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윤나영 기자>

언제나 빨간 조끼를 입고 본교 앞에서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다.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도 얼굴 한 번 찌푸리지 않고 잡지 「빅이슈(BIG ISSUE)」를 판매하고 있는 빅이슈 판매원이다. 다양한 사연을 가진 그들은 세상의 무관심에 상처받고 삶의 의욕을 잃은 채 세월의 무상함을 한탄하던 홈리스 출신이다. 「빅이슈」는 그런 그들에게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고 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용기를 내 세상과 마주 서기 시작한 빅이슈 판매원들. 더운 날에도, 추운 날에도 묵묵히 한 장소에서 잡지를 판매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홈리스, 빅이슈로 자립을 꿈꾸다
1991년, 홈리스의 자활을 돕기 위해 영국에서 시작된 빅이슈는 홈리스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사회와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현재 10개국에서 발행되는 빅이슈는 점차 범위를 확대해나가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2010년 사단법인 빅이슈코리아(이하 빅이슈코리아)가 설립돼 그 뜻을 이어가고 있다. 빅이슈는 잡지를 만들어 홈리스에게 잡지를 판매하는 일자리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홈리스들은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권당 5,000원인 잡지를 팔면, 수익의 50%인 2,500원은 빅이슈 판매원에게 돌아간다. 판매원의 수입은 판매량에 따라 개인적인 편차가 있으나 평균적으로 월 100만 원 정도다.

「빅이슈」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재능기부자들의 참여로 만들어진다. 홈페이지를 통해 재능기부를 신청한 사람들이 직접 기사를 작성해 지면을 채운다. 잡지의 60%는 재능기부자들에 의해 쓰인 글이며 나머지 40%는 편집국 기자들이 제작한 내용으로 구성된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잡지를 만들다 보니 「빅이슈」는 여행기, 미술, 이색공간, 인권, 환경, 미술 등 다채로운 분야의 내용을 모두 담고 있다. 임정은 빅이슈코리아 대외협력국 대리는 “각계각층의 재능기부자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타 잡지에 비해 내용이 다양하고 개성이 강하다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한다. 늘 본교 앞에서 「빅이슈」를 구매한다는 오지혜(한국어문 15) 학우는 “여행지, 연예인, 생활 속 지식 등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주제를 담고 있다는 점이 빅이슈의 장점이다”고 말했다.

매월 1일, 15일에 발간되는 격주간지인 빅이슈는 호당 1만5천 부, 월 3만 부가 발행되고 있다. 연간 36만 부 정도가 발행되는 셈이다. 발간된 잡지는 현재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및 대전, 부산에서 활발하게 판매되고 있다. 서울에서는 서울시, 서울메트로, 서울도시철도 등과의 협력을 통해 지하철역 앞이나 주변 거리에서 판매하고 있으며 그 외 지역에서는 정기구독 신청을 통해 구독할 수 있다. 빅이슈코리아는 여러 기관, 기업, 단체와 파트너십을 맺어 홈리스 월드컵, 희망 사진관, 봄날 밴드 등의 홈리스 인식개선 사업을 펼치는 프로젝트도 실시해 빅이슈 판매 이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홈리스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 숙대 앞 최용섭 빅이슈 판매원, 빅이슈를 만나다
해외에서는 「빅이슈」를 판매하는 홈리스를 ‘벤더(Vendor)’라고 부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빅판(빅이슈 판매원)’이라 부른다. 자립의 의지가 있고 행동수칙을 준수할 수 있는 홈리스라면 누구나 빅판이 될 수 있다. 임 대리는 “매년 130명에서 150명이 빅판에 도전하고 있다”며 “지원 인원이 많아도 빅판으로 일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모두 빅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자신이 홈리스임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 앞에 당당히 나서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로, 현재 국내에는 약 70여 명의 빅판이 활동하고 있다.

본교 정문에서 지하철 숙대입구역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왓슨스’ 앞에서 「빅이슈」를 판매하고 있는 최용섭 빅판(남·62)은 2년 6개월 동안 빅판으로 활동하고 있다. 양재역에서 처음 빅판 생활을 시작해 오목교역을 거쳐 본교까지 오게 됐다는 그. 최 빅판은 주말을 제외한 평일 오후 2시부터 8시까지 6시간 동안 본교 앞에서 「빅이슈」를 판매하고 있다.

