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토끼의 해가 끝나고 푸른 용의 해인 갑진년이 밝았다. 본지 기자단은 용의 기운을 가득 품고 새해를 시작하고자 지난달 16일(금)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향했다. 오는 4월 7일(일)까지 운영되는 특별전시 ‘용을 찾아라’에선 예로부터 신성한 동물로 여겨진 우리나라 용을 관찰할 수 있었다. 박물관 1층에 위치한 으뜸홀에 들어서자 ‘용을 찾아라’ 전시 포스터가 보였다. 포스터 속 QR코드를 인식하니 전시품 위치를 안내하는 지도부터 상세한 설명까지 정리돼 있었다. 지도를 따라 상설전시관 1층부터 3층까지 돌아보며 용 전시품을 속속들이 찾는 재미를 느껴보자.


민간과 불교의 수호자
상상 속 동물인 용은 재앙을 물리치는 신앙의 대상이었다. 민간에선 용이 장수, 부, 건강, 선행, 편안한 죽음에 해당하는 오복을 가져온다고 믿으며 신령스러운 존재로 여겼다. 우리나라의 용 신앙은 하늘과 땅의 기운을 받아 물을 주관하는 용신을 숭배한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에서 물을 다스리는 용 신앙의 발달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1층 선사고대관에 들어서니 6세기 말 고구려 강서대묘 벽면에 그려진 ‘청룡’ 벽화가 눈에 띄었다. 액운과 화를 막아주고 행운을 지켜준단 의미의 청룡은 동쪽을 수호하는 사신이다. 고구려 사람들은 죽은 자가 영원히 평안하길 기원하며 무덤 속 네 벽에 동서남북을 다스리는 사신을 그렸다. 중·근세관으로 이동하니 조선 19세기 그림인 ‘구름 속 용’이 보였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매년 1월이 되면 궁궐이나 관청 대문에 용 그림을 붙였다. 건물 입구에 그림을 붙여 일 년 내내 재앙을 피하고 행운이 찾아오길 바랐던 것이다.

▲1층 선사고대관에 전시된 강서대묘 청룡 벽화다.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1층 선사고대관에 전시된 강서대묘 청룡 벽화다.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전통 미술품을 전시하는 2층 서화관에선 ‘구름 속 용’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림 속 용이 입을 크게 벌린 채 여의주를 물려고 한다.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전통 미술품을 전시하는 2층 서화관에선 ‘구름 속 용’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림 속 용이 입을 크게 벌린 채 여의주를 물려고 한다.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불교에선 용을 국가의 수호자로 인식했다. 삼국시대의 불교는 국가를 보전하고 왕실의 번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었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신라의 용은 호법룡으로 묘사되며 불교를 수호하고 중생의 교화를 돕는다. 법당, 탑 등 사찰 시설물에 장식된 용 무늬는 불교를 지키는 용의 역할을 나타낸다. 백제 7세기 전시품인 ‘용무늬 벽돌’을 살펴보면 불교 사원의 벽돌처럼 중요하고 귀한 물건을 용 무늬로 장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려 13세기에 만들어진 ‘청동 범종’에 표현된 용은 두 발과 입이 종에 붙어 있던 통일신라 시기에 비해 더욱 역동적인 모습을 보인다. 범종은 사찰에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거나 공양 시간 등을 알리기 위해 쓰였다. 고려 사람들은 비가 오지 않을 때면 기우제인 용왕도량을 행해 용왕에게 비를 내려달라 빌었다. 조선 어민들은 안전한 항해와 어업의 풍요를 기원하며 바닷가에서 용왕굿을 행했다. 이들은 용왕신을 모시며 복을 구하고 바다에서 벌어질 수 있는 위험을 막고자 했다.

▲날아오르는 용이 조각된 ‘용무늬 벽돌’은 1층 선사고대관 백제에 전시되어 있다.
▲날아오르는 용이 조각된 ‘용무늬 벽돌’은 1층 선사고대관 백제에 전시되어 있다.
▲1층 중·근세관엔 앞발을 치켜든 용이 고리로 장식된 청동 범종이 있다.
▲1층 중·근세관엔 앞발을 치켜든 용이 고리로 장식된 청동 범종이 있다.


