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청주방송에서 프리랜서로 14년간 일해온 한 PD가 처우 개선을 요구했단 이유로 돌연 프로그램 하차 통지를 받았다. 그는 방송국을 대상으로 부당한 해고임을 주장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1년 5개월의 분투 끝에 나온 결과는 ‘패소’였다. 부당 대우 구제 소송에서 패소한 프리랜서는 그뿐만이 아니다. 최근 노동 환경과 산업 구조 변화에 따라 프리랜서가 늘고 있으나 이들을 보호할 방안은 부족한 상황이다. 프리랜서가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으며 일하기 위해선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프리랜서 불공정 계약의 현황과 해결책을 짚어보자. 


프리랜서를 아시나요
프리랜서는 조직에 소속되지 않고 자유로운 계약 조건에 따라 일하는 개인을 의미한다. 프리랜서란 직업은 법률에서 따로 규정하는 바가 없다. 김유경 돌꽃노동법률사무소 노무사는 “출퇴근이 자유롭고 개인이 짠 계획대로 일하는 경우라면 모두 프리랜서라고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프리랜서의 종류는 작가부터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 강사, 건축가, 통번역가, 음악계 종사자, 헬스 트레이너까지 다양하다. 

프리랜서는 일반 근로자와 다른 방식으로 계약을 체결한다. 일반 근로자는 명확한 근로조건이 명시된 ‘근로계약서’를 작성한다. 반면 프리랜서는 지정된 계약서가 없어 통상적으로 ‘업무위탁 계약서’ ‘도급 계약서’ ‘용역 계약서’를 작성해 고용주와 계약한다. 업무위탁 계약은 요청받은 업무를 성실히 이행하기 위한 사항을 지정하는 계약이다. 도급계약은 일의 완성을 목표로 보수를 약속받는 계약을 의미한다. 용역계약은 고용주와 프리랜서가 업무와 대가를 약속해서 정한다. 앞선 세 가지 계약은 통칭 ‘프리랜서 계약’이라 불린다. 프리랜서의 업무 진행 방식이나 시간, 장소 등은 정해져 있지 않다. 그들은 개인이 제시하는 조건 하에 계약상의 업무를 요청받은 대로 수행한다.

최근 ‘긱(Gig) 경제’ 시대가 도래하며 프리랜서의 수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긱 경제란 회사에서 노동력이 필요한 때에 임시직 고용을 늘리는 현상을 말한다. 국세청의 ‘인적용역 사업소득 원천징수 자료’에 따르면 프리랜서는 지난 2016년 515만명에서 2020년 704만명으로 189만명 증가했다. 프리랜서를 희망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지난 2021년 취업플랫폼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2030세대 구직자 1674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64.4%(1078명)가 ‘비정규직 및 프리랜서로 일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자유로운 계약의 어두운 이면 
프리랜서는 일반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아 법적 보호를 받기 어렵다. 우리나라 노동법은 조직이나 기업에 소속돼야 근로자로 판단한다. 근로 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는 4대 보험에 가입되며 일정한 임금, 근로 시간, 퇴직금을 보장받는다. 그러나 프리랜서는 소속이 없단 이유로 근로자로 구분되지 않아 노동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프리랜서가 근로자와 동일하게 대우받기 위해선 대법원이 제시한 근로자 판단 기준 열 가지를 충족해야 한다. 해당 기준엔 ▶업무수행과정에서 고용주로부터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지휘감독을 받는지 ▶근무 시간과 근무 장소가 지정되고 이에 구속되는지 등이 있다. 그러나 과거에 확립된 기준 탓에 프리랜서가 근로자로 인정받는 건 어렵다. 김 노무사는 “열 가지 기준은 개인이 준비해 통과하기엔 상당히 버겁다”고 말했다.
 

▲콘텐츠산업 프리랜서가 경험한 불공정 행위를 나타낸 그래프다. (한국콘텐츠진흥원. (2021). 2021년 콘텐츠산업 10대 불공정 행위 실태조사.)
▲콘텐츠산업 프리랜서가 경험한 불공정 행위를 나타낸 그래프다. (한국콘텐츠진흥원. (2021). 2021년 콘텐츠산업 10대 불공정 행위 실태조사.)