20년 전의 최 빅판은 남들보다는 조금 특별한 삶을 살았다. 그는 코미디언 故 배삼룡과 함께 코미디언 생활을 하기도 하고 가수 남진 밑에서 무명가수로 활동하며 밝은 미래를 꿈꿨다. 하지만 주점과 다방을 운영하면서 그의 생활은 급격히 어려워졌다. 그의 예상보다 손님들이 잘 오지 않았고, 사업에 들어가는 비용 또한 상당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사업에 실패해 직업을 잃고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다. 정부의 경제적 도움을 받아 보려 했지만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그것 또한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힘든 나날을 보내던 그는 친한 동생의 권유로 빅판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처음에는 창피한 마음에 고개를 똑바로 들 수조차 없었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자신이 홈리스임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태도 탓인지 처음에는 잡지가 잘 팔리지 않아 마음고생이 심했다. 하지만 열심히 팔아보겠다는 의지를 갖고 적극적인 태도로 판매에 임하자 한 권, 두 권씩 잡지가 팔리기 시작했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잡지를 팔며 이익을 얻게 된 그는 “처음에는 창피했지만, 지금은 스스로의 힘으로 돈을 벌며 살아갈 수 있는 사실이 떳떳하면서도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최 빅판은 “예전에 장사를 해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잡지를 파는 것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며 “빅판이 되지 않았다면 거리를 헤매는 노숙인이 되거나 폐인이 됐을 것이다”고 빅이슈코리아에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잡지를 파는 생활이 결코 편안하지만은 않다. 건강이 좋지 않은 최 빅판은 빅판 활동 중 잠깐씩 앉아 휴식을 취하기 위해 항상 작은 의자를 갖고 나온다. 그는 “의자가 있어도 앉아있을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다”며 “6시간 동안 서 있다 보니 다리가 너무 아프다”고 토로했다. 수익이 적은 날이면 더욱 힘이 빠진다. 그는 “서있는 것도 힘들지만, 장사가 잘 되지 않는 것이 더 힘들다”며 “잡지가 많이 팔리지 않는 것이 항상 고민이다”고 밝혔다. 판매량이 항상 부족하다보니 그의 생활은 언제나 빠듯하다. 팔리지 않고 남아있는 잡지의 수를 세어보던 그는 “왕복 차비와 매달 25만원씩 고시원 월세를 내는 것이 부담이 된다”며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힘든 빅판 생활에도 즐거움은 있다. 최 빅판에게 판매 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주는 독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판매하는 잡지를 구매하는 독자들의 대부분은 본교 학우들이다. 잡지를 판매하는 그에게 독자들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음료수나 간단한 먹을거리를 건네주기도 한다. 최 빅판은 “가끔 약을 주거나 집에서 담근 김장 김치를 가져다주는 독자도 있다”며 “그런 분들이 있어 많은 힘이 된다”고 밝혔다. 그 중, 그를 가장 기쁘게 했던 것은 한 독자의 편지였다. 그는 “매일 우직하게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며 배우는 점이 많다는 편지를 읽고 기분이 이상하면서도 마음이 따뜻해졌다”며 “빅판 생활을 통해 많은 독자들을 만나며 나 또한 배워가는 점이 많다”고 말했다.

◆ 빅이슈 판매원, 새로운 삶과 이어지다
이처럼 「빅이슈」는 홈리스들의 자존감을 높여주며 경제적으로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빅판으로 활동하게 되면 본인의 노력으로 정당하게 경제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임대주택 입주 자격을 얻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현재 빅판으로 일하며 꾸준한 저축과 자기개발로 새로운 일자리를 마련해 새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국내에 20여 명 정도로, 그 수는 점차 늘어가는 추세다. 빅이슈는 홈리스들의 외로움을 가시게 해주기도 한다. 대부분의 홈리스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단절돼 있을 뿐 아니라 안정적인 거주지가 없다. 빅판 생활을 시작하며 사람들과 만나게 된 홈리스들은 힘들 때 연락하고, 의지할 사람들이 생겼다는 사실에 행복해한다. 임 대리는 “빅판으로 일하게 되면서 흩어진 가족이 다시 모여 임대주택에 살게 된 경우도 있었다”며 “빅이슈코리아를 통해 가정이 회복되고 판매원이 삶의 희망을 찾아가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빅판들은 사회에서 고립되거나 동떨어진 경험이 있는 홈리스들이다. 그런 그들이 길거리에 나와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사람들을 향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큰 용기이자 도전이다. 빅판들은 거리 구석에서 소주병을 들고 세월의 무상함과 세상의 무관심에 한탄하는 홈리스의 모습에서 탈피해 거리에서 당당히 자립을 외치고 있다. 자신이 홈리스였다는 사실을 세상에 밝히며 다시 일어서겠다는 굳은 다짐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오 학우는 “노숙인은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빅판을 보며 그것이 편견임을 깨달았다”며 “새로운 삶을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감동하였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오 학우는 언제, 어디서라도 그들의 모습이 보이면 빅이슈 한 권씩을 꼭 구매한다.

하루 종일 한 자리에 묵묵히 서서 「빅이슈」를 판매하는 빅판. 하루 동안의 고된 판매로 지친 빅판에게 힘을 실어주고 용기를 줄 수 있는 것은 독자의 따뜻한 말 한마디와 눈빛이다. 임 대리는 “빅판을 만날 경우가 생긴다면 잡지를 구매하지 않더라도 격려의 인사 또는 미소를 띄워달라”며 “한 번의 인사와 웃음이 빅판에게는 그 어느 것보다 큰 힘이 된다”고 부탁했다. 세상과 마주하기 시작한 빅판이 호의적인 사람들의 태도에 자신감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사람들의 기분 좋은 관심은 빅판에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의욕을 불러일으키고, 자신의 삶에 대한 자부심을 끌어올리도록 만든다. 최 빅판은 “빅판 활동이 많은 돈을 모으지는 못해도 떳떳하게 살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참 의미 있는 일 같다”며 “숙명인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구매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 최용섭 빅이슈 판매원(남·62)이 ‘왓슨스 ’ 길가에 서서 「빅이슈」를 팔고 있다. 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밝은 표정으로 잡지를 들고 꿋꿋이 서있는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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