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바람이 분다. 거대한 바람이 광장에 휘몰아친다. 성별과 연령, 계층과 정파를 초월한 수많은 목소리들이 한데 뭉쳐 모여 한곳을 향해 같은 함성을 토하는 거대한 바람이 불고 있다. 그 바람은 3.1만세운동,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의 계보를 면면히 잇는 민중의 목소리인 동시에 그 어느 때보다도 하나로 응축된 전국민적 외침이다. 그 엄중한 외침이 향하는 곳은 바로 청와대다. 상상 이상의 국정농단을 현실로 목도하게 된 국민의 분노는 하늘을 찌른다. 이제라도 모순을 바로잡으려는 처연한 의지는 촛불과 함께 타오른다. 이 정도의 반윤리적, 몰상식적, 전방위적 국정농단 만행이 과연 어떻게 현실화될 수 있었을까? 국가권력의 집중을 방지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견제와 균형의 사회 시스템은 왜 이토록 무력했단 말인가? 분노와 절규를 쏟아내기에 앞서 스스로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현직 대통령이 그 중추인 이번 국정농단 사태로 말미암은 최소한의 긍정적 효과로 우리 사회에 실은 강고했었던 박정희 패러다임과 그 신화의 붕괴를 꼽는 주장에 동의한다. 박정희 신화의 본질은 경제만능주의다. 경제만 흥하게 한다면 그 수단과 방법은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것이다. 인권과 평등권은 침해받고 국익과 경쟁력만 강조된다. 과정은 무시되고 오로지 결과만이 주목된다. 결과의 향배로 모든 가치가 결정된다. 따라서 경제만능주의는 곧 결과만능주의다. 이 결과만능주의가 현재 우리사회에 여전히 만연해 있음을 부정할 길은 없다. 역사수정주의 또한 그러하다. 항일과 민주화운동의 가치를 자학사관이라 폄훼하고 분단 이데올로기에 기초해 대한민국 역사의 재편성을 획책하는 일련의 기도는 국정역사교과서 발행 강행으로 수렴된다. 대한민국 건국이 임시정부가 아니라 남한 단독정부 수립 이후라 주장하는 역사수정주의 관점에 서면 필연적으로 이승만과 박정희의 존재감이 확장될 수밖에 없다. 과정을 무시한 채 승자의 성과에만 주목하는 수정사관의 기저는 결과만능주의와 상통한다. 그렇기에 사회 전반의 도덕성 몰락은 필연적이다. 부정할 수 없는 2016년 우리 사회의 민낯이다.

대학의 현실을 보자. 세태에 부합해 졸속 구조조정에 몰입하고 정부 지원비 수주를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래서 교육의 근본을 망각한 채 결과만능주의적 편법을 학사업무 전반에 조장하는 대학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나는 어디에 서 있는지 엄중히 자성한다. 백만 촛불시위는 1%를 향한 99%의 분노의 외침이지만, 이런 현실을 의식적으로 혹은 의도치 않게 방조한 책임은 우리 모두가 분담해야 할 몫임에 분명하다. 지금 휘몰아치는 바람소리는 한편으론 우리 모두가 되새겨야 할 거대한 함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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