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경상남도 거창의 농촌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소녀는 책을 좋아했다. 소녀는 친구들과 자연에서 뛰놀다가 심심해지면 책을 읽곤 했다. 책이 귀했던 시절이었기에 책 한 권은 소녀에게 호기심의 대상이자 소중한 보물이었다. 소녀는 책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책 내용이 저절로 입에서 나올 때까지 책을 읽고 또 읽었다. 몇십 년이 지난 지금 그 소녀는 어느덧 중년이 됐지만 여전히 책과 함께 하고 있다. 그는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꽃 100가지』 『혼자만 잘살믄 무슨 재민겨』 등의 책을 기획하고 펴낸 현암사 형난옥 대표이사전무이다. 형난옥 동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아현동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시련 속에 청춘을 보내다

형 동문은 자리에 앉자마자 대학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후배들을 만나니 그 때가 주마등같이 스쳐가네요. 나 대학 다닐 때는 시절이 참 어려웠는데…….” 형 동문이 대학에 입학하던 78년은 유신 말기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높아지고 학생들의 저항과 시위가 늘어가던 때였다. 이런 시대상황 속에 시작된 형 동문의 대학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대학시절 형 동문의 첫 번째 시련은 숙대신보 기자로 활동할 때 찾아왔다. 대학 입학 후 기자라는 직업에 호기심이 생긴 형 동문은 숙대신보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그러나 그는 수습기자 딱지를 채 떼지 못한 채 숙대신보를 나왔다.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신문이 나올 때마다 중앙정보부에서 검열을 받아야 했어요. 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 기사는 내보낼 수 없었죠.”


그렇게 학생 기자 생활을 마감한 형 동문은 2학년 때 잠시였지만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갔다. 수석장학금을 탈 정도로 학과공부에 열중했고, 탈춤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탈춤 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그때부터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미냐’는 생각을 갖고 있었나보다. 곧이어 형 동문은 학우들의 권리증진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특히 그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한 점은 학교 측에서 학생대표를 임명한다는 것이었다. “학우들을 위한 활동을 할 사람을 뽑는 것인데 학우들에게 투표권이 없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됐어요.” 그는 학생회부활추진위원회에서 활동하며 학생운동에 가담했다. 결국 형 동문을 비롯한 학생들의 노력으로 학생회는 부활했고, 그는 선거에 출마해 학생회장으로 선출됐다. 형 동문은 지금도 이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학생들이 민주선거에 의해 스스로 뽑은 초대 학생회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백일천하밖에 안 됐어요.” 형 동문에게 언뜻 안타까운 기색이 비치는 듯도 했다. 그의 백일천하가 끝난 계기는 80년 5월, 민주화의 물결이 넘실거리던 때에 찾아왔다. 형 동문은 100여 명이 넘는 대학 학생회장이 모여 민주화를 고민하고 앞으로의 일정을 발표하는 전국총학생회장 회의에 참석했다. 정부는 이런 학생들의 단체 행동에 계엄군을 파견했고 형 동문을 비롯해 회의에 참석한 사람 대부분이 연행ㆍ감금됐다. “다음 날이었나……. 5.18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이 터졌죠.” 그 후로 형 동문은 3개월 가까이 감금ㆍ구속됐고 3년간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책 속에 자연과 문화를 담다


이후 형 동문은 출판사에 취직해 진로를 찾았지만 대학시절에 받은 상처를 떨쳐내지 못했다. 20살 갓 넘은 어린 형 동문이 감당하기에 그때의 상처는 꽤 깊었던 것이다.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학교도 다닐 수 없고 죄인이라고 낙인찍히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러나 형 동문은 언제까지 상처를 안고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뿌리를 찾는 작업으로 스스로 상처를 치유했다. 그는 자신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알아보는 것이 살아가는 의미를 부여해주기 때문에 정체성 확립에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소외되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때는 자신의 뿌리를 찾아 정체성을 탐구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고 제시했다.


그가 찾은 자신의 뿌리는 무엇이었을까. “산을 오르고 국토를 밟으면서 나의 뿌리가 우리 자연과 문화에서 시작됐음을 알게 됐어요.” 형 동문은 자연과 문화에서 정체성을 찾았을 뿐 아니라 위안과 평안을 얻었다.


우리 문화와 자연의 가치를 직접 체험하고 확신한 형 동문은 이를 주제로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곤충 백가지』 『쉽게 찾는 우리 꽃』 등의 책을 기획했다. “그 당시에 우리 자연과 문화에 대한 책이 많지 않았어요. 내가 이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죠.” 그는 우리 자연과 문화처럼 바르고 유익한 가치를 담은 책을 엮어 출판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바르고 유익한 책이 반드시 잘 팔리라는 법은 없다. 책의 상업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형 동문은 어떻게 균형을 맞추고 있을까. “나는 돈의 가치를 잘 따질 줄 모르겠어요. 그쪽으로는 산수를 잘 못 하거든요.” 그는 책이 얼마나 잘 팔릴지 따지는 대신 책 자체가 얼마나 올바른 가치를 갖고 있는지를 먼저 생각한다고 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이 통했을까. 그가 기획한 책들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팔리고 있으며 형 동문 역시 2002년 한국출판인의회에서 선정한 올해의 출판인 편집자상을 받았다.

더불어 사는 삶, 그것이 행복이다


형 동문이 기획한 책 중 베스트셀러에 오른 도서에는 전우익 씨의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도 있다. 이 책은 지난 2002년 MBC 느낌표 선정도서로 뽑히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행복하게 사는 법을 찾다가 이 책을 기획하게 됐다고 밝혔다. “저는 이 세상의 모든 삼라만상이 어우러져 살아갈 때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전우익 씨가 삼라만상이 어우러져 사는 법에 대해 좋은 말씀을 해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형 동문 역시 이 책에 나오는 산수유나무에서 ‘더불어 사는 삶’의 교훈을 얻었다. “모든 만물이 황량하게 메말라 있는 겨울에 산수유 꽃이 피어납니다. 그 노란 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산수유나무는 추위를 딛고 눈보라를 이기며 꽃을 피워 매년 무언의 약속을 지킨다. 또한 산수유나무는 다른 이들을 위해 열매를 맺고 좋은 약이 돼 준다. 형 동문은 산수유나무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동시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이정표를 제시해 준다고 말한다. “힘든 시절을 거쳐 대표이사전무가 됐기 때문에 이 자리를 누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는 다른 이와 나누며 어우러져 살 때에 자신에게도 행복이 되돌아온다고 덧붙였다. “산수유나무가 다른 이를 위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과정을 거치면서 거목으로 성장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는 후배들도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생은 사회의 리더이기 때문에 자신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각 요소요소에 중요한 가치들이 살아날 수 있도록 힘을 모으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기자는 형 동문의 꿈과 비전에 대해 물었다. “꿈과 비전이라……. 그렇게 거창한 말은 저와 어울리지 않네요.” 그는 자신의 꿈을 ‘자연의 순리대로 살다가 아름답게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나서 후배에게 물려주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진실로 형 동문다운 꿈이 아닌가? 몇십 년이 지난 후 편안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고 있을 형 동문이 그려진다. 그때 그는 어디에서 더불어 사는 삶의 행복을 전파하고 있을까.


저작권자 © 숙대신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