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어 수업에 집중하고 있는 올리비에(오른쪽에서 두번째) 씨와 조신(오른쪽에서 세번째) 씨의 모습

우리나라 다문화 인구는 이미 80만 명을 넘어섰고 이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다문화 인구수가 늘어남에 따라 다문화에 대한 연구와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도 늘어나고 있다. 다문화 관련 학문을 연구하기 위해 설립된 본교 다문화통합연구소는 현재 연구와 더불어 국내체류 외국인을 대상으로 법무부 사회통합프로그램인 KIIP(Korea Immigration and Integration Program)를 제공, 이들이 한국사회에 정착하는 것을 돕고 있다. 본지는 지난 26일과 27일, 이틀에 걸쳐 본교 다문화통합연구소 KIIP프로그램 중 국적체류 상담과 한국어 교육 수업을 살펴봤다.

▲ 국적체류 상담이 일대일로 진행되고 있다.

◆ 법무부 사회통합프로그램이란
지난 27일(금), 본교 다문화통합연구소에서 법무부 사회통합프로그램(이하 KIIP) 5단계 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국적체류 상담이 진행됐다. 학생들은 약속한 시간에 맞춰 하나둘씩 찾아왔다. 학생들은 미리 작성해 온 인적사항이 적힌 종이를 들고 다른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상담을 기다렸다. 상담은 출입국 사무소 직원과 일대일로 진행됐다. 상담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뤄졌으며 한국생활의 고충과 비자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눴다. 서울 시내 KIIP 수강생은 2012년 164명에서 2014년 719명으로 늘었고, 현재까지도 꾸준히 증가 추세다. 수강생 중 결혼이민자가 34.9%, 직장에 다니는 전문취업계열이 12.9%으로, 본교 다문화통합연구소의 경우 전문취업계열 수강생이 많은 편이다. 학생들의 국적은 베트남, 파키스탄, 필리핀 등 다양하며 그 중 중국 동포가 가장 많다.

KIIP는 총 0-5단계로 구성돼있으며 전 과정을 이수하는 데 1년 반이 걸린다. 0-4단계는 한국어 위주의 수업이고, 5단계는 정치, 역사, 경제 등 한국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우리나라 중학교 수준으로 배운다. 초급인 1, 2단계에서는 한국어가 서툰 학생들에게 말할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는 편이다. 한국어가 낯선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과 한국어로 관심분야를 이야기하면서 서서히 말문을 트게 된다. 중급인 3, 4단계에서는 교재 중심으로 문법을 체계적으로 배운다. 4단계를 마친 후 한국어능력을 평가하는 중간평가에 합격하면 5단계 수업을 들을 수 있다. 또한 모든 과정마다 마지막 수업 시간에 책거리가 열린다. 각자 본인 나라의 음식을 가져오는 이 날엔 다양한 국가의 음식들을 나눠먹는 재미가 있다.

수업 외에 문화체험 및 법교육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작년에는 경복궁과 민속촌을 방문했다. 야외활동을 통해 학생들 간 친목을 다질 수 있는 동시에 추억도 쌓을 수 있어 학생들의 반응이 좋다. 법교육의 경우 전문 변호사를 초빙해 생활법률에 관한 강의를 진행한다. 한편 다문화통합연구소에서는 학생들에게 개인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도 도움을 준다. 다문화통합연구소에서 KIPP를 담당하는 염복음 연구원은 “학생들에게 사적인 문제가 생겨 도움이 필요할 경우 전문 기관이나 센터에 연결해주거나 강사 선생님이 직접 도와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 KIIP 3단계반 학생들이 다문화통합연구소를 알리는 문구를 들고 있다.

◆ 한국어 교실의 풍경
아침 9시 반, 국적도 나이도 다른 외국인들이 가방을 매고 삼삼오오 교실로 들어왔다. 수업 전 자리에 앉아 책을 펴고 곧 있을 받아쓰기 시험을 준비하는 모습들이 꽤 진지했다. 학생들은 어설프지만 유창한 한국어로 서로 안부를 묻기도 하고 수다를 떨기도 했다. KIIP 3단계 반의 경우 일주일에 두 번, 아침 9시 반부터 12시까지 3시간 반 동안 중급 수준의 한국어 수업이 진행된다. 중국, 방글라데시, 스위스 등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학생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한국에 왔지만 모두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이란 목표로 이곳에 모였다.

한국인 아내와 함께 1년 전 한국으로 온 올리비에(남, 38) 씨는 스위스인이다. 한국에 온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스위스에서 독학으로 한국어를 공부한 덕분인지 한국어가 제법 유창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 사람들의 말이 빨라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평소 사용하는 불어뿐만 아니라 영어, 독일어까지 할 줄 아는 그이지만 어순이 반대인 한국어는 아직 낯설기만 하다. 평소 아내가 옆에서 도와주지만 아내가 없을 땐 곤란한 경우가 많다. “지난주에 허리가 아파 병원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제 말을 이해를 못하시더라고요. 나중에 아내가 다시 병원에 전화하고 나서야 처방을 받을 수 있었어요”

