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작가는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설명해주는 선생님이다. 성인도 예외가 아니다. 그림책은 성인 독자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고 내면의 성장을 돕는다. 「쇠똥 구리구리」, 「갯벌이 좋아요」등의 작품을 쓴 유애로 그림책 작가는 자연을 소재로 전 연령을 아우르는 깨달음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작품을 만들 때 독자에게 자연의 가치와 삶의 지혜를 쉽게 전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어린이를 넘어 어른까지 감동하는 작품을 쓰고 그려온 그의 일생을 따라가 봤다.

 

▲유애로 동문이 그림책 작업을 진행 중인 모습이다. (사진제공=유애로 동문)
▲유애로 동문이 그림책 작업을 진행 중인 모습이다. (사진제공=유애로 동문)

그림으로 자연과 손잡는 삶

어린시절 유애로(산업디자인 78졸) 동문의 아버지는 여닫이문을 도화지 삼아 자녀들이 마음껏 그림을 그리게 했다. 유 동문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그림과 가까워졌다. 1980년대 국내에선 산업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이 영향으로 그는 당시 본교에 신설된 산업미술과를 선택하게 됐다. 학부 졸업 후 유 동문은 본교 시각디자인 석사 과정에 진학해 유아 교육과 관련된 시각디자인 작업에 매진했다. 유 동문은 “대학원 시절 본교에서 강사로 활동하며 ‘수제 프린팅’과 ‘실크스크린’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어요”라며 “같은 분야의 후배 학생들과 활발하게 소통하며 지적 자극을 받을 수 있었죠”라고 회상했다. 

유 동문은 어린이 교육과 그림을 접목한 그림책으로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가 대학을 졸업한 1980년대는 우리나라에서 그림책이 본격적으로 제작되던 시기였다. 당시 그림책의 대부분은 외국책의 번역본이었다. 그는 석사 과정 졸업 무렵 그림책을 그려보란 전공 교수의 추천으로 그림책 세계로 뛰어들었다. 유 동문은 “그림책을 작업하는 과정은 아이들이 꿈꾸는 세상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단 매력이 있어요”라며 작가가 된 이유를 설명했다.

유애로 동문의 작품인 「안녕, 꼬마섬!」의 표지다. (사진제공=보림 출판사)
유애로 동문의 작품인 「안녕, 꼬마섬!」의 표지다. (사진제공=보림 출판사)

유 동문은 자연이 주는 선물을 독자에게 일깨우는 작품을 만든다. 따뜻한 그림체가 돋보이는 「반짝반짝 반디각시」는 반딧불이의 생애부터 환경 문제까지의 주제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유 동문은 무당개구리, 하늘소, 장수풍뎅이, 사슴벌레 등의 곤충을 등장시켜 자연의 소중함을 알리고 환경문제 개선을 촉구했다. 「안녕, 꼬마섬!」은 바다 한 가운데의 작은 섬과 여러 물고기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엔 넓은 바다에 호기심을 가진 ‘꼬마섬’이 등장한다. 독자는 꼬마섬의 모험을 함께 지켜보며 바다의 웅장함을 자연스레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유 동문은 “제가 자연에서 성장하며 많은 위안을 받았듯 오늘날의 어린이들도 책에 표현된 자연을 보며 여유로움을 느끼길 바라요”라고 말했다.

 

창작 그림책 선구자

유애로 동문의 작품인 「갯벌이 좋아요」 의 표지다. (사진제공=보림 출판사)
유애로 동문의 작품인 「갯벌이 좋아요」 의 표지다. (사진제공=보림 출판사)

유 동문은 첫 창작 그림책 「쇠똥 구리구리」를 출판하며 우리나라 그림책 분야의 선두 주자로 활약했다. 책의 글과 그림을 모두 책임진 그는 이후 여러 창작물을 탄생시켰다. 그는 “제 손에서 글과 그림이 탄생한 그림책은 특히 성취감이 크죠”라며 보람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 1996년 창작 그림책 「갯벌이 좋아요」로 어린이문화대상 미술부문 본상과 한국어린이 문화대상을 수상했다. 유 동문은 「갯벌이 좋아요」로 아이들에게 우리나라 갯벌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알리고자 했다. 그는 “책에 생생한 갯벌의 생태계를 표현하고 싶었죠”라며 “뜨거운 여름날 초등학생 딸과 함께 서해안 갯벌 생물을 채집해 관찰했던 기억이 나요”라며 당시 경험을 떠올렸다. 제작과정에서 많은 정성을 쏟은 만큼 독자들에게 가장 큰 사랑을 받은 책이 됐다.

