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베토벤의 뒤를 잇는 낭만주의 시대 독일 작곡가 브람스(Brahms). 그가 누군지 문득 떠오르지 않는다면 두개의 드라마를 떠올려 보자. 바로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R☆S 오케스트라가 첫 연주회에 연주한 ‘교향곡 1번 C단조’와 ‘베토벤 바이러스’ 1회에서 강마에가 공연을 포기한 ‘교향곡 3번 F장조’의 작곡가가 바로 브람스다. 17세기 독일 낭만주의 작곡가와 20세기 프랑스 여류작가, 그리고 한국의 배우 박정자가 만났을 때,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공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프랑스 여작가 프랑수아 사강이 지은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와 브람스의 실내악 작품들을 활용해 박정자가 연기하는 1인극이다. 배우 박정자와 브람스가 만난다는 공연 타이틀만으로도 많은 기대를 품게 한다. 클래식 모놀로그 공연이라는 장르 때문인지 박정자는 평소 연극과 영화에서 보여줬던 특유의 카리스마를 감추고,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듯 나긋나긋한 목소리의 엄마처럼 공연을 이끌어간다.


피아니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 혹은 소프라노의 가곡 전후로 박정자의 나레이션이  이어진다. 본래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삼각관계로 얽힌 중년 여성과 두 남자의 심리적 갈등을 섬세한 필체로 그린 소설이다. 1961년 영화로 제작됐으며 이듬해에는 ‘이수’ 라는 제목으로 국내에도 소개됐었다. ‘이수’가 상영되면서 옛 턴테이블*의 효과음이 섞인 브람스의 교향곡 3번 3악장이 들려오면 관객들은 조용히 공연에 빠져든다.


박정자는 영화의 내용과 함께 사람들에겐 사랑받기 위해 아름다워지고, 아름다워지기 위해 사랑받아야 하는 특정시기가 있음을 설명한다. 또한 사랑에 빠진 사람의 피는 몸 끝에서 요동친다고 설명하면서 삶의 원동력으로서의 사랑을 말한다.


박정자는 사강과 브람스에 대해 이야기한다. 두 인물은 고독하고 외롭게 살았다. 프랑수아 사강은 실제로 온갖 추잡한 생활을 일삼은 인물이었다. 잦은 불량스러운 행동으로 학교에서 여러 번 퇴학당했고, 술과 마약, 도박도 서슴치 않았다. 그는 오히려 그런 ‘추잡한 것들’에 애정을 쏟아 부었다. 그는 스스로 어둡고 고독한 삶을 살았지만 주기적으로 사랑을 했고 대상도 다양했다.


사강의 소설에 모티브를 제공한 브람스는 실제로 자신과 14살 차이가 나는 여인 클라라를 사랑했다. 그는 클라라가 스승(슈만)의 아내라는 이유로 혼자서 가슴앓이를 하며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다. 브람스는 스승이 죽은 뒤에도 남겨진 가족들을 돌보면서 그녀의 곁을 지켰고, 클라라가 뇌졸중으로 죽은 뒤 1년후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브람스의 사랑이야기를 설명하고 난 후에는 ‘강철같은 사랑’ ‘브람스의 눈물’이 흘러나온다.


박정자는 “사강은 연상의 여자를 사랑하는 순진한 남자아이의 갈등이 브람스 같다고 느낀 걸까요? 브람스와 클라라처럼,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폴라와 필립은 14살 차이예요” 라고 말하며 넌지시 둘의 연계성을 제시한다. ‘브람스의 눈물’을 들으며 알 수 없는 슬픔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는 그. 그 또한 브람스의 처지와 슬픈 사랑을 공감했다.


공연의 막바지에 박정자는 붉은 드레스를 입고 브람스의 교향곡 3번 3악장의 멜로디를 편곡한 ‘페드라의 노래’를 직접 부른다. 강렬한 붉은색의 의상을 입고 호소력짙은 음색으로 페드라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노래하는 박정자의 모습은 공연내내 추측하기 힘들었던 브람스, 사강, 박정자 세 사람의 연결고리를 찾게 해준다.


박정자는 말한다. ‘여자는 나이가 들어도 마음속에 언제나 젊은 여자가 존재한다’라고. 평소에 드라마나 소설을 읽으면서 눈물을 훔치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이 대사에 공감하기가 훨씬 수월해 진다. 세 사람의 고독한 삶과 외로움을 이해하고 싶다면 이 공연을 추천한다. 다만, 단순히 클래식이 좋다고 해서 또는 박정자의 연기를 보고 싶다고 해서 관람한다면, 오히려 속뜻을 알기 어려운 공연으로 기억에 남을 것임을 경고하고 싶다.


*레코드플레이어 따위에서 음반을 돌리는 회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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