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문화]

<바비>는 우리나라에서 지난 7월 개봉한 영화다. 전 세계 아이들의 동심을 자극하는 바비 인형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바비가 사는 ‘바비랜드’엔 인형 ‘바비’들과 그들의 짝인 남자 인형 ‘켄’들이 살고 있다. 바비는 의사, 흑인 대통령, 뚱뚱한 바비 등 다양한 직업과 외모를 가졌다. 바비랜드의 핵심 인물인 주인공 ‘바비’는 사회적 미의 기준을 충족하는 금발 백인 여성으로 ‘전형적인 바비’라 불린다. 바비랜드에선 바비가 모든 것을 주도한다. 켄은 바비가 관심을 주고 말을 걸 때만 가치 있는 존재가 된다. “바비랜드에서 바비는 바비(“It’s Barbie.”)고, 켄은 그저 켄(“Ken is just Ken.”)이다”

영화는 주인공 ‘바비’의 몸이 못나게 변하며 시작된다. 주인공 ‘바비’는 이 변화가 자신을 가지고 놀던 현실 세계 여자아이의 슬픔 때문임을 알게 된다. 자신의 몸을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해 주인공 ‘바비’는 켄과 함께 현실 세계로 이동한다. 두 인형이 마주한 현실 세계는 바비랜드의 모습과는 다르다. 주인공 ‘바비’의 예상과 달리 현실 세계 여자아이들은 바비 인형에 거부감을 느낀다. 그는 이 모습을 보고 절망하고 가부장제 속 여성의 위치에서 위협당하며 충격을 받는다. 반면 켄은 여성혐오가 만연한 사회 속에서 자신의 지위가 상승한 듯한 기분을 느낀다. 바비랜드로 돌아온 켄은 현실 세계에서 본 가부장제를 전파한다. 켄들의 반란으로 바비랜드는 사라지고 그 자리엔 ‘켄덤’이 생긴다. 가부장제를 접한 후 남성 우월적 사상에 세뇌당한 바비들은 주인공 ‘바비’와 그의 조력자 바비들 덕분에 본래 모습으로 돌아온다. 바비들은 계속 세뇌당한 척 켄들 사이를 교란하고 이들을 싸우게 만든다. 그들이 싸우는 동안 바비들은 헌법 개정 투표로 다시 바비랜드를 탈환한다. 주인공 ‘바비’의 몸도 원래대로 돌아간다.

바비들이 바비랜드를 탈환하는 방식은 어쩐지 친숙하다. 국회나 기업은 여성의 말을 듣는 척 하지만 실제론 변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모두 ‘여성의 적은 여성’이란 오랜 신화를 알고 있다. 서구권은 최근 ‘정당한’ 투표에 따라 여성과 다른 소수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영화는 바비와 켄에게 현실의 여성혐오를 절반씩 부여했다. 뚜렷한 여성혐오에 주목할 땐 현실 ‘여성’을, 관객이 걸러내지 못하는 사소한 여성혐오를 보여줄 땐 ‘켄’을 여성에 대입하며 연출에 혼란을 준다. 혼란은 불쾌함과 두려움을 조성하지만 그만큼 보지 못했던 진실에 한 발짝 다가가게 만든다. 젠더 문제에서 ‘원래’란 말은 우리의 시야를 가린다. 영화는 익숙한 안대를 건네는 대신 천에 켄과 바비를 그려 넣는다. 우리는 바비와 켄을 자세히 살펴보며 새로운 젠더 문제를 발견한다. 영화가 기존의 지식층에서 새로운 장으로 이동할 때 관객은 해방감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바비가 그랬듯이.

법 20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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