중국에서 온 조신(여, 25) 씨는 한국 사람과 결혼한 엄마를 따라 4년 전에 한국에 왔다. 그동안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지 않다가 작년 9월부터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 그녀는 한국어 중에 높임말이 가장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중국어도 높임말이 있지만 나이가 비슷하면 대부분 반말을 쓰거든요. 처음 한국에 와서 높임말이 익숙지 않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반말을 하기도 했죠” 그동안은 한국어를 잘 못해 답답한 일들이 많았지만 요즘은 수업시간에 배운 한국어를 실생활에서 쓰는 것이 재밌다. 그녀는 “집에서 가족들이랑 한국어로 대화할 때 공부한 보람이 느껴져요. 아직 텔레비전을 보면 이해하지 못하는 말들이 많지만 얼른 공부해서 뉴스도 보고, 예능 프로그램도 보고 싶어요”라며 웃었다. 텔레비전 보기와 함께 그녀의 목표는 하나 더 있다. “미용 기술을 배우고 싶어요. 지금은 필기시험을 공부하려 해도 어려운 단어들이 많아 이해를 못하겠더라고요. 한국어 실력이 쌓이면 시험공부도 하고, 미용 학원도 다니고 싶어요”

▲ 한국어 수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 “학생들이 제 보람이죠”
“선생님, 저 합격했어요” 같은 시간, 귀화시험에 합격한 한 학생이 교사 이맹숙 씨에게 합격문자를 보여주며 환하게 웃었다. 한국에 정착하고 싶어 귀화시험 합격을 손꼽아 기다리던 학생이었던터라 선생님과 학생들은 축하인사를 건넸다. 그동안 귀화시험에 합격하기까지 옆에서 도와준 주위 사람들에게 감사의 의미로 먹을거리를 돌리는 그녀의 모습에서 행복함이 느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교사 이맹숙 씨는 “저 학생처럼 귀화시험에 합격하거나 자신의 목표를 이룬 학생들을 볼 때면 보람이 느껴져요”라며 웃었다. 평범한 주부로 살던 그녀는 5년 전 대학동창이 한국어 교사로 재취업한 것을 보면서 한국어 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 후 한국어 교육 연수과정을 밟고 자격증을 취득한 끝에 외국인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교사가 됐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데 어떤 점이 어렵냐는 질문에 “문법을 설명하기가 제일 어려워요. 한국인에게도 어려운 문법을 외국인들이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한국인들은 한국에 살다 보면 문법을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 느낌을 체득하지만 외국인들은 전혀 다른 언어권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이 씨는 최선을 다해 설명한 후에도 학생들의 표정이 밝지 않을 때 고민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이 씨는 자신에게서 배운 학생들이 다시 찾아와줄 때 큰 보람을 느낀다. “한 중국인 학생이 잠깐 배우다 사정이 생겨 일본으로 이사를 갔어요. 그런데 얼마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며 연락이 왔더라고요” 일본보다 한국이 좋아서 다시 돌아온 학생은 비자 문제를 포함해 여러 현실적 문제에 부딪혔다. 학생은 그 때 생각난 사람이 이 씨밖에 없었다며 연락했다. 이 씨는 “그저 나를 다시 찾아와준 것에 너무 고마웠다”고 말했다. 그녀는 학생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주고 다시 한국어를 공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알아봐줬다. “현재 그 학생은 다른 기관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어요. 빨리 한국어를 배워서 저와 함께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하고 싶다며 열심히 공부중이래요”

◆ KIIP의 모든 과정을 마치고
다문화통합연구소의 수료과정을 마친 부 쑤언 토(남, 33)씨. 모든 과정을 마치고 국적체류 상담을 받으러 온 그는 하얀 피부에 큰 눈을 가진 베트남 청년이었다. 2008년, 그는 한국으로 유학을 왔다. 처음 방문한 한국이었지만 이미 베트남에서 한국어를 전공한 후 석사학위까지 수료한 상태였기 때문에 의사소통에 큰 문제는 없었다. 한국에 와 국민대에서 금융보험학을 전공한 그는 현재 한국투자증권 5년차 연구원이자 국내 첫 베트남인 애널리스트다.

그가 처음 KIIP를 접하게 된 건 작년 영주권 신청을 하던 때다. KIIP를 수료할 경우 영주권 신청 시 혜택이 있음을 알게 된 그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 수업을 들으며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었다. 또한 한국 생활 중 모르는 것이 있을 때마다 담당 선생님에게 문자를 보내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프로그램과 회사 생활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는 “퇴근시간이 6시지만 한국 정서상 정시에 퇴근할 수 없기 때문에 저녁 수업이 있는 날에는 양해를 구해야 했다”며 “쉴 틈이 없어 체력적으로도 많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한국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냐는 질문에 그는 “모든 한국인에게 해당되는 말은 아니지만 다문화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개선됐으면 한다”고 답했다. 그는 “국적만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특정 나라가 낙후됐다며 그 나라의 사람을 무시하거나 하대하는 태도는 지양하길 바란다”며 부탁했다.
힘들고 바쁜 일상이지만 그에게 한국에서 보낸 8년이라는 시간은 매우 값지다. 그는 국내 첫 베트남인 애널리스트라는 명칭과 함께 자신감도 얻었다. 이전까지 그는 한국어 대화를 들을 때 즉각적인 의견을 표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어 실력이 늘면서 자신 있게 의사를 표현하고, 사람들과 대화도 유창하게 나눌 수 있게 됐다. 한국사회에 대한 이해도 한층 높아졌다. 다문화 프로그램 덕분이다. 그는 “프로그램을 수료하면서 언어뿐만 아니라 한국의 경제와 문화를 배운 것이  한국에서 사는 데 큰 도움이 됐다”며 자신을 도와준 다문화통합연구소에 고마움을 표했다.

저작권자 © 숙대신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