프리랜서는 계약서에 명시된 내용 외 부당한 요구를 받기도 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1년 콘텐츠산업 10대 불공정 행위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출판, 만화나 웹툰, 음악이나 공연, 방송 업계에서 활동 중인 프리랜서 중 70%가 넘는 이들이 불공정 계약에 노출됐다. 대표적인 불공정 행위엔 ▶협의 없는 작업 내용 변경 ▶지식재산권 강제 양도 ▶납품 이후 재작업 요구 및 재작업 비용 미보상 등이 있다. 웹툰 각색 작가로 일하고 있는 천민경(24) 씨는 “참여하던 작업물에서 이유도 알지 못한 채 강제로 하차한 적이 있다”며 일방적으로 계약이 해지됐던 경험을 설명했다. 수출용 웹툰 현지화 편집자로 활동했던 정수민(홍보광고 19) 학우는 “계약 시 저작자에게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이후 수익은 출판사에게만 돌아가는 ‘매절 계약’을 체결한 동료 작가가 있었다”고 말했다. 

장시간의 강도 높은 노동으로 인한 프리랜서의 신체적∙정신적 피해는 상당한 수준이다. 서울시 문화예술·프리랜서 공정거래지원센터에 따르면 2019년 90건이었던 상담 건수가 2021년엔 150건으로 66.7% 증가했다. 올해 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웹툰 작가들의 정신건강 및 신체건강과 불안정 노동 수준 실태 조사’에 따르면 320명 중 25.7%(82명)가 건강 문제로 쉰 경험이 있었고 40%(128명)은 아파도 참고 일했다. 천 씨는 “매주 웹툰을 연재하기 위해 건강을 포기하며 소화하기 어려운 일정을 이어가는 작가들이 많다”고 말했다.

불공정 계약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개인은 올바른 계약서를 작성하고 증거를 수집해 불공정한 계약에 대응할 수 있다. 김 노무사는 “서면 계약서 없이 일을 시작하는 프리랜서는 불리한 상황에서 구제받기 어렵다”며 계약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경기도 평생학습포털 ‘계약작성가이드’에 따르면 계약서엔 ▶계약 기간 ▶계약에 따른 의무 ▶업무 내용 ▶근로 시간 ▶보수 ▶계약 해지 등의 조항이 포함돼야 한다. 디자인 관련 업계의 경우 업무의 구체적인 내용과 레퍼런스, 기간, 수정 횟수 등을 지정할 필요도 있다. 프리랜서 디자인 강사로 일한 전하린(28) 씨는 “개인이 직접 계약서를 만들어 업무 수행 내용을 명확히 표현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계약 이행 과정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면 자신이 근로자로 일했다는 증거를 먼저 확보해야 한다. 근로자로 인정돼야 노동법의 보호를 받아 불리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에선 출근부, 업무보고 내역 등을 근거로 프리랜서를 근로자로 판단한다.

불공정 계약 피해를 지원하고 예방하기 위해선 지자체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 지자체는 불공정 계약을 겪는 프리랜서를 구제하기 위한 전문가 상담 및 자문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경기도의 ‘2021 프리랜서 실태조사’에 따르면 ‘경기도에 희망하는 지원방안’을 묻는 질문에 ‘부당행위 상담 지원’의 수요가 80%(997명)로 가장 많았다. 현재 서울시 ‘문화예술 불공정피해상담센터’에선 프리랜서 계약서 검토, 저작권 문제, 수익 배분, 부당한 계약 해지 등 피해 상담 및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올바른 노동 환경을 만들기 위한 교육도 필요하다. 경기도에선 ‘경기도 평생학습포털’을 통해 프리랜서의 자립을 돕는 계약서 작성법, 불공정 거래, 재무 관리 등 온라인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전 씨는 “프리랜서와 고용주 모두 노동법을 공부해야 계약을 이해하고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다 ”고 말했다.

프리랜서를 보호하는 법적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먼저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를 포용하는 법안이 제정돼야 한다. 현행 노동법은 노동자의 범위를 매우 좁게 규정하고 있어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특수고용직은 노동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 또한 명확한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근로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2021년 발표한 ‘다양한 고용형태 주요 실태와 정책개선 방향’은 표준계약 기준을 마련해 부당한 거래를 근절하고 표준 수수료를 책정해 공정한 보수를 지급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오늘도 프리랜서들은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프리랜서의 처우 개선을 위해선 기업과 고용주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국가의 법안 마련도 중요하다. 고용 시장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는 현재, 유연한 고용 형태에 발맞춰 제도 밖 근로자를 제도의 범위 안으로 이끌어야 한다.

참고문헌
한국콘텐츠진흥원. (2021). 2021년 콘텐츠산업 10대 불공정 행위 실태조사.
민지희, 김형렬, 박민영, 이유민, 이진우. (2021). 웹툰 작가들의 정신건강 및 신체건강과 불안정 노동 수준 실태 조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김종진. (2021). 다양한 고용형태 주요 실태와 정책개선 방향. 한국노동사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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