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푸, 로션, 손소독제, 향수…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 ‘동물실험’으로 그 효과가 증명됐단 것이다. 동물을 대상으로 행해지는 동물실험은 생필품, 의약품, 음식 첨가물의 효능 및 안전성을 검증한다. 그러나 동물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며 동물실험은 윤리성 문제에 직면했다. 이와 함께 동물대체시험의 필요성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9월 환경부는 오는 2030년까지 독성시험의 60퍼센트를 동물대체시험으로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실험동물이 사라질 수 있을까? 동물실험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은 있는 걸까? 이에 답하려면 우선 동물실험의 현황과 동물대체시험법의 종류를 알아봐야 한다. 


동물에겐 고통, 이젠 ‘대체’할 때
동물실험은 질병 및 독성 연구, 신약 연구 등을 위해 동물에게 시행되는 과학 실험을 의미한다. 동물실험은 인간에게 해가 될 수 있는 약품, 화학 제품 성분을 미리 파악하고 부작용을 검토하고자 실시된다. 실험에서 연구자들은 동물에게 대상 물질을 투약한 뒤 부작용을 관찰한다. 동물실험이 이뤄지는 대표적 이유는 동물과 사람 간 유전자 유사성이 높기 때문이다.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따르면 동물실험으로 가장 많이 희생되는 쥐의 유전자는 인간과 약 80퍼센트 유사하다. 동물실험은 화학 제품 독성을 검사할 때 시행되기도 한다. 독성 물질의 치사량은 주로 ‘중간 치사량’으로 알아낸다. 이는 피실험동물의 절반이 죽게 되는 물질의 용량을 뜻한다. 중간 치사량은 물질 간 독성을 비교할 수 있는 지표다. 해당 실험에선 동물에게 점점 더 많은 양의 시험 물질을 투약해 독성 정도를 밝혀낸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지난 2021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서 488만 마리가 넘는 동물이 실험에 동원되고 있다. 2008년 관련 수치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후 최대치다. 동물실험 계획서 심의 건수도 2017년 2만 8506건, 2019년 3만 9244건, 2021년 4만 8533건으로 매년 약 1만 건씩 증가 중이다. 

동물실험은 동물들에게 치명적인 고통을 준다. 동물실험에선 고통의 정도를 가장 낮은 A등급부터 가장 높은 E등급까지로 나눈다. A등급 실험은 생물 개체를 사용하지 않거나 세균 등을 이용하는 경우로 별도 심의 및 승인 절차가 이뤄지지 않는다. E등급 실험은 *척추동물을 대상으로 경감하기 어려운 고통 및 억압을 가한다. 동물실험 시엔 마취제나 진통제가 사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동물은 경련, 영구적 신경 손상 등 증상을 겪거나 죽음에 이른다. 우리나라에서 실시되는 동물실험 중엔 E등급 실험이 가장 많다. 2021년 기준 E등급 실험에 동원된 동물 수는 약 218만 마리로, 전체의 44.7퍼센트를 차지했다. 해당 비율은 캐나다(1.8퍼센트), 유럽연합(11퍼센트) 등 해외 다른 국가에 비교했을 때 높은 수치다. 

동물권 논의가 활성화되며 동물대체시험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실험동물이 받는 고통이 알려지고 생명 존중 사상이 퍼지자 동물대체시험법이 대안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동물대체시험법은 동물이 불필요하게 실험에 동원되는 경우를 줄이고자 개발된 새로운 시험 방식을 통칭한다. 1959년 영국 동물학자 윌리엄 러셀(William Russell)과 미생물학자 렉스 버치(Rex Burch)는 저서 「인도적인 실험 기법의 원리」에서 동물대체시험 원칙을 정의했다. 이들은 실험 과정에서 동물을 대체(Replacement)하거나, 동물 수를 줄이거나(Reduction), 동물의 고통을 경감하는(Refinement) ‘3R’ 원칙을 제안했다. 

3R, 바꾸고 줄이고 덜자 
3R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동물대체시험 기본 원칙이다. 3R은 1999년 이탈리아 볼로냐(Bologna)에서 개최된 세계회의에서 채택됐다. 이에 대부분의 국가에선 동물을 사용하는 연구, 실험, 교육에 3R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미국 식품의약국은 1월 ‘동물실험대체법’을 제정해 동물실험자료 없이 신약 개발이 가능하단 규정을 마련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동물실험 계획을 심의할 때 3R을 가장 먼저 고려한다. 동물대체시험법 기술 개발도 활발히 이뤄지는 중이다. 2009년 설립된 한국동물대체시험법검증센터를 중심으로 현재 3개 기관이 동물대체시험법을 개발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농약, 식품의약품안전처은 화장품, 환경부는 화학물질 독성과 관련한 대체시험법을 연구한다. 

대표적인 대체시험법 중 하나인 ‘유세포 분석을 이용한 국소림프절시험법(이하 국소림프절시험법)’은 실험에 이용되는 동물 수를 줄이고 고통을 완화할 수 있다. 2018년 OECD 표준 대체시험법으로 채택된 국소림프절시험법은 화장품 독성을 검사할 때 주로 활용된다. 국소림프절시험법은 동물에게서 적출한 림프절을 관찰해 피부 면역 반응을 확인하는 방법이다. 림프절은 몸 속 여러 유해 물질을 제거하는 면역기관이다. 해당 시험엔 쥐나 기니피그 등 소동물이 동원되지만 기존 방식보다 시험 기간이 3분의 1가량 줄어들어 동물의 고통이 감소한다. 약 일주일간 이뤄지는 해당 시험을 진행하려면 최소 4마리의 설치류가 필요하다. 연구자는 시험하고 싶은 물질을 동물 피부에 반복적으로 접촉시켜 알레르기 반응을 평가한다. 이후 동물에게 시험 물질을 도포한 뒤 피부가 붉게 변하는 홍반 증상을 관찰하면 된다.

