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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 있는 곳에 행복을’ 여는 사람사회복지사 이인복(국어국문 60 졸) 동문
서어리 기자  |  smpser71@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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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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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등산로 입구로 이어지는 평창동 대로변을 지나다보면 ‘나자렛 성가회’란 간판이 걸린 5층 건물이 눈에 띈다. 이곳에서는 위기에 처한 가정폭력피해여성들과 미혼모, 성매매 피해여성들이 안전한 보호를 받으며 재활의 삶을 살고 있다. 많은 여성들이 절망을 딛고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이곳은 바로 이인복 동문이 창설한 복지시설. 30년째 많은 ‘수양딸’들을 먹이고 재우고 가르쳐 온 이 동문을, 희망이 자라는 곳 ‘나자렛 성가회’에서 만났다.

 

한 평생을 성매매 피해여성의 '어머니'로

우리 학교 국어국문과 교수였던 이인복 동문은 2002년 정년퇴임한 후에도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나자렛 성가회’ 운영을 위해 불철주야 일하고 뛰어다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신의 영리를 위해서가 아니요, 오로지 시설에 기거 중인 여성들의 재활을 돕기 위해서다. 자신의 퇴직금과 연금은 물론 네 딸들의 혼수비용마저 헌납한 사실은 우리 사회에 미담으로 회자되고 있다.


왜 그는 성매매 피해여성을 위해 이토록 헌신하며 사는 것일까. 기자의 질문에 이 동문은 옛 기억을 떠올렸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6ㆍ25전쟁이 터지고 아버지와 오빠, 남동생이 납북됐어. 당시에는 가족 중에 북으로 간 사람이 있으면 월북과 납북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빨갱이 가족’으로 몰렸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피신해야만 했어. 가족들과 함께 숨은 곳이 부평 미군기지 근처였는데, 그곳에서 성매매 여성들의 삶을 보게 된 거야.” 월북자 가족이라는 오해로 인해 재산을 잃고 생활고에 시달렸지만 그의 어머니는 기지촌 여성들을 선교며 그들의 치유를 도왔다. 이 동문은 ‘죽을 때까지 성매매 피해여성들을 도우라’는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성매매 피해여성을 위한 복지사업을 결심했다. 결국 1978년, 그동안 틈틈이 모아둔 자신의 월급을 털어 ‘나자렛 성가원’을 세우며 본격적으로 복지사업을 시작했다. 지금은 가족폭력 피해여성 쉼터인 성가원, 성매매피해여성 쉼터인 성가정, 나자렛 상담소, 나자렛 교육원, 교도소 후원회, 조선족 및 탈북자 돕기 후원회 등 다양한 일을 하는‘사회복지 법인 나자렛 성가회’로 발전했다. 


그러나 성가회를 운영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가해자들이 매일같이 전화해 갖은 독설을 퍼붓기도 하고 시설에 찾아와 밤새 문밖에서 농성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재정상황이다. 이 동문의 월급, 강연료, 원고료만으로는 날로 늘어나는 생활자들의 복지 후생을 돌보면서 건축비 부채를 갚는 일이 항상 힘에 겹다.

 

새 삶을 이끄는 희망전도사

이 동문은 몸소 나눔을 실천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뿐만 아니라 책을 통해서도 고통 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상처를 치유한다. 대표 저서『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고통이 있는 곳에 행복을』, 『평화가 있는 곳에 행복이』는 회고를 통해 그의 삶을 담은 수필집이다. 그는 주로 교도소 재소자들,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에게 그의 책을 전달해 왔다. “교도소에 100권을 보내면 10명 정도의 재소자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나에게 편지를 보내. 그러면 서신상담을 시작하지. 그 중에는 믿음이 싹트고 자라면  세례를 받는 경우도 있어. 그런데 성매매 피해여성들에게는 100권을 나누어 줄 때 그 중 한 명이 탈출을 결심하고 도움을 청해 오면 큰 성공이야.” 그만큼 성매매 여성들의 마음을 돌리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성가정으로 입소하는 여성을 맞이하는 일, 탈성매매 후 결혼해 가정을 꾸린 이들을 만나는 일에서 더없는 행복을 느낀다.  


