벗어던지고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를 막기 위해 노력한다. 많은 여성이 이 영화에 환호했던 이유는 여경이 여성의 입장에서 사건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였고 실제로 성과를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적은 여경 비율이나 낮은 처우는 한국 여성의 낮은 지위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여경 무용론’은 견고한 남성 권력에 균열을 깨고 들어온 여성들에 대한 공격이다. 사회 곳곳에서 활약하는 여성의 수가 늘어나 언젠가는 어느 직군에서든 여성이라는 이유로 소외당하지 않고 살아남으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본지 기자단은 ‘여성 경찰’이라는 단어가 차별적 용어로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으나, 남성 경찰과 구분하고자 해당 단어를 사용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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