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문화]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스튜디오 지브리(Studio Ghibli)의 애니메이션으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영화 <바람이 분다> 이후 10년 만에 제작한 작품이다. 영화는 전쟁 중 화재로 어머니를 잃은 11살 소년 ‘마히토’가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의 고향으로 피난 가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타지에서 어색한 생활을 지속하는 ‘마히토’ 앞에 말하는 왜가리 한 마리가 나타난다. 마히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 새엄마를 찾기 위해 탑으로 들어간다. 영화의 주 배경은 탑 내부다.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작성하며 어떤 주제로 써 내려가면 좋을지 고민했다. 필자가 정한 주제는 ‘사고’와 ‘공론장’이다. 현대 사회에서 사고와 공론장은 등한시되고 있다. 사고와 사고의 확장을 불러일으킬 공론장은 인간만의 전유물이며 존재 자체로 중요하다. 그러나 짧고 즉흥적인 자극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사고를 지루하다 생각하고 멀리한다. 오랜 시간 동안 고요 속에서 홀로 곰곰이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로의 의견을 들을 여유가 없어진 사회에서 공론장은 점차 본질을 잃어가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통해 사람들에게 사고할 기회를 주고 일종의 공론장까지 마련했다. 영화는 한 가지 주제로 해석할 수 없다. 하나의 주제로 해석하다가도 특정 장면이나 등장인물을 생각하며 다른 해석을 찾는 일이 부지기수다. 영화가 어렵단 피상적인 평가일지라도 그것 또한 그 사람의 해석이다. 그리고 각자의 해석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사람들은 서로의 의견을 ‘그럴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며 경청한다. 그 과정에서 퇴색됐던 공론장의 의미가 점차 빛을 되찾는다.

누군가에게 영화는 오락의 대상일 수 있다. 그러나 영화가 예술의 일종이란 사실을 되짚어 보자. 우린 예술로서의 영화가 관객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예술은 창작자의 의도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매개체다. 감상자가 자신만의 생각으로 작품을 해석할 여지를 남기기도 한다.

관객에게 주제를 쉽게 전달하는 영화도 좋다. 그러나 관객이 영화를 곱씹으며 주제에 대해 깊이 사고하도록 유도하는 영화가 명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예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사고의 가치를 일깨워 주며 공론장의 본질을 되찾게 해준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그 명성과 충분히 어울린다.

한국어문 22 양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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