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수집한 예술 작품들이 시대를 상징하는 존재가 된다면 어떨까. 유럽의 합스부르크 왕가는 지난 1273년부터 1918년까지 오스트리아, 스페인 등을 지배하며 각국의 문화예술 작품을 후원했다. 빈미술사박물관이 소장 중인 합스부르크 가문의 수집품 약 7000점 중 96점이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로 찾아왔다. 지난달 25일(화)부터 오는 2023년 3월 1일(수) 열린 전시에서 관람객은 합스부르크 왕가가 약 600년 동안 모은 예술품을 만날 수 있다.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에선 예술 후원자이자 수집가였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취향이 돋보인다. 본지 기자단도 전시에 방문해 시대를 대표하는 이들의 안목을 엿보고 왔다.


예술, 권력에서 취미로
합스부르크 가문은 권력을 강화하며 예술 후원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들의 역사는 신성로마제국에서 본격적으로 출발했다. 신성로마제국은 10세기부터 19세기까지 중부 유럽에 존재했던 다민족국가다. 오늘날의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이 모두 신성로마제국에 속해 있었다. 루돌프 *백작은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최초로 신성로마제국의 독일 왕에 올랐다. 이후 프리드리히(Friedrich) 3세가 제국 전체를 이끄는 황제가 되며 합스부르크 가문이 유럽 대부분의 국가를 통치하게 됐다. 대세를 유지하고 싶었던 합스부르크 가문은 계보도나 문장을 활용해 권력을 시각화했다. 그들은 권위를 선전하기 위해 예술가들을 후원해 초상화 제작을 의뢰하기도 했다. 이후 합스부르크 가문은 여러 사조의 예술품을 접하며 점차 예술 자체에 매료됐다. 그들의 예술품 수집은 취향의 영역으로 변해갔다. 본 전시를 대표하는 작품 9점에선 합스부르크 가문의 심미안이 드러난다.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회화 작품인 막시밀리안(Maximilian) 1세의 초상화다.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회화 작품인 막시밀리안(Maximilian) 1세의 초상화다.

입구에 들어선 뒤 복도를 따라 이동하면 프리드리히의 아들 막시밀리안(Maximilian) 1세의 초상화가 보인다. 해당 초상화에서 그는 갑옷과 대관식 예복을 입고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다. 막시밀리안은 강한 군주로서의 권위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초상화를 선택했다. 그는 스위스 북부 지역의 작은 성을 다스리던 합스부르크 백작 가문의 세력을 강화했다. 지난 1508년 황제에 오른 막시밀리안은 **결혼동맹을 시행해 스페인, 네덜란드까지 영토를 넓혔다.

 

▲정치적·군사적 권력의 상징이었던 막시밀리안 1세의 갑옷을 ‘예술의 방’ 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정치적·군사적 권력의 상징이었던 막시밀리안 1세의 갑옷을 ‘예술의 방’ 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합스부르크 가문에겐 갑옷도 수집 대상이었다. 막시밀리안의 초상화를 지나 넓은 전시실에 들어서면 빨간 벽으로 둘러싸인 ‘예술의 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루돌프(Rudolf) 2세의 수집품으로 꾸며진 예술의 방엔 페르디난트(Ferdinand) 2세 ***대공, 막시밀리안, 루돌프의 갑옷이 있다. 그중 막시밀리안의 갑옷은 시합·전투 등의 목적에 따라 조립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루돌프(Rudolf) 2세의 수집품 중 하나인 해시계다.
▲루돌프(Rudolf) 2세의 수집품 중 하나인 해시계다.

루돌프의 소장품은 빈미술사박물관에 공예관이 지어지는 기반이 됐다. 그는 동생에게 왕위를 찬탈당해 정치적 성과를 이루진 못했으나 평생을 예술품 수집에 몰두하며 후원가로서 입지를 다졌다. 예술의 방을 지난 뒤 보이는 작은 크기의 공예품들은 가까이에서 관찰해야 그 정교함을 알아볼 수 있다. 공예품의 종류는 컵, 바구니, 찻잔 등으로 다양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십자가 모양의 해시계다. 해당 시계는 그림자의 위치, 일출과 일몰 시각, 위도와 경도를 활용해 시간을 표현했다. 

화폭에 담긴 다채로운 풍경

▲페르디난트(Ferdinand) 2세 대공이 사들인 기독교 회화 ‘우물가의 리브가와 엘리에셀’이다.
▲페르디난트(Ferdinand) 2세 대공이 사들인 기독교 회화 ‘우물가의 리브가와 엘리에셀’이다.

루돌프의 수집품을 뒤로한 채 오른편으로 이동하면 푸른 벽과 어울리는 색감의 그림들을 볼 수 있다. 이탈리아의 화가 오타비오 바니니(Ottavio Vannini)가 그린 ‘우물가의 리브가와 엘리에셀’은 성서 속 인물 ‘리브가’와 ‘엘리에셀’이 만나는 구약성서의 한순간을 보여준다. 해당 작품엔 당시 이탈리아 볼로냐(Bologna)에서 유행하던 강렬한 색채 표현이 활용됐다. 페르디난트는 자신의 수집품을 전시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티롤(Tyrol)의 암브라스 성(Schloss Ambras)에 공간을 마련해 오스트리아 최초의 박물관을 만들었다.
 

▲궁정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의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다.
▲궁정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의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다.

