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탄의 맷돌’. 「거대한 전환」의 저자인 칼 폴라니(Karl Polanyi)가 초기 산업혁명의 파괴적인 영향력을 묘사하기 위해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에게서 빌려온 말이다. 한 시대가 역사의 한 장으로 덮여가고 새로운 시대를 규정하는 패러다임(Pparadigm)이 소용돌이칠 때 이보다 더 적합한 표현은 없을지도 모른다. 언젠가부터 혁명이다, 위기다, 재앙이니 하는 말들이 주변을 배회하는 탓에 이젠 잿빛 담론이 만성화될 지경이다. 물론 위안도 넘쳐난다. 혁명적인 변화가 초래한 위기는 오직 낡은 것들에게만 적용될 뿐 누군가에겐 새로운 도약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변화의 역학은 이중적이다.

시대가 어수선할 때 사람들은 흐름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말한다. 바람의 방향을 가늠하고 그 힘을 헤아릴 수 있어야 순풍을 탈 수 있단 뜻이다. 할 수만 있다면 변화를 주도하라는 것, 하지만 모두가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최소한 맷돌이 일으키는 소용돌이 속으로 끌려 들어가지 말란 조심스러운 경고도 들어 있다. 간단히 말해 변화를 지각하는 감수성과 그 바람의 방향을 읽을 줄 아는 역량을 높여야 한단 권고다. 대학 교육이라고 예외일까. 대학도 숨 가쁘게 적응 중이다.

ESG와 생성형 AI는 최근 사회적 변화의 한가운데 자리 잡은 키워드(Keyword)다. 기후 위기를 순화하기 위해 인류 문명 에너지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사회 구조는 물론 의사결정 양식도 변화돼야 한다. 디지털 기술의 총아인 생성형 AI는 인간의 지적 노고를 점점 소거하고 있다. 거의 모든 것을 자동화할 태세다. 이제 기계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료를 찾고 정리하고 요약하는 일 따윈 내가 할 테니 당신은 창의성이 돋보이는 일을 하세요!’ 사회 시스템도 바뀌고 노동의 양식도 바뀔 듯하다. 남아있는 질문은 이렇다. ‘그렇다면 어떤 방향으로 바뀌어야 할까?’

방향을 잘못 잡으면 자칫 역풍을 만나게 될 수 있으니 신중하게 방향을 가늠해야 한다.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은 리터러시(Literacy)다. 시대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있을까.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일 리는 없다. 언어는 결국 도구고, 그 도구로 무엇을 할 것인가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질문이다. 생성형 AI 덕에 창의성은 점점 더 가치가 높아질 것이다. 창의성은 어디서 올까.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고 새로운 문제를 찾아낼 힘이 그냥 생겨날 순 없다. 아무것도 없는 데에서 새로운 것이 나오면 그것만큼 기적인 것도 없다. 인간의 삶과 사회에 대한 폭넓은 지식이 새로 요구돼야 하는 이유다. 사회에 혁신을 불러오기 위한 마중물로서 우리가 도대체 어떻게 살고 있고, 또 살고 싶어 하는지 읽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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