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숙케치

열차의 침대칸은 1층과 2층으로 나뉘어 있었고, 침대 옆 작은 창문으로만 시간과 바깥의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 깊은 잠이 들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지만 낯선 곳으로 간단 설렘 때문인지 철길을 통과하며 생기는 크고 작은 소음과 진동이 불편하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12시간을 달려 마주한 풍경은 설원의 기차역이었다. 굽이굽이 철길을 달리고, 여러 이름 모를 지명을 지나 핀란드 북부 로바니에미(Rovaniemi)에 도착했다.

오로라를 보지 않는 로바니에미 여행은 지루할지도 모른다. 낯선 나라, 처음 온 도시임에도 필자는 생생하게 살아있단 느낌을 받았다. 아무 카페에 들어가 핀란드어가 가득 적힌 진열대에서 손짓으로 주문했다. 산타 마을에 방문해 산타와 이야기 나누고, 북극권을 지나 보고, 낯선 이들과 ‘불멍’을 하며 마시멜로를 구워 먹었다. 마트에서 핀란드어가 가득 적혀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식재료를 사서 요리도 했다. 눈발과 함께 하루를 보내다 집에 오면 숙소 사우나에서 친구와 떠들며 지극히 일상적이지만 특별한 5일을 보냈다.

눈이 흔한 동네다 보니 무릎까지 눈이 쌓여도 인적을 느낄 수 없는 곳들이 많았다. 그런 곳을 볼 때마다 발자국을 남기고, 몸을 던져눕고, 썰매를 타고 눈 위를 달렸다. 지금 돌아보면 순백색의 깔끔한 설원에 흔적을 조금이나마 덧대고 싶었던 것 같다. 짧은 기간을 이곳에서 보내고 돌아가기 너무 아쉬웠기 때문이다. 내일이면 다시 새로운 눈에 덮이겠지만 오늘 필자가 이곳에 있었단 사실을 새기고 싶었다.

아침 10시나 돼야 해가 비치기 시작하고, 오후 4시면 깜깜해지는 곳. 지내는 내내 구름에 뒤덮인 하늘과, 매일 새롭게 눈이 수북하게 쌓이던 로바니에미. 처음 목적이었던 오로라는 잊은 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원래 찾던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을 느끼고 돌아왔단 생각이 든다. 여행에서조차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해 용을 쓰고, 설령 이루지 못했다고 좌절한다면 여행의 진정한 의미를 찾았다고 할 수 없지 않을까.

인공지능공학 19 정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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