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입학한 후 지난 4년 동안 여러 수업에서 수없이 많은 보고 서와 감상문을 제출했다. 책과 영 화를 아울러 다양한 작품과 자료 들을 감상하고 분석했으며 비평 하고 비교하는 글들을 써냈다. 모 두 모으면 꽤 두둑한 책 한 권 분 량은 될 성 싶은 그 글들이 온전 히 나만의 생각과 언어들로 이뤄 진 것은 분명 아니다. 그 안에는 권위 있는 학자나 유명한 작가, 그리고 평론가들의 말과 글들이 적지 않게 인용되어 쓰여 있기 때 문이다. 학문적인 글쓰기에서 인용을 하는 이유는 인용하는 내용이 연 구의 증거가 될 뿐만 아니라 결과 물의 신빙성과 질을 높이는 역할 을 하는 정당하고 필요한 과정이 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용은 인용 하는 대상의 신뢰도의 문제와 인 용하는 주체의 윤리적 문제가 항 상 존재한다는 점에서 그 스스로 함정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 다. 일 년에도 몇 번씩 터져 나오 는 학계의 논문 표절 사건에서 주 로 문제 삼는 것은 남의 글의 일 부나 거의 전부를 그대로 베껴 쓰 다시피 한 당사자의 윤리적 태도 이다. 그러나 그것이 언론의 문제 에 해당하는 경우엔 인용 대상의 신뢰도 역시 중요한 문젯거리가 된다. 지난달 30일 KBS ‘뉴스9’이 채 동욱 전 검찰총장에 관한 TV조선 의 보도 내용을 그대로 인용 보도 한 것과 관련해 파문이 일고 있 다. KBS 기자협회는 국민의 수신 료를 받아 제작되는 공영방송이 일개 종편 방송의 보도 내용을 정 확한 사실 확인도 없이 그대로 인 용 보도한 것에 분노를 표하고 있 다. 이 사건에 대한 기자총회를 개최하고, 보도국에 책임을 묻기 위해 행동에 나서고 있다. 신빙성 없는 내용을 그대로 인 용했을 경우, 심판대에 오르는 것 은 단연 인용의 대상이 아닌 그 행위의 주체이다. 이 전대미문의 사건에서 우리는 인용의 두 가지 함정이 얼마나 깊어질 수 있는지 를 똑똑히 볼 수 있다. 언론이 두 가지 함정 모두에 빠졌을 때의 사회적 손상은 개인 으로서의 대학생 혹은 교수의 경 우와는 그 심각성을 비교할 수 없 다. 앞으로 남은 대학 생활과 그 이후의 사회생활에서 우리는 스 스로 인용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 록 주의 하는 것만큼이나 학계와 언론에 도사리고 있는 함정을 주 의해야 한다.(인문 09 김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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