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칼럼]

이제 사진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나를 위한, 나만 보는 사진부터 친구들과 같이 보는 사진, 공식적인 사진, 위성 사진까지. 우리의 세계는 사진과 언제든지 사진에 담길 수 있는 피사체로 가득 차 있다.

사진의 역사가 200년이 되지 않았단 사실이 새삼 놀랍다. 카메라가 없던 시절엔 답답해서 어떻게 살았을지 궁금하다. 수업 시간에 중요한 강의 자료가 화면에 띄워지면 여기저기서 ‘찰칵’ 소리가 난다. 길을 가다 귀여운 고양이를 보고 ‘찰칵’, 맛있는 음식 앞에서 ‘찰칵’. 어딜 가든 셔터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사진을 찍기 위해 음식점과 카페에 가는 세상이 됐다.
필자는 ‘사진 찍기’ 자체를 비판적으로 보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대학생인 필자도 많은 사진을 찍는다. 현재 이용 중인 사진 저장 서비스엔 이미 5만 장이 넘는 사진이 담겨 있다. 매번 용량이 부족할 정도다. 물론 그중엔 중요한 사진도 많다. 그러나 그 사진을 제외하더라도 5만 장이 넘는 사진이 저장된 이유는 사진을 찍는 것이 습관이 됐기 때문이다. 이것이 좋은 습관인지 스스로 의문이 들었다. 사진을 찍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에 셔터를 누르고 화면을 캡처한다. 갤러리엔 다시 찾아보지 않는 사진이 계속 늘어난다. 그러나 사진첩을 정리할 때 삭제하는 사진은 많지 않다. 왠지 이 사진을 지우면 필자의 기억과 기록이 영영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이상한 두려움 때문이다. 처음부터 필요한 사진만 찍는 것이 명쾌한 해답이란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생각한 슬기로운 사진 생활을 위한 몇 가지 사항은 다음과 같다. 먼저 사진만을 위한 사진을 경계해야 한다. 적어도 사진 때문에 소중한 사람을 서운하게 만들거나 배려받지 못했단 생각이 들게 해선 안 된다. 또한 많은 사진을 찍더라도 눈으로 담고 머리로 기억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 카메라와 스마트폰은 인간의 눈과 뇌가 아니다. 요즘 많은 사람이 눈과 뇌의 일을 기기에만 맡겨버린단 생각이 든다. 스마트폰이 생긴 이후 전화번호를 외우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마지막으로 무표정으로 찍는 사진을 경계했으면 좋겠다. 사진 찍기는 아름다운 행위다. 당시를 기억하고, 마음속에 담고 싶었다면 진심으로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다. 필자를 포함한 많은 청춘이 사진에 집착이 아닌 애정만을 담길 바란다. ‘보여지는 사진’에만 시간을 허비한다는 건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필자는 찍거나 찍힐 때 행복했던 사진은 몇 년이 지나도 가까이 두고 꺼내본다. 진심을 다해 찍는다면 ‘잘 찍은 사진’이 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피사체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도 하나의 기쁨이 된다. 굳이 왜곡하고 보정하지 않아도 두고두고 돌아볼 자연스러운 사진을 자주 찍길 바란다.

한국어문 22 최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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