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사자와 같은 맹수부터 재주를 부리는 원숭이까지, 다양한 동물들이 공존하는 동물원은 우리가 여러 동물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장소다. 지난 9월 18일(화) 대전 오월드(Oworld)에서 탈출한 퓨마가 끝내 사살된 이후 동물원의 동물 관리 문제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졌다. 동물들의 종 보전을 위해 동물원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인위적으로 조성한 동물원은 동물의 생태계를 복원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의견 등이 충돌하며 동물원의 존폐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우리 사회 속에서 동물원이 갖는 의미와 기능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동물원의 시작, 그리고 현재
고대의 동물원에 대한 기록은 중국 주나라로부터 시작됐다. 왕들의 사냥 놀이터로 이용됐던 고대 동물원이 발전해 지금의 동물원으로 이어졌다. 세계 최초의 현대 동물원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는 ‘쇤부른 동물원(Schonbrunner Zoo)’이다. 쇤부른 동물원은 왕비의 동물관람목적으로 운영됐기 때문에 그 당시 동물원은 고위층의 사람들만 관람할 수 있는 특수한 장소였다. 시대가 바뀌면서 동물원은 일반 시민에게도 개방됐다. 동물보호단체인 ‘동물을 위한 행동’의 이태준 교육팀장은 “동물은 역사적으로 인간에게 이용돼 왔다”며 “동물들은 농작과 교통수단, 과시품 등으로써 사람들에게 희생됐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동물원은 1909년에 만들어졌다. 신남식 서울대 수의학과 명예교수는 “한일합병 때 일본이 우리나라 왕을 위로하는 뜻에서 창경궁 내에 동물원을 만들었다”며 국내 최초의 동물원인 창경원을 설명했다. 이어 신 교수는 “일본이 궁을 훼손할 목적으로 우리나라 왕조를 폄하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며 “한국 동물원의 시작은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의 동물원은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야생동물 등을 보전·증식하거나 그 생태·습성을 조사·연구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전시·교육을 통해 야생동물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시설로 정의된다.

동물원은 ▶국민의 휴식 기능 ▶동물에 대한 교육 기능 ▶연구 기능 ▶종 보전의 기능을 수행하는 역할을 한다. 동물원은 사람들에게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고 동물에 대한 교육을 받음으로써 동물보호의식을 함양할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동물원은 동물의 여러 습성 및 생리 해부학적 연구의 기능과 여러 동물의 종을 보전하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신 교수는 “최근 야생동물이 사라지고 멸종위기종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며 “종을 늘리고 보존하는 동물원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동물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야생이 담겨 있는 동물원
본지 기자단은 동물원의 관리 체계와 현재 동물원 상황에 대해 알아보고자 지난 16일(금) 경기도 과천시에 위치한 서울대공원을 찾았다.

서울대공원 입구에서부터 차를 타고 10분이 걸려 도착한 동물원은 마치 숲속에 있는 듯한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철창 속에 갇힌 동물들, 지저분한 방사장 등 동물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동물들이 생활하는 방사장 내부는 동물들의 자연 서식지와 흡사하게 바위와 나무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방사장 내의 동물들은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잠을 자거나, 먹이를 먹는 등 편안한 모습을 보였다. 서울대공원의 방사장이 처음부터 동물들의 자연환경과 비슷한 모습이었던 것은 아니다. 양우정 서울대공원 홍보팀 주무관은 “전시 목적으로 시작된 여느 동물원과 마찬가지로 서울대공원의 초반에는 철창으로 된 방사장에서 동물들이 생활했었다”며 “동물의 권리와 복지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지는 사회의 흐름에 따라 서울대공원도 동물 복지를 위해 방사장을 개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50-60% 정도의 방사장이 개선됐다”며 “개선 이후에도 계속해서 방사장을 관찰해 동물들의 특성에 적합한 환경을 구현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개선이 완료된 방사장의 경우 각 동물의 특성과 생태환경을 고려해 자연 서식지와 흡사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표범 사의 경우, 높은 곳을 좋아하는 표범의 특성을 고려해 방사장 위쪽에 표범이 지나다닐 수 있는 통로가 마련돼 있었다. 유인원관에 위치한 침팬지 방사장의 경우에는 높은 나무 위에서 생활하는 침팬지를 위해 24m 높이의 ‘정글 타워’가 설치돼 있었다.