교도소 재소자나 성매매 피해여성 뿐 아니라 전혀 예상치 못한 데서도 그의 책을 읽고 새 삶을 찾은 이들이 많다. “한번은 어느 대기업 회장이 직원들에게 나눠준다며 내 책 4,000권을 사간 적이 있어. 사실 그 회장의 딸이 학교성적이 떨어졌다고 자살했거든. 회장이 매우 상심했는데, 회장실 청소담당 여성이, 읽어보고 힘 내시라며 내 책을 건넸다는 거야. 회장이 내 책을 읽고 눈물을 흘리면서 딸이 평생 했을 선행을 대신해주며 두 사람 몫을 살아가겠다고 다짐 했대.”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그의 책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줬다.


그의 책을 읽고 감동받은 사람들이 종종 성가회에 찾아와 도움을 주고 간다. “강요가 아니라 순수한 감동에서 우러난 것이기 때문에 한 번 나눔을 시작한 사람은 그 열정이 냉담해지지 않아. 그 사람들은 모두 성가회의 공동 운영자고 내 동지들이지. 이 동문은 그러한 분들의 사랑과 열정이 어찌나 큰 지, 만약 내가 대통령 출마를 한다면 첫째, 둘째는 아니어도 셋째로는 많은 표를 받을 것 같아.”라며 농담을 건넸다.  

 

"나눔은 덕이 아닌 생명의 의무"

평생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살아온 덕에 이 동문은 우리 시대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전범(典範)으로 불리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가진 자의 의무’라는 뜻으로 통용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개념을 이 동문은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현재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누군가 내 고난을 대신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야. 그러니 나는 선행을 베푸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나 대신 고난을 짊어졌던 사람들에게 빚을 갚고 있는 것이지.” 눈이 성한 사람은 앞 못 보는 사람을, 재물이 많은 사람은 빈곤한 사람을, 건강한 사람은 병을 앓는 사람을 돌보며 살아야 할 ‘생명의 의무’가 있다는 것, 이것이 그가 말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이다.


그가 우리 학교에서 교수생활을 할 때 학우들에게 강조했던 가르침이 바로‘노블리스 오블리제와 생명의 가치확대’였다. “문학개론 시간에는 중강당 좌석이 모자랄 정도로 매 시간 많은 학생들이 모였어. 수업 끄트머리에 학생들에게‘나중에 신랑하고 같이 성가원에 찾아 와서 세탁기랑 밥솥을 기부하고 가는 제자가 돼주길 바란다고 말했지.” 이렇게 30년간의 교수시절 동안 학생들의 마음에 뿌린 씨앗은 이제 차차 열매를 맺는 나무로 자라고 있다. 대중 강연을 마치면,‘숙대 제자에요. 교수님이 강연하신다기에 냉장고 값 준비해 왔습니다.’하면서 봉투를 주고 가는 제자가 있다는데, 그때 지난 세월의 아픔이 말끔히 치유된다는 것이다.


이 동문은 숙명인 모두가 나누고 베풀며 살아가기를 바라며 나눔을 실천할 방법 하나를 제안했다. “6ㆍ25는 내 인생에서 그야말로 터닝 포인트가 아니겠어? 그 날을 기념하려고 매년 6월 25일마다 자선음악회를 열고 있어. 올해는 우리 학교 숙연당에서 열 예정이야. 이날 참석하는 사람들에게는 내 책들을 증정할 테니 숙명의 많은 학생들이 이 뜻있는 자리에 참석하면 좋겠어.”

 

그는 늘 바빴다. 학창시절에는 생활고를 딛고 간호사 일을 하며 공부했고, 성인이 돼서는 교수생활과 성가원 운영을 동시에 했다. 그리고 정년퇴직을 한 지금도 수많은 교육과 번역, 저술활동으로 쉴 틈이 없다. 이렇게 바쁜 나날을 정신없이 살다보니 어느덧 70 고개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는 평생 동안 단 하루도 헛되이 보낸 적이 없다고 단언한다. “나에게는 잠자는 시간도 기도시간이고, 내일을 기획할 수 있는 시간이야.” 그마저도 3~4시간에 불과하지만 이 동문은 “그래도 새벽 5시면 벌떡 일어나 이렇게 기도하지.” 라며, 힘차게 두 손을 하늘로 향해 올린다.


머지않아 그는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시작한 이 복지사업을 후계자에게 물려줄 것이다. “후계자에게 성가회 운영을 맡기고, 나는 옛날 서당같은 대안학교를 마련해 기도하는 사람들과 함께 남은 생을 살 계획이야. 눈 감는 순간까지 가출 문제 청소년소녀들을 돌보며 살 거야.” 이렇게 미래를 이야기하는 그의 얼굴 그의 눈빛은 초여름 햇살을 받아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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