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안의 생활전경-라보엠-렌트

아직 찬 기운이 가시지 않은 3월. 숙명 ‘봄 처녀’들의 새 학기가 시작됐다. 언젠가 마음속에 다가올 따스한 온기를 기대하며 소녀감성을 지켜가고 있는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독서를 하거나 공연을 관람하는 등 다양한 문화생활로 풍부한 감수성을 유지해가는 학우들이 있다. 하나의 줄기를 토대로 피어난 색색의 보헤미안 꽃들을 비교해서 감상해보자.

뮤지컬 ‘렌트(Rent)’가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La Boheme)’을 원작으로 한다는 것은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유명한 ‘라 보엠’이 프랑스의 시인 앙리 뮈르제(Henry Murger)의 소설 ‘보헤미안의 생활 정경(Scenes de la vie de Boheme)’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잘 모른다. 이와 더불어 푸치니보다 먼저 ‘라 보엠’을 만든 레온카발로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즉, ‘보헤미안의 생활 정경’은 ‘라 보엠’(오페라 2편)을 거쳐 ‘렌트’(뮤지컬, 영화)로 뻗어나간 것이다.

우리 기억 속의 ‘라 보엠’은 왜 푸치니의 작품으로 기억되는 걸까? 푸치니와 레온카발로의 오페라를 비교해보면 흥망의 이유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레온카발로의 오페라는 원작과 매우 흡사하게 쓰여서 초연당시에는 인기가 좋았다. 하지만 머지않아 뮈르제의 원작에 구애받지 않고 새로운 대본으로 선보인 푸치니의 오페라가 더욱 인기를 끌게 됐다. 당시 베스트셀러로 불렸던 원작소설과는 또 다른 재미들을 느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푸치니의 오페라는 레온카발로의 작품보다 선율이 서정적이었다. 이야기의 한 장면을 전개하는 과정도 더 효과적이었다. 원작과는 구별되는 ‘색다른 재미와 구성’이 바로 승부의 갈림길이었던 것이다. 이는 멀티유즈(MU)실행단계에서 성공과 실패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기도 하다.

‘보헤미안의 생활 정경’은 4인의 파리 보헤미안 예술가들(로돌프, 마르셀, 슈나르, 콜린느)의 만남을 시작으로 여성(미미, 무제타)들과의 사랑이야기, 그리고 이별로 인한 그 후의 생활들을 재밌게 묘사하고 있다. 작가는 감수성을 자극하는 문장을 이용해 훈훈한 내용을 풀어나가기 때문에 책을 읽는 어느 한순간도 지루함이 없다.

내용면에서 원작과 오페라는 큰 차이를 갖지 않는다. 다만 소설은 단편연작 형식으로 내용이 구성됐기 때문에 보헤미안 4인방이 중심 캐릭터들이다. 하지만 오페라에서는 각각 한 쌍의 연인으로 이목이 집중된다. 레온카발로는 항상 승강이를 하면서도 헤어지지 못하는 마르첼로와 무제타의 사랑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뤘고, 푸치니는 로돌프와 미미의 우연한 만남과 사랑의 시작, 폐렴을 앓다 죽는 미미와 홀로 남겨진 로돌프의 이야기 다룬다. 뮤지컬 ‘렌트’는 더욱 다양한 인물들에 초점을 맞춘다. 일반적인 남녀커플인 로저와 미미, 게이커플인 엔젤과 콜린스, 레즈비언커플인 모린과 조앤까지 이렇게 총 3커플이 등장해 현재 우리 시대 사랑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모든 작품이 사랑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소설과 오페라의 사랑이야기는 여주인공이 죽음을 맞이하며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반면, ‘렌트’에서는 미미가 엔젤의 힘을 빌어 환생한다는 비현실적인 요소가 가미되면서 해피 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공연 ‘라 보엠’과 ‘렌트’를 비교하자면 내용상의 차이뿐만 아니라 무대나 음악같은 외부요소에서도 차이가 있다. 장르의 특징에 따라 오페라에는 웅장하고 클래식한 분위기가 주를 이루고, 뮤지컬은 활기차고 역동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마치 ‘라 보엠’은 검정색과 흰색 같은 단정한 무채색 이지만, ‘렌트’는 다홍색과 같은 따뜻하고도 열정적인 느낌이다. ‘라 보엠’에서 나오는 아리아‘Mi chiamano Mimi(내 이름은 미미)’와 ‘렌트’에서 나오는 ‘Light my candle’도 비교하며 들어보자. 음악적 장르의 차이 때문에 두 곡이 서로 전혀 연관되지 않은 것처럼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Light my candle’을 부르는 도중 미미가 ‘내 이름은 미미’라고 말하는 부분은 ‘라 보엠’과 ‘렌트’의 연관성을 부각시킨다.

소설에서는 공연에서 보이지 않는 세세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고, 공연에서는 소설에서 보이지 않던 생동감과 리듬감을 느낄 수 있다. 단순히 원작에서 파생된 공연을 관람하는 것보다 한가족 작품들을 미리 알고 ‘차이의 즐거움’을 느끼며 감상하는 것이 공연의 재미를 극대화시키는 촉매가 아닐까 싶다.


기업들 사이에서 OSMU(One Source Multi-Use)열풍이 거세다. OSMU는 말 그대로 하나의 컨텐츠를 이용,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시켜 부가가치를 극대화 시킨다는 말이다. 공연예술분야에서는 오래전부터 OSMU가 실현돼 왔었다. 최근 ‘노블컬, 뮤비컬’이라고 불리는 장르도 알고 보면 OSMU가 실현된 것이다. 이번 학기 숙대신보 문화면에서는 문화생활 속 OSMU의 맥락과 작품들을 감상하고 파헤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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