개선 후의 방사장은 동물들이 관람객들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변화를 추구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방사장을 둘러싼 대나무였다. 단순 철창으로 만들어진 개선 전 방사장과는 달리 개선 후의 방사장은 관람객이 동물을 볼 수 있는 길과 방사장 사이에 대나무가 줄줄이 심어져 있었다. 양 주무관은 “방사장을 둘러싼 대나무가 사람의 냄새를 막아주고 관람객의 모습을 감춰준다”며 “덕분에 방사장 속 동물들이 사람들과 분리된 감정을 느끼거나 안정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관람객이 동물을 볼 수 있는 위치가 정해져 있다”며 “동물들이 원하지 않을 경우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숨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고 덧붙였다.
 

행동풍부화로 동물 복지를 실천하다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 제6조」에 따라 동물원은 동물에게 종 특성에 맞는 적절한 서식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일부 동물원에선 종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좁은 공간에서 동물을 사육한다. 동물이 서식하는 야생 환경과는 달리 협소하고 무료한 동물원의 환경은 동물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신 교수는 “동물은 야생상태에서 먹이를 찾기 위해 사냥하고 외적을 피해 다니지만 동물원에선 그럴 필요가 없어 무료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며 “이런 환경에서 사는 동물들은 대부분 정형행동을 보인다”고 말했다.

정형행동이란 동물들이 무료함을 느끼면 발현되는 행동으로, 동물들이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행동을 뜻한다. 이리저리 오가거나 손바닥과 발바닥을 빠는 행동, 고개를 가로젓는 행동 등을 반복적으로 하는 것은 정형행동의 예다. 신 교수는 “동물원 동물의 복지를 위해 관리자가 노력해야 할 것은 정형행동의 원인인 무료함을 없애는 것이다”고 말했다.

서울대공원은 동물들의 정형행동을 없애기 위해 ‘행동풍부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행동풍부화는 동물원 동물에게 자연과 유사한 환경을 만들어 줘 자연스러운 동물의 행동(종 고유행동)을 보여주도록 하는 동물복지 프로그램이다. 행동풍부화엔 먹이풍부화, 사회성풍부화, 환경풍부화, 인지풍부화, 놀이풍부화, 감각풍부화 등의 종류가 있다.

서울대공원의 동물 방사장 안에는 타이어, 대형 공, 줄 등이 마련돼 있어 동물들이 새로운 체험을 통해 행동풍부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맹수사를 관리하는 오현택 서울대공원 사육사는 “행동풍부화를 통해 동물들이 자연환경에서와 같이 새롭고 다양한 행동을 보일 수 있도록 돕는다”며 “얼마 전 호랑이사에 로즈마리를 심어 호랑이들이 새로운 냄새를 맡고 호기심을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위에서 언급한 동물의 생태 습성을 반영한 환경조성은 동물의 행동풍부화를 실천하기 위한 또 다른 사례다.

행동풍부화는 동물 우리 안의 환경을 다양하게 바꿔 동물들의 무료함을 없애는 것을 돕는다. 긍정강화훈련 또한 무료한 일상에 긍정적인 자극을 주는 행동풍부화 프로그램의 역할을 한다. 긍정강화훈련은 동물과 사람과의 신뢰를 기초로 한 훈련으로 좋아하는 먹이와 칭찬으로 보상해주고 반복적인 학습을 통해 동물이 자발적으로 훈련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신 교수는 “예방접종이나 치료하는 과정에서 동물이 받는 스트레스를 줄이고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막을 수 있다”며 긍정강화훈련의 효과에 대해 설명했다.

동물들의 서식 환경에 맞지 않는 동물원은 분명히 개선이 필요하다. 그러나 동물원의 무조건적인 폐지는 동물의 권리를 위한 해결책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양 주무관은 “동물들을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동물을 지키는 방법이 아니다”며 “현재 인간이 사는 사회에서 동물들은 예전과 같이 그들만의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동물원의 환경을 개선하고, 동물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동물원에는 수많은 생명이 공존한다. 방사장 내에서 살아가는 동물들뿐만 아니라 그들과 교감하는 사육사, 동물원 관계자, 동물들의 생태계를 구경하는 관람객들이 모여 동물원을 구성한다. 방사장 안의 원숭이를 향해 손을 흔드는 아이와 아이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며 웃음 짓는 원숭이의 모습, 반가운 사육사의 목소리를 듣고 두리번거리는 하이에나의 모습은 본지 기자로 하여금 동물원이 인간과 동물이 함께 공존하고 교감하는 장소임을 느끼게 했다.


오 사육사는 “관람객들이 간혹 자고 있는 동물들을 깨우거나 부적절한 먹이를 주는 경우가 있다”며 “이러한 관람 태도는 동물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동물원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동물원의 환경개선과 더불어 시민들의 관람태도도 성장할 때, 동물원은 더욱더 제 역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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