강인함, 왕실과 출세의 상징으로
용은 강력한 힘을 갖고 있어 왕실에선 군주의 상징으로 여겼다. 왕의 얼굴은 용안이라 불렀으며 왕의 옷과 허리띠, 의자까지 용으로 장식됐다. 조선 1872년의 ‘태조 어진’ 곳곳에선 왕을 상징하는 용 무늬를 찾아볼 수 있다. 푸른색 곤룡포의 가슴과 어깨엔 금색 실로 수놓은 용이 자리 잡고 있다. 왕이 앉아있는 붉은색 옥좌 상단 가장자리 양쪽엔 용의 머리를 3개씩 배치했다. 옥좌를 구성하는 각 면엔 금박 가루로 다양한 형상의 용을 그려 넣었다. 조선 왕실의 대표적인 의례 용기인 용준은 화준과 주준으로 나뉜다. 용준엔 푸른 빛의 물감이나 철분이 섞인 붉은 쇳가루로 용무늬가 새겨져 있다. 조선 18세기 후반에 쓰인 ‘백자 청화 구름 용 무늬 항아리’는 왕실 행사 시 꽃을 꽂아두는 화준으로 사용됐다. 뻗어 있는 네 개의 발과 휘날리는 갈기는 바람을 거스르는 용의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화준 옆에 위치한 주준에 그려진 용은 태조 어진 속 용무늬와 유사하다. 주준은 왕실 행사에서 술을 담는 용도로 사용됐다. 조선 19세기 그림인 ‘여의주를 갖고 노는 두 마리 용’처럼 쌍룡이 여의주를 갖고 노는 그림은 ‘쌍룡희주’라고 불린다. 명나라에서 전해진 쌍룡희주는 왕실의 상징물에 주로 활용됐다. 조선시대 임금이 행차할 때 세웠던 깃발이나 경복궁 근정전 옥좌 위 천장 등에서도 같은 그림을 볼 수 있다. 여의주를 쫓는 용들의 신난 표정이 서로 장난치는 모습처럼 활기차 보였다.

▲1층 중·근세관에 전시된 태조 어진이다.
▲1층 중·근세관에 전시된 태조 어진이다.
▲두 용준 모두 ‘백자 청화 구름 용 무늬 항아리’다. 왼쪽은 왕실 행사 시 꽃을 꽂는 화준으로 쓰였으며 오른쪽은 술을 담는 주준으로 사용됐다.
▲두 용준 모두 ‘백자 청화 구름 용 무늬 항아리’다. 왼쪽은 왕실 행사 시 꽃을 꽂는 화준으로 쓰였으며 오른쪽은 술을 담는 주준으로 사용됐다.
▲2층 서화관에 위치한 ‘여의주를 갖고 노는 두 마리 용’이다.
▲2층 서화관에 위치한 ‘여의주를 갖고 노는 두 마리 용’이다.


용은 입신양명 또는 문과의 장원급제를 상징하며 양반이 사용하는 문방구류를 장식했다. 조선 19세기 ‘백자 청화 투각 구름 용 무늬 연적’의 화려한 모양새에서 양반의 물건임을 알 수 있다. 연적은 벼루에 먹을 갈 때 쓰이는 물을 담는 그릇이다. 구름과 용의 눈동자는 푸른 안료로 채색해 백자와 대비를 이뤘다. 용 문양이 화려하게 조각된 연적은 학문을 닦고 손님을 맞이했던 사랑방의 장식품으로 쓰였다. 벽엔 행운이나 과거시험 합격을 기원하며 용 그림 ‘운룡도’를 붙이기도 했다. 운룡도는 양의 기운을 가진 용이 음의 기운이 가득한 구름을 뚫고 승천하는 그림이다. 전통 미술품이 모여있는 2층 서화실엔 운룡도에 속하는 조선 18세기 그림 ‘하늘로 오르는 용’이 전시돼 있다. 그림에 과거시험 합격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니 용의 모습이 더욱 용맹하게 느껴진다.

▲조각된 구름과 용이 입체적인 ‘백자 청화 투각 구름 용 무늬 연적’은 3층 조각공예관에 있다.
▲조각된 구름과 용이 입체적인 ‘백자 청화 투각 구름 용 무늬 연적’은 3층 조각공예관에 있다.


