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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청송상
숙대신보  |  shinbosa@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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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8.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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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서울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강 현 주


 열일곱살 때 나는 처음으로 ‘죽음’과 마주쳤다. 서늘한 바람이 나지막이 불던 어느 늦은 여름밤에 할아버지는 꿈을 주며 떠나셨다. 그날 나는 아직 따뜻한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엎드려 통곡했다. 죽음 앞에서 나는 목놓아 우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얼마지나지 않아 할아버지가 쓰시던 방이 내 방이 되었다. 주인 잃은 텅 빈 방의 모습에 마음이 아파 내가 그 방을 쓰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방 안에는 온통 할아버지의 냄새가 베어있었다. 생전에 할아버지는 심한 중풍 탓에 거동이 불편하셔서 누운 채로 대소변을 해결하시곤 했다. 그 기간이 꽤 길었기 때문인지 방 안에는 소변냄새가 베었고 할아버지의 체취마저도 그 냄새가 되어버렸다. 나는 그 방에 벤 할아버지의 냄새를 없애고 싶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에게 죄송했지만 그 냄새가 내게도 벨까 두려웠고 친구나 과외 선생님을 그 방으로 안내할 때마다 그 냄새가 창피하기도 했다. 그때부터 방 안아다 냄새제거에 효과있다는 초를 켜놓기도 하고 방향제를 사 놓기도 했다. 할아버지의 그 냄새가 내게는 창피하고 없애고 싶은 것 일 뿐이었다.

 그 방에 어김없이 초를 켜 놓던 어느날, 할머니께서 조심스레 내게 말씀하셨다.

 ““굳이 없애려고 하지 않아도 냄새는 옅어지게 돼 있단다. 옅어지고 나서 생각해보면 그리워지는게 흔적이야.””

 할머니의 그 말씀을 듣고 나는 화장실에서 몰래 울었다. 10년 넘도록 할아버지의 병수발을 해오신 할머니. 할아버지의 시신 옆에서 잘 죽었다고, 당신 땜에 폭삭 늙은 나도 이제 고생 끝이라며 눈물지으시던 할머니. 지금 할아버지가 가장 그리우실 혼자 남아 적적하실 할머니에게는 할아버지의 흔적을 애를 써가며 없애려 한 내 모습이 꽤나 야속하게 느껴지셨을 것이다. 할머니께 너무나 죄송했다. 나 때문에 이미 많이 옅어져버린 할아버지의 흔적…………. 눈물이 멈추지가 않았다.

 이별의 흔적이란 그런 것일까? 남아서 고통을 주기보다는 희미해져버려 더욱 가슴 아픈 것. 옅어진 흔적은 다시 선명해질 수 없기에 한번 더 이별을 하게 되는 것. 잊으려하면 잊혀지지 않고 잊혀지면 다시 눈물 짓는 것. 내가 그때 배운 이별의 흔적이란 이렇듯 오묘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할머니의 말씀을 되새겨 보며 이별의 흔적의 모순을 발견했다. 잊으려하면 잊혀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잊지 않으면 된다. 할머니의 말씀은 바로 그런 뜻이 었다. 잊혀짐이 또 한번의 이별이 된다면 그 흔적을 오롯이 간직하고 남김없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오묘한 이별의 흔적?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었다. 비록 내가 할아버지의 흔적을 없애려 할 것이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생각나 슬퍼한 것때문은 아니지만 – 그래서 더욱 죄송하다– 할머니께서는 그 방의 냄새를 없애려는 나 때문에 본의 아니게 할아버지의 흔적을 없애고 계셨다. 할머니에게만큼은 그 냄새가 할아버지를 향한 그간의 정성과 사랑이었을텐데도. 철 없는 내게 조심스레 말을 꺼내신 것이 전부였다.

 나는 할아버지의 냄새가 듬뿍 베어있는 그 방에서 켜 놓은 초를 모드 끄고 방향제를 떼어냈다. 그리고는 힘껏 숨을 들이쉬었다. 들이마신 할아버지의 냄새는 그의 따뜻했던 손, 나를 부르시던 목소리 그리고 꿈을 꾸며 떠나신 마지막 모습까지도 생생히 담고 있었다. 내가 그 방에서 숨을 쉬는 매 순간에 할아버지는 내 곁에 함께였던 것이다. 냄새가 싫다고 짜증내던 손녀 딸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시면서…………. 오늘도 내 방 문을 열면 할아버지의 흔적이 나를 감싸돈다.

 흔적에 아파해 무엇하랴 이별의 흔적을 힘껏 들이 마시라. 폐도 혈관으로 내 몸 곳곳에 스며들어 나를 감싸는 흔적을 옅어지기 전에 남김없이 사랑하라.

 이것이 진정 내가 배운 이별의 흔적이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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