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안 주는 부모의 얼굴을 공개합니다’ 지난 2018년 7월, 한 누리집에 무책임한 부모들의 사진과 신상정보가 공개됐다. 누리집의 이름은 ‘배드파더스’로 자녀의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양육비 미지급자’를 고발하기 시작했다. 일반인 광고모델부터 유명 운동선수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신상 정보가 올라왔다. 양육비 미지급자들은 신상이 공개되자 운영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며 강력히 대응했다. 베일에 싸인 배드파더스 운영진을 대신해 모습을 드러낸 한 사람, 바로 구본창 대표다. “누가 제게 총만 안 쏘면 겁나는 게 없어요” 이 시대 진정한 정의의 사도, 구 대표의 삶을 들여다보자. 


집념의 ‘사나이’
학창 시절 구본창 대표는 유일하게 따랐던 체육 선생님께 유도를 배우며 신체 능력을 키웠다. 중학생 때 구 대표는 우연한 계기로 유도를 접했다. 그는 “호기심에 담배를 피우다 체육 선생님께 들켰어요”라며 “선생님께선 학생 선도 차원에서 제게 유도를 가르쳐주셨죠”라고 말했다. 이때 배운 유도는 구 대표의 인생 전반에 큰 도움이 됐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집안 사정이 좋지 못했던 구 대표는 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대체했다. 그는 “학교에 다니지 않다 보니 할 일이 없어 힘쓰는 게 전부인 막노동판을 전전했죠”라고 말했다.

구 대표는 학창 시절 공부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9개월 동안 공부에 매진한 끝에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구 대표가 19살이 되던 시점 그의 친형은 그에게 대학 진학을 권유하며 1년간의 지원을 약속했다. 이후 구 대표는 피나는 노력 끝에 연세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대학에 다니지 않으면 나중에 직업을 구하기 힘들 것 같았어요”라며 “기회는 한 번뿐이라 생각해 절박한 심정으로 공부했어요”라고 얘기했다. 당시 구 대표에겐 입시에 대한 정보를 찾아볼 방법이 없었다. 그는 “파주에 위치한 집에서 기차를 타고 갈 수 있는 학교가 연세대와 이화여대뿐이었어요”라며 “이화여대에 갈 순 없으니 연세대를 선택했죠”라고 말했다. 

대학 시절 과외로 생계를 이어간 구 대표는 대형 입시학원의 원장 자리까지 다다랐다. 그는 대학교 2학년부터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고등학생 과외를 시작했다. 돈을 벌고 싶단 마음 하나로 학교생활보단 과외에 집중했다. 구 대표는 “과외를 하다보니 학원 운영을 직업으로 생각하게 됐어요”라며 “졸업 후 영어 학원 강사 일부터 시작했죠”라고 말했다. 그는 학원 강사로 13년을 일한 뒤 원장이 됐다. 7년간의 원장 생활 끝에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 구 대표는 48세의 나이로 은퇴를 선언했다. 학원에서 근무하며 20년간 숨 가쁘게 달린 그에겐 휴식이 필요했다. 구 대표는 “1년 365일 중 364일, 24시간 중 14시간을 일했죠”라며 “20년을 그렇게 살다 보니 스트레스가 쌓여 돈보단 자유로운 삶을 원했어요”라고 말했다. 


인생을 바꾼 하나의 쪽지
필리핀에서 편안한 노후를 보낼 예정이었던 구 대표의 인생은 한 코피노(Kopino) 엄마의 사연으로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은퇴 후 필리핀 이민을 선택했다. 조기유학으로 필리핀엔 구 대표의 아내와 딸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속세를 벗어나 ‘자연인’처럼 살긴 힘들다고 생각해 필리핀 이민을 선택했어요”라고 말했다. 필리핀에서 생활하던 어느날 구 대표는 평소 친분이 있던 필리핀 여성이 슬피 우는 것을 발견했다. 치료비가 없어 자식을 잃은 여성은 구 대표에게 쪽지를 주며 적혀있는 주소로 한국인 남편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결혼을 허락받고 오겠다며 한국으로 돌아간 남자가 코피노 엄마에게 남긴 것은 고작 쪽지 하나였다. 코피노는 한국인 아빠와 필리핀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말한다. 구 대표가 건네받은 쪽지에는 ‘Geugeol-mitni(그걸 믿니) 18 Korea’가 적혀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구 대표는 코피노 아이들이 양육비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양육비 청구 소송을 지원하는 ‘WLK(We Love Kopino)’를 설립해 코피노 지원에 나섰다. 

