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칼럼]

지난여름 필자는 음악에 젖어 지냈다. 본교 오케스트라 중앙동아리 소피아(S.O. Phi.A)의 단원 겸 운영진으로서 공연을 기획하고 이끌었다. 구체적으론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오케스트라를 대표하는 악장으로 몇 달을 보냈다.

여러 악기가 어우러질 때 바이올린은 주로 주선율을 담당한다. 바로크에서 고전주의 시대로 넘어가며 현악기가 주인공인 교향곡이 다수 작곡됐기 때문이다. 바이올린 연주자가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많은 인원을 차지하고 그들 중 악장이 결정되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필자는 원래 비올라 연주자였다. 하지만 지난해 4월, 바이올린 연주 인원을 보강하고 정기 연주를 이끌 사람이 필요하단 연락에 새로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가장 먼저 담당한 업무는 ‘곡 선정’이었다. 동아리 개설 30주년을 기념하는 곡을 선정하고자 했다. 먼저 왕립 학교란 본교 명성에 걸맞게 스메타나 연작 교향시 ‘나의 조국’ 중 2번 ‘몰다우’를 첫 곡으로 정했다. 그리고 본교를 상징하는 눈 결정체 이미지에 맞춰 차이콥스키 교향곡 1번 ‘겨울날의 환상’을 마지막 곡으로 골랐다.

연주곡 정하기는 수월했지만 앵콜곡 선정에 어려움을 겪었다. 수십 년을 이어온 동아리의 의미를 기억하며 모든 단원이 화합할 수 있는 곡을 고르기 위해 고민했다. 이 무렵 신해철의 ‘그대에게’에서 ‘언제까지나 사랑하고자 하는 대상’이 음악이란 평론을 읽었다. 이 곡으로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었다. 대부분의 동아리 부원 역시 동의했다. 하지만 악보를 구하기 어려웠고 클래식 공연에서 대중음악을 연주한단 점도 우려됐다. 필자는 고민을 거치며 악장의 역할을 비로소 깨달았다. 악장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지휘자와 단원 사이 의견을 조율하고 전달하는 것이었다. 아마추어 연주자에겐 취미 수준에서도 최고의 음악성을 끌어내기 위한 고민이 필요했다. 그리고 단원이 진심을 다 할 수 있도록 힘을 나눠줘야 했다. 

책임감을 더 깊이 느끼며 정기 연습 내내 단원들을 주도하고 각자 의견을 수렴해 지휘자 선생님께 전달했다. 도와주신 외부 객원분들과도 활발히 소통하고자 했다. 끊임없는 지적에 주눅든 단원들에게 먼저 다가가 용기를 북돋아 주기도 했다.

마침내 공연 날 필자는 악장과 대표자로 무대에 입장했다. 단원들의 악기 조율을 주도하고 관객에 인사를 건넸다. 모든 곡의 연주가 끝나고 박수가 터져 나온 순간, 지난 몇 달간의 자신이 충분히 박수받을 만한 사람이었는지 고민했다. 문득 피천득 선생님의 <플루트 플레이어>란 수필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지휘자가 되겠다는 꿈을 꿔본 적은 없지만 무명의 플루트 연주자가 되고 싶은 때가 가끔 있다’. 이 문구엔 맡은 일에 희열을 느끼고 조화에 기여하겠단 마음이 담겼다. 필자에게 주어진 일이 ‘작은 일’은 아니었지만 작은 소리를 가진 악기 바이올린으로 끝까지 연주해 냈다. 동시에 리더의 역할을 고민했단 사실만으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리더로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뒤늦게 깨달아 아쉬웠지만 훗날 새로운 시작을 위한 가르침이라 믿는다. 이렇게 무명 바이올린 연주자의 지난날들을 갈무리해 본다.

글로벌협력 20 김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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