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칼럼]

대학 입학 후 한동안 갖지 못한 것과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렸다. 대단한 성공을 바라서 그랬던 건 아니다. 그저 남들이 하니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무작정 없는 것을 채우는 데 몰두했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나날이 지나 대학교 2학년 무렵 삶의 의미에 회의를 느꼈다. 필자에게도 ‘대2 병’이 찾아온 것이다.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몰라 헤매는 날의 연속이었다. 매일매일을 치열하게 살아도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조급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남들과 달리 필자만 뿌연 안개 속에서 허덕이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때 서양미술사 과제를 위해 관람한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 ‘한국특별전’은 필자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톡 건들면 금방 쓰러질 것 같은 앙상한 몸집과 달리 강한 눈빛을 지닌 조각상 ‘걸어가는 사람’의 작품설명은 필자에게 큰 위로를 줬다. “마침내 나는 일어섰다. 그리고 한 발을 내디뎌 걷는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 끝이 어딘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러나 나는 걷는다. 그렇다 나는 걸어야만 한다.”

삶이란 본질적으로 불안한 것이란 걸 알게 됐다. 꼭 방향을 정해 걷는 사람만이 정답은 아니란 깨달음도 얻었다. 필자는 처음으로 '예술의 힘'을 체험했다. 이후 때때로 마음이 힘들 때면 미술관으로 향하는 버릇이 생겼다. 때마침 부캐릭터, 일명 ‘부캐’가 유행하던 시기라 예술을 통해 느낀 감정과 취향을 개인 SNS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주말과 공강 시간엔 미술관이나 전시회장을 방문해 온전히 나에게 몰입하는 시간을 가졌다. 작품이 주는 감정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애써 모른 척 마음 한편에 묵혀 두었던 슬픔, 분노, 그리움을 하나씩 들여다볼 수 있었다. 다양한 작가들의 시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며 바라는 삶의 모습을 그려갈 수 있게 됐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시간은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줬다.

한때 필자는 ‘취미생활은 시간과 돈이 많은 사람들만 향유할 수 있는 문화’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더 이상 취미생활을 사치라고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필자에게 취미는 삶의 원동력이다.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운 꾸덕꾸덕한 대화를 나누며 이따금 찾아오는 슬픔과 불안을 쉽게 이겨낼 수 있었다. 치열하게 살아갈수록 잠시 멈춰 쉬어가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취미가 있는 삶은 일상에 여유를 한 스푼 더해주고 삶을 보다 가볍게 만들어 준다.
독자 중 치열하고 바쁜 나날을 살아가고 있는 이가 있다면, 또 취미를 찾지 못한 이가 있다면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줄 ‘무언가’를 찾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좋아하는 책 문구로 글을 마친다.

“좋아하는 게 하나 생기면 세계는 그 하나보다 더 넓어진다. 그저 덜 휘청거리며 살면 다행이라고 위로하면서 지내다 불현듯 어떤 것에 마음이 가면, 그때부터 일상에 밀도가 생긴다. 납작했던 하루가 포동포동 말랑말랑 입체감을 띤다.” - 『아무튼, 여름』, 김신희

생명시스템 17 송자영

저작권자 © 숙대신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