구 대표는 WLK를 운영하며 비용 마련에 어려움을 느끼자 총을 들기 시작했다. 그는 “단체를 운영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지만 후원금도 거의 없어 모든 금액을 제가 마련해야 했죠”라고 얘기했다. 운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구 대표가 선택한 것은 ‘인질 구출 사업’이었다. 당시 필리핀 민다나오 지역에선 이슬람 반군 세력이 부자나 외국인을 납치해 인질극을 벌였다. 이 섬에선 납치가 하나의 사업이 될 정도로 성행했기 때문에 인질 구조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구 대표는 “인질을 구조하기 위해 언제나 목숨 걸고 활동했어요”라며 “협상이 이뤄지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엔 서로 총을 들고 싸우죠”라고 말했다.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 반복되자 가족들의 반대 역시 거세졌다. 구 대표는 “활동을 지속하면 연을 끊겠다는 말도 수없이 들었어요”라며 “가족들은 제가 하는 일에 관심도 잘 갖지 않으려고 했죠”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어려움이 반복되는 상황에서도 구 대표는 코피노 지원 활동을 중단하기 어려웠다. 그가 WLK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동기는 봉사심이나 사명감이 아닌 ‘그만둘 수 없는 마음’이었다. 구 대표는 “계속 그만두려고 해봤지만 중간에 물러나면 제가 볼품없어 보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라며 “코피노의 양육비 피해는 커지는데 최전방에서 코피노를 지원하던 제가 빠지면 곤란하죠”라고 활동을 지속한 이유를 밝혔다. 


양육비 피해자의 슈퍼맨
필리핀에서 코피노를 돕던 구 대표는 위험한 인질 구조를 앞두고 잠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2016년 말레이시아 인근 해상에서 이슬람 무장단체의 습격으로 상선 동방 자이언트의 한국인 선장이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회사의 계속된 협상에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선장의 부인이 구 대표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들을 돕기로 결심한 그는 말레이시아로 향하기 전 한국으로 들어와 가족들을 만났다. 구 대표는 “현장에 가면 죽을지도 모르니까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보고 싶었어요”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다행히 협상은 성공했고 한국인 선장은 납치 87일 만에 풀려났다. 한국으로 돌아온 구 대표에게 배드파더스 운영진이 연락을 취해 도움을 청했다.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 공개 사이트를 기획했지만 신상이 공개된 이들의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구 대표는 성가신 일에 휘말릴까 우려하며 처음엔 거절했지만 우리나라 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코피노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는 배드파더스의 활동비를 지원하고 기꺼이 방패막이 됐다. 구 대표는 “저는 배드파더스 운영진이라기보단 자원봉사자죠”라며 “활동비 역시 제가 지원하는 게 전부예요”라고 말했다.

지난 2018년 7월부터 양육비 미지급자들의 신상을 공개한 배드파더스는 2021년 12월 스스로 운영을 중단했다. 여성가족부가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 공개를 시작하자 활동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드파더스는 2022년 2월 ‘양육비 해결하는 사람들’로 이름을 바꾸고 활동을 재개했다. 구 대표는 “여가부의 신상 공개 자료엔 미지급자 사진이 빠져있어요”라며 “사진이 없으면 신상 공개가 아무 효력을 가지지 못하죠”라고 활동을 재개한 이유를 설명했다. 

구 대표는 실효성 없는 현 양육비 이행법의 개정을 촉구한다. 양육비 관련 시민단체들은 끊임없이 여가부와 국회에 양육비 이행법 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28개의 법안은 지속적인 개선 요구의 결과다. 구 대표는 “해결책은 이미 국회에 발의돼 있어요”라며 “그 법안을 통과시키는 게 남은 과제죠”라고 얘기했다. 구 대표는 현재 본인의 페이스북 계정에서 ‘양육비 미투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양육비 미투 운동은 양육비를 받지 못한 피해자가 본인의 피해 사실을 더 용감하게 세상에 알리는 활동이다. 구 대표는 “양육비 피해 사실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 이들의 문제가 빨리 해결되길 바라요”라고 말했다. 


구본창 대표의 신념은 뚜렷하다. 그는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 공개가 사적 제재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양육비 이행법의 허점으로 양육비 문제는 법적으로 해결하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스스로 본인의 피해 사실을 세상에 알릴 수밖에 없다. 구 대표는 “피해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 것을 사적 제재라고 한다면 어떤 피해를 당했을지라도 입 다물고 살란 말과 같아요”라고 말한다.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피해자의 편에서 묵묵히 투쟁하는 구 대표에게 무한한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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