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25시]

“제 인생에서 대학은 당연한 거였어요” 대학 진학을 거부하는 모임 ‘투명가방끈들의 모임’ 회원 호야(활동명·23세·여) 씨가 한 말이다(본지 제1288호 기획면 참고). 그녀는 대학 입시에 실패하면서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 만약 대학에 합격했다면 지금쯤 자신도 ‘대학 거부’라는 단어는 까맣게 모르는 평범한 대학생이 돼있을 거라는 그녀.

그 말을 듣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우리는 대학에 진학할 것인지를 고민한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보면 대학은 당연한 것이었고, 그보다는 어느 대학을 갈 건지가 중요할 뿐이었다. 대학 진학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처럼 지금도 우리는 수많은 선택 사항들을 지나치고 있을지 모른다. 당연함, 우리는 그 속에 파묻혀 살아가고 있다.

오늘날 대학생들은 ‘취업대란’이라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그 속에서 자연스레 대학은 취업을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그러나 사실 취업이 당연한 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그에 맞춰 미래를 계획하고, 행복을 정의한다. 그것을 왜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지 또, 인생에서 어떤 의미인지 그에 대한 이유도 찾지 못한 채 다들 같은 길을 걸어간다. 우리는 지금까지 주어진 현실에 익숙해져 그를 향해 어떠한 의문도 던지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흔히 인생을 ‘허들 경기’에 빗대어 말하곤 한다. 그렇다. 어쩌면 인생은 긴 트랙 위를 달리며 앞에 있는 목표물을 뛰어 넘어가는 허들 경기일지도 모른다. ‘결혼적령기’라는 말처럼 사람들은 특정 시기가 되면 사회적으로 요구하는 것을 뛰어넘도록 강요받기 때문이다. 우린 그 트랙 위에서 이제 막 대학이라는 허들을 뛰어 넘었다. 예선 경기를 끝낸 것이다. 앞으로 스스로 인생을 책임지며 살아가야 할 본선 경기가 남아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예선 경기를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대학 진학을 준비했던 것처럼, 지금도 타인이 세워둔 허들을 넘으려 준비하고 있진 않았나.

본선 경기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지금까지와 달리 본선에서는 내게 맞는 높이의 허들을 적당한 간격으로 세워야 하지 않을까. 제대로 된 경기를 위해서는 스스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달리는 속도는 어떤지, 발목이 아프지 않은지, 심장은 튼튼한지. 자신의 상태를 다시 한 번 점검해봐야 한다.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앞으로 어떤 허들을 넘을지 또 어떤 간격으로 놓을지,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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