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강-석해균 전 삼호주얼리호 선장

▲ 현재 군무원으로 근무중인 석해균씨가 특강차 본교를 방문했다. <사진=김지원 기자>

“엔진이 꺼진 척 시간을 벌었다. 손발을 자른다며 위협했지만 선원과 선박, 국가 위해 목숨 바치자는각오로 버텼다”

본교 학군단 주최로 열린 안보특강의 강사로 초청된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 특강이 열린 6일(화), 백주년기념관 삼성컨벤션센터엔 강연을 듣고자 본교 학군사관후보생과 학우들 및 타 학교 학군단학생들 100여명이 모였다. 강단에선 그는 소말리아 해적들에 의해 납치돼 구출되기까지 급박했던 당시를 설명하며 그 순간을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애국심’과 ‘침착함’이었다고 강조했다.

그에게 비극적이었던 당시 납치사건이 발생한 건 작년 1월, 당시 그는 삼호주얼리호의 선장을 맡고 있었다. “기관장이 날 급히 불렀다. 선박 앞을 바라보니 무장한 해적들이 올라오고 있더라” 배 위를 장악한 해적들을 보자, 그는 곧바로 직원들을 상선 내부 대피장소로 이동시켰다. 걸린 시간은 10여분 남짓이었다. 그는 납치상황이 실감되지 않았지만 몸이 먼저 선원들을 보호하고자 움직였다며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엔진이 꺼지자 납치가 실감됐다. 총을 난사하기에 결국 대피 장소에서 나왔고 그들은 캡틴인 나를 먼저 찾았다” 그들은 석 선장에게 먼저 국적을 묻었고, 그가 ‘코리안’이라 답하자 재차 확인했다. 그 모습에 석 선장은 분노와 애국심이 끓어올랐다고 말했다. “이전에 한국 선박이 피랍돼 100억원에 풀려났는데, 그들도 이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한국을 무시하는구나 생각이 든 그 순간, 쉽게 이들의 뜻을 따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이 후, 석 선장은 엔진이 고장났다며 수리할 시간을 달라 말했다. 엔진에는 이상이 없었다. 그저 시간을 벌기 위한 핑계였다. “수리 하는 척하며 메일로 한국 부대에 납치사실과 위치를 알렸다. 작전 투입까지 좀 더 시간을 벌어달라는 답변이 왔다” 해적들의 위협에 엔진은 다시 켰지만, 그는 상선의 속도를 최저로 놓고 운전했다. 조금 더 시간을 벌기위해 바람의 반대 방향으로 항해하고, 선원들에게 휴지에 불을 붙이도록 해 화재 센서가 작동하게 하는 등 그는 갖가지 방법을 총동원했다고 말했다.

“초초해진 그들 중 하나가 죽이겠다며 칼을 들이 밀었다. 교섭 때문에 나머지 해적들이 말리더라. 분에 못이긴 해적이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며 나에게 소말리아에 도착하자 마자 사지를 잘라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섬짓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6일을 버텼고, 선박에 진입한 해군 청해부대에 의해 구출됐다. 이후 그는 구출 당시 해적들에게 입은 총상으로, 1여 년을 병원에 있었다. 왼손 신경이 끊어져 오른손엔 항상 몸을 지탱해 줄 지팡이를 착용하게 됐지만, 그는 병원생활에서 행복의 원천에 대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누워만 있다가 휠체어를 타고, 이후 목발을 집게 되기까지 걸을 수 있게 됐다는 작은 것 하나만으로도 행복했다. 이 때 행복이란 게 먼 곳에서 찾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이후 당시의 총상을 완쾌한 그는 올해 2월부터 해군 교육사령부의 군무원으로 일하며 장병들의 정신력 강화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특강에 참석한 국민대 학군단 김정록(남·23) 학생은 “그의 특강에서 군인의 기본자질인 애국심과 안보관을 느낄 수 있었다”며 “특강 내내 긴급했던 그 당시 상황이 생생해 머릿속에 그려졌다”고 전했다.

본교 남선영(체육교육 11) 학우는 “학군단 이외 학생들도 참석할 수 있어 기뻤다”며 “그의 희생정신과 결단력을 본받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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