유애로 동문의 작품인 「사진관집 상구」의 표지다. (사진제공=보림 출판사)
유애로 동문의 작품인 「사진관집 상구」의 표지다. (사진제공=보림 출판사)

「사진관집 상구」는 유 동문의 삶을 녹여낸 가장 애정어린 창작물이다. 책은 그의 고향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을 배경으로 사진작가로 활동하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글쓴이는 ‘상구’를 중심으로 정겨운 옛이야기를 들려준다. 상구네 사진관의 모습, 상구의 입학식이 유 동문의 해석을 거쳐 생생하게 담겼다. 책엔 1960년대 당시 모습을 필름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이 들어갔다. 유 동문은 “아버지가 촬영한 흑백 사진을 비롯해 제 글과 그림이 함께 담겨 특별한 책이에요”라며 “제 성장 배경을 표현하고 있어 더 의미 있죠”라고 설명했다. 「사진관집 상구」는 당대 생활상을 반영해 현대의 어린이들에게 할아버지 세대의 정서를 보여줄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유 동문은 그림책의 원화를 세계 박물관에 전시해 우리나라 그림책의 발전을 알리는 데에도 앞장섰다. 지난 1996년엔 「갯벌이 좋아요」의 삽화를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에 전시했다. 지난 2005년 「으악, 도깨비다!」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소개됐다. 「으악, 도깨비다!」엔 마을의 장승을 특색있게 의인화한 그림이 실려있다. 그는 “당시엔 우리나라 그림책이 해외에 진출하는 사례가 드물었죠”라며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그림책을 세계인에게 선보이는 좋은 기회였어요”라고 소감을 말했다. 이외에도 ‘일본 미야자키현 키조오 그림책 마을 원화전시’ ‘국제그림동화 원화전’에 그의 작품이 소개됐다. 자신의 분야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한 유 동문의 행보는 후배 작가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줬다.

한 권의 그림책이 나오기까진 긴 여정이 필요하다. 유 동문은 주변 환경에서 문득 떠오르는 소재로 작품의 구상을 시작한다. 그림책을 구성할 땐 글과 그림의 조화에 집중해야 한다. 그는 “단순히 글의 상황만을 묘사하는 그림보단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림을 선호해요”라며 “작품에서 떠오르는 이미지에 따라 다른 표현 기법을 사용하죠”라고 말했다. 그의 2008년 작 「쓱싹쓱싹」에선 바람을 표현하기 위해 글자가 사선으로 기울어져 배치됐다. 또한 흑백 배경에 흰색 글씨를 사용해 밤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유 동문은 이야기를 완성하면 주변인에게 책 내용을 소리 내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야기를 바라볼 수 있다.

 

무럭무럭 성장할 독자를 위해서

유 동문은 그의 작품이 아이들의 꿈을 응원하는 친구가 되길 바란다. 그는 작품에서 ‘깔깔’, ‘슬금슬금’과 같은 의성어와 의태어의 글자 크기를 달리하고 있다. 글자를 다채롭게 구성해 말의 재미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사물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했다. 그의 작품 「쇠똥 구리구리」에선 애벌레가 성장하는 모습을 '오물오물' '부쩍부쩍'으로 나타냈다. 그림에서 애벌레의 크기가 커질수록 글자의 모양도 점점 커졌다. 유 동문은 “그림책은 어린이 독서의 시작이에요”라며 “글을 읽지 못하는 시기부터 부모나 선생님의 목소리로 전해 들을 수 있어 유아 성장기의 핵심이 되죠”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그의 작품을 접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그림책을 제작할 계획이다.

유애로 동문의 작품인 「쪽빛을 찾아서」의 표지다. (사진제공=보림 출판사)
유애로 동문의 작품인 「쪽빛을 찾아서」의 표지다. (사진제공=보림 출판사)

유 동문은 그림책을 읽은 아이들이 바람직한 가치관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하길 꿈꾼다.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최근까지 연령대별 그림책 교육을 설계해 전국의 초등학교와 도서관에서 어린 독자들과 만나왔다. 유 동문은 책을 실감 나게 읽어주고 그림책의 주제와 연계되는 놀이를 진행해 아이들의 상상력을 길러주고자 한다. 지난 2011년엔 책 「돌이와 야옹이의 뚝딱뚝딱 만들기」를 주제로 재활용품을 활용한 조형물 만들기를 진행했다. 이후 그의 작품 「쪽빛을 찾아서」를 주제로 실시한 교육에선 한지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고 쪽빛 염색을 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어린 독자들과 만나며 그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감동이었죠”라고 말했다. 유 동문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린이집·유치원·초등학교 교사와 학부모에게도 작품을 보는 올바른 안목을 키우는 법을 강연했다. 

유 동문은 숙명인이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폭넓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작은 섬 여행, 유기농 텃밭 생활 체험 등 책 작업을 위해 다양한 도전을 주저하지 않고 있다. 유 동문은 대학 생활 중 다른 이들과의 적극적인 교류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림책 작가를 꿈꾸는 학우들에겐 “그림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그림책만의 특성을 이해해야 해요”라며 “참신한 소재를 가진 세계 여러 나라의 그림책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도움이 되기도 하죠”라고 조언했다. 

 

유애로 그림책 작가는 현재 다방면의 경험을 쌓으며 여유롭게 새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새로운 작업을 시작할 때면 변함없이 설렘을 느낀다. 비슷한 일상을 살다 보면 누구나 감정에 무뎌질 때가 있다. 유 동문처럼 너그러운 마음으로 주변을 바라보자. 바쁜 일정 속 놓쳤던 나만의 흥미와 사소한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숙대신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