실험동물을 이용하지 않는 방식으론 ‘인체각막유사 상피모델을 이용한 안자극시험법(이하 안자극시험법)’ ‘인체피부모델을 이용한 피부자극시험법(이하 피부자극시험법)’이 있다. 2019년 OECD 표준으로 인증받은 안자극시험법은 각막이식수술 후 남은 조직을 배양해 만든 3차원 모델을 활용한다. 해당 모델은 실제 인체 각막 구조와 유사하다. 안자극시험법은 토끼 눈을 이용하던 기존 방식을 대신해 화학물질 자극성을 평가한다. 2021년 OECD 표준으로 등록된 피부자극시험법은 피부 가장 바깥에 있는 인체표피조직에서 유래한 피부각질세포로 3차원 모델을 만든다. 연구자는 물질로 인한 피부 모델 손상 정도를 세포 생존율로 측정해 화학 물질의 피부 자극 가능성을 평가한다. 피부자극시험법은 토끼 피부 대신 각질세포를 이용해 인체와 생리학적으로 유사한 결과를 도출한다. 

한계 있지만 꾸준히 발전 중
현재까지 상용화된 동물대체시험법은 실효성과 인식 면에서 한계가 있다. 해당 방법으론 다양한 질병의 원인을 추적하기 어렵다. 박재학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신체 기관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질병엔 대체법 활용도가 떨어진다”며 “대체법으로 원인을 규명할 수 있는 질병은 전체의 0.01퍼센트에 그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고혈압, 당뇨병과 같이 폐, 심장 등 여러 기관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질병은 대체법으로 연구하기 어렵다. 동물대체시험을 둘러싼 부정적 인식도 문제다. 국제 동물 보호 단체인 한국HSI의 서보라미 정책국장은 “화장품 개발엔 안자극시험법, 피부자극시험법이 보편적으로 활용된다”면서도 “신약 개발, 수술 치료 등 인간의 생사와 연결된 분야에선 아직 대체시험법을 향한 불신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최근 동물대체시험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한 연구가 전개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오가노이드(Organoid)’가 있다. 오가노이드는 인간의 폐, 간, 심장 등 특정 장기를 실제와 근접하게 재현한 3차원 유사 장기다. 줄기세포를 3차원으로 배양해 재조합하면 오가노이드를 만들 수 있다. 줄기세포는 여러 종류의 신체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세포다. 폐, 간 등 신체조직 내 줄기세포가 결합해 제작된 오가노이드는 실제 우리 몸속 장기와 유사하게 기능할 수 있다. 오가노이드를 활용한 ‘오간온어칩 (Organ-on-a Chip)’ 기술은 몸속에서 발생하는 각종 현상을 작은 칩에 구현한 것이다. 박 교수는 “하나의 칩에 뇌, 심장, 폐 등 여러 인공장기를 모아 재조합하면 우리 몸의 전체적인 상호작용을 확인할 수 있다”며 “신약 개발 시 오가노이드가 임상실험을 대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가노이드는 현재 기술력으론 실제 장기를 완벽히 대체할 순 없으나 유망한 대체시험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초소형 대체 모델’과 ‘컴퓨터 시뮬레이션’ 또한 대표적인 차세대 동물대체시험법이다. 초소형 대체 모델은 쥐, 토끼 대신 하등동물인 제브라피쉬, 물벼룩을 사용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제브라피쉬는 뇌, 뼈 등의 기관을 갖고 있어 인간과 유사하며 체외수정을 한다. 따라서 임상 연구를 위해 유전자를 제거하거나 억제하기 쉽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연구는 기존에 축적된 동물실험 데이터를 최대한으로 적용해 독성을 예측한다. 해당 연구는 기계학습 알고리즘을 이용해 예측값과 결과의 관계를 해석한다. 기계학습 알고리즘은 기존 데이터를 사용해 다양한 문제 해결의 성능을 높인다. 


오는 4월 24일은 세계 실험동물의 날이다. 해당 기념일은 동물 실험에 반대하는 움직임을 공식화하고자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선 2020년 12월 ‘동물대체시험법 활성화를 위한 법안’ 발의 후 동물대체시험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동물대체시험법 논의는 동물 복지와도 직결된다. 박재학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대체시험법에 관심을 갖는다면 동물에 대한 감수성을 높일 수 있다”며 “동물을 향한 우리의 잔인성을 묵인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동물대체시험법이 어떻게 발전해나갈지 앞으로의 미래를 지켜보자. 
 

*척추동물: 등뼈를 가지고 있는 동물로 포유류, 파충류 등이 이에 속함.

참고문헌
이형석, 김정기.(2018). EU에서 동물복지와 실험동물 보호에 관한 연구, 법학논총, 25(2), 207-235
백경희, 강병우.(2018). 우리나라 동물실험절차에 대한 법제의 검토, 과학기술과 법, 9(2), 95-118
최훈, 「동물윤리 대논쟁」, 사월의 책, 2019
안전성평가연구소.(2020). 안전성평가연구소 이슈리포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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