페르디난트의 수집품을 관람한 후 복도를 따라 걸으면 은은한 조명과 함께 익숙한 회화 작품들이 이목을 끈다. 입구 정면에 보이는 궁정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의 대표작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에선 고풍스러운 왕가의 복식과 앳된 공주의 모습이 돋보인다. 섬세한 옷의 주름과 질감은 그림을 더욱 생동감 있게 만든다.
 

▲레오폴드 빌헬름 대공(Leopold Wilhelm)이 수집한 그림 ‘산 풍경’이다.
▲레오폴드 빌헬름 대공(Leopold Wilhelm)이 수집한 그림 ‘산 풍경’이다.

레오폴드 빌헬름(Leopold Wilhelm) 대공은 왕성하게 예술 후원 활동을 하며 후대에 회화 작품을 남겼다. 벨라스케스의 궁정 초상화를 관람한 후 넓은 전시실로 들어서면 벽을 가득 채운 회화 작품을 볼 수 있다. 해당 작품들은 모두 레오폴드 빌헬름의 수집품이다. 페르디난트의 아들인 레오폴드 빌헬름은 예술품 수집을 취미로 가지며 1400점이 넘는 회화를 사들였다. 화가 요스 데 몸퍼르(Joos de Monper Younger) 2세가 1620년대에 그린 ‘산 풍경’은 작품을 구역별로 나눠 감상하기 좋다. 관람객은 좌측 하단의 인물부터 뒤쪽의 푸르른 원경까지 시선을 이동하며 여러 풍경을 볼 수 있다. 청색과 회색이 어우러진 원경은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세상 밖으로 나온 600년 미술사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 Walburga Amalia Christina) 황제가 대중에게 공개한 작품 중 하나인 ‘마리아 크리스티나 대공의 약혼 축하연’이다.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 Walburga Amalia Christina) 황제가 대중에게 공개한 작품 중 하나인 ‘마리아 크리스티나 대공의 약혼 축하연’이다.

18세기에 이르러 합스부르크 가문의 수집품이 세상에 공개됐다. 보라색 벽으로 둘러싸인 전시실에서 볼 수 있는 ‘마리아 크리스티나 대공의 약혼 축하연’도 그중 하나다. 해당 작품은 무려 가로 1.9미터, 세로 2.3미터의 거대한 크기를 자랑한다. 캔버스에 담긴 성대한 왕가 잔치의 풍경은 웅장함을 더한다. 해당 그림엔 지난 1773년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 Walburga Amalia Christina) 여왕의 장녀가 결혼하는 모습이 담겼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왕위에 오른 뒤 국가의 근대화에 힘썼다. 그는 가문 최초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집품을 대중에게 공개해 일반 시민도 예술 작품을 향유할 수 있게 했다.
 

▲빈미술사박물관을 설립한 프란츠 요제프(Franz Joseph) 1세의 초상화다.
▲빈미술사박물관을 설립한 프란츠 요제프(Franz Joseph) 1세의 초상화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집품은 19세기에 빈미술사박물관이 모두 소장하게 됐다. 마리아 테레지아 황제의 수집품을 지나면 프란츠 요제프(Franz Joseph) 1세의 초상화가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초상화 속 그는 허리에 손을 올린 채 휘장을 들고 있다. 프란츠 요제프는 지난 1891년 개관한 빈미술사박물관의 설립을 주도한 황제다. 그는 빈을 문화 중심의 대도시로 발전시키고자 미술사·자연사박물관에 합스부르크 가문의 수집품을 한데 모았다. 그가 건설한 빈미술사박물관은 오늘날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로 꼽힌다.
 

▲전시 마지막에 관람할 수 있는 조선의 갑옷과 투구다.
▲전시 마지막에 관람할 수 있는 조선의 갑옷과 투구다.

전시장에서 나가기 직전 조선과 오스트리아가 교류한 흔적을 볼 수 있다. 전시된 갑옷과 투구는 고종이 130년 전 프란츠 요제프에게 보낸 수교 선물이다. 지난 1982년 오스트리아와 조선의 수호 통상 조약이 체결됐다. 프란츠 요제프는 당시 경쟁 관계에 있던 러시아를 견제하고 자국 상인들이 조선의 개항장에서 안정적으로 거래할 기반이 필요했다. 조선 역시 청나라와 일본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나라와 수교를 맺고 있었다. 두 나라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시작된 수교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바다를 건너 관람객에게 돌아온 조선의 의복은 본 전시의 역사적 의의를 환기한다.


관람을 마친 본지 기자단은 사라진 옛 왕조의 안목에 감탄했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세계 1차대전에서 패전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들이 고른 작품은 여전히 남아 대중에게 사랑받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예술 작품의 진가를 알아보는 역량은 더 중요해지고 있다. 예술은 단순 감상의 대상에서 투자의 대상으로 점차 변화하고 있다. 최근엔 미술품에 투자하는 ‘아트테크(Art-Tech)’도 등장했다. 예술 작품의 미래를 내다본 합스부르크 가문의 신념은 아직까지 유효하다. 앞으로도 그들의 유산은 꾸준히 조명받으며 예술이 남기는 가치를 우리에게 일깨워줄 것이다.

*백작: 다섯 등급으로 이뤄진 유럽의 귀족 작위 중 세 번째 작위임. 
**결혼동맹: 다른 지역의 귀족과 자식을 정략 결혼시켜 세력을 넓히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정책임.
***대공: 유럽에서 왕가의 황태자, 여왕의 부군, 소국의 군주를 칭하는 말임.

참고 문헌
마틴 래디, 「합스부르크 세계를 지배하다」, 까치글방,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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