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숙케치]

▲엘모 성 전망대에서 시내로 가는 길이다.
▲엘모 성 전망대에서 시내로 가는 길이다.

우울한 사람은 과거에 살고, 불안한 사람은 미래에 살고, 평안한 사람은 현재에 산다. 필자는 돌이킬 수 없는 사건들로 우울했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불안했다.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쉼표가 필요해 언니와 이탈리아로 떠났다.

13시간 비행 후 이탈리아에 도착했다. 무엇이 그리 설렜는지 아니면 두려웠던 것인지. 비행하는 동안 한숨도 자지 못했다. 타지에서 보내는 한 달 반이란 시간이 필자에게 어떻게 남을지 생각하며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 도착했다. 로마 일정은 유럽의 살벌한 소매치기를 경계하다 막을 내렸다.

이탈리아에 도착한 지 6일째 되는 날 나폴리로 향하는 기차인 트렌이탈리아(Trenitalia)에 올랐다. 필자는 3대 미항이라 불리는 나폴리 바다 5분 거리에 숙소를 얻었다. “나폴리는 피자지!”라고 말하며 하루 세 끼를 피자만 먹었다. 나폴리에서의 마지막 날엔 나폴리 전경을 보자고 다짐했다. 전경을 보기 위해 도착한 엘모 성 전망대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벤치에 앉아 느긋하게 담소를 나누던 순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이 없어 모자를 쓰고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그러나 비는 더 거세졌고 옷은 다 젖어버렸다. 웃음만 나왔다. 이왕 옷까지 젖었으니 전망대에서 시내까지 걸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잊지 못할 추억을 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시내까지 가는 길 내리막길에선 아주 크게 넘어졌다. 엉덩이가 아려왔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시내 약국에서 짧은 영어로 파스를 구매했다. 이후 도착한 유서 깊은 피자집에선 말없이 피자만 우걱우걱 먹었다. 가게에서 밖을 나서자 비가 폭풍우처럼 쏟아졌다. 별다른 도리가 없어 숙소까지 걸어가야 했다. 바다를 보며 돌아가는 길과 터널을 통과하는 지름길 중 지름길을 택했다. 차와 너무 가까워 무서웠던 터널을 지나 약 20분간 걸으니 숙소에 도착했다. 무사히 도착했단 안도감과 타지에서 이런 일을 겪었단 어이없음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탈리아로 떠나기 전 필자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아무 생각 없이 잠들었던 적이 언제였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현재가 아닌 과거와 미래에 살던 스스로가 불면의 원흉이었을 것이다. 비에 쫄딱 맞은 그날, 온전히 현재에 사는 필자를 발견했다. 당장 주어진 일을 처리하기 바빠 다른 것을 떠올릴 여유가 없었다. 당면한 일로 하루를 보내고 나니 잠도 잘 왔다.

여행의 특권은 ‘지금 당장을 사는 것’이라 생각한다. 여행에선 ‘내가 당장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당장 필요한 것’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며 ‘평안한 나’를 마주할 수 있다.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불안해하고 있다면 주어진 것에서 벗어나 떠나보길 바란다.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기억을 선사할 것이다.

가족자원경영 20 황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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