서양 용, 상상 속에 녹아들다
동양 용이 가진 어질고 굳센 인상의 근원은 인도 토착 신앙인 ‘나가 신앙’에서 찾을 수 있다. ‘나가’는 인간 생명의 근원인 물을 장악하고, 비와 천둥, 번개를 조절하는 신이다. 나가의 외형은 인간의 상반신과 뱀의 하반신으로 구성됐다. 나가는 물의 흐름을 조절해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등 자신의 힘을 정의롭지 못한 일에 쓰기도 했다. 이후 신흥 종교로 떠오른 불교를 인도에 정착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민간에게 익숙한 나가 신앙이 활용됐다. 불교가 인도에 자리 잡는 과정에서 나가는 부처에게 교화되어 공포의 대상에서 선한 신으로 변화했다. 불교의 중국 유입 당시 한자로 번역된 경전은 나가를 용으로 표현했다. 이후 중국은 다양한 동물의 특징을 모아 용의 외형을 구체적으로 설정했다. 중국 문헌 「광아」 익조 편에 따르면 낙타 머리, 사슴뿔, 토끼 눈, 소의 귀, 뱀 목, 개구리 배, 잉어 비늘, 매 발톱, 호랑이 발이 용의 외형을 구사하는 데 사용됐다. 다양한 동물을 조합한 모습은 용이 가진 여러 가지 능력을 나타낸다.

서양에서 용은 사악한 존재로 여겨졌다. 기원 8세기 말에서 11세기 초 영국 민족 서사시인 「베오울프(Beowulf)」에선 보물을 지키기 위해 불을 뿜는 용을 간사하다고 묘사한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경전 문헌을 정리한 「성경」은 용을 마귀나 사탄으로 표현한다. 일곱 개의 머리와 열 개의 뿔을 가진 성경 속 용은 왕관을 쓰고 꼬리로 하늘 위의 별을 휩쓸어 땅으로 내던졌다. 그 용은 갓 태어난 아기를 삼켜버리기 위해 탐욕스럽게 바라봤다. 이후 유럽에서 시작된 기독교가 서양 전역으로 퍼지며 용의 잔인하고 교활한 이미지가 점차 확산됐다.

20세기에 들어서자 판타지 영화에서도 용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서양 영화에선 서양 용이 가진 사악한 이미지를 넘어 다양한 용 캐릭터를 구현했다. 동양 용의 수호신과 같은 캐릭터도 존재한다. 영화 <뮬란>(1998)에선 주인공 파씨 가문의 조상 영혼을 모시는 용 ‘무슈’가 등장한다. 파씨 가문의 수호자인 무슈는 뮬란이 임무를 마치고 집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겁 많고 왜소한 무슈의 모습은 용이라면 능력있고 강인해야 한단 고정관념을 탈피했다. 버크섬에 사는 바이킹을 다룬 영화 <드래곤 길들이기>(2010)에선 인간을 적으로 대하는 용 ‘나이트퓨리’가 소년 ‘히컵’을 만나 인간과 우정을 나누는 순한 용으로 변모한다. 영화에선 용의 비행 능력이 강조된다. 나이트퓨리가 튼튼한 몸으로 날아올라 위험에 처한 히컵을 구하는 장면에선 인간을 돕는 용의 특성이 엿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 전시 ‘용을 찾아라’에선 수호신과 왕실의 상징으로 쓰인 용의 활약상을 엿볼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외세의 침입이 잦았던 우리나라는 나라를 지킬 존재로 용을 선택했다. 오늘날의 용은 전통 미술을 넘어 영화의 소재로도 쓰이고 있다.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새로운 특성을 가진 용이 탄생하기도 했다. 오래전부터 변함없이 우리나라를 지켜온 용의 기운을 느끼며 한 해를 시작해 보자. 선조들이 용에게 빌었던 소원처럼 올해 우리의 바람도 이뤄질 것이다.

참고문헌
김희진. (2021). 한국 불교의 용 도상 연구. 계명대학교.
이완여. (2022). 할리우드 판타지 영화 속 비인간 캐릭터 ‘용’의 서사 특징 연구. 건국대학교.
권재웅. (2011). 스토리텔링 내부의 캐릭터 변용에 관한 연구: “목란시”와 <뮬란>의 사례 비교분석. 만화애니메이션연구, no.25,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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