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을 보기 위해 극장에 들어선 순간을 상상해 보자.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관객은 티켓에 적힌 좌석을 찾은 뒤 가만히 앉아 공연을 관람할 것이다. 그러나 무대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배우들의 연기를 볼 수 있다면 어떨까. 관객 참여형 연극으로 불리는 ‘이머시브(Immersive) 연극’에선 가능하다. 자유롭게 감상하며 ‘나만의 공연’을 완성할 수 있는 이머시브 연극을 소개한다.

 

어디든지 무대, 배우가 된 관객 
이머시브(Immersive) 연극은 작품의 세계로 관객을 초대한다. ‘Immerse’는 ‘흡수하다’ ‘몰입하다’란 뜻이다. 이머시브 연극의 관객은 배우와 무대 장치가 만들어낸 작품 세계의 일원으로 흡수된다. 본교 이진아 한국어문학부 교수는 “이머시브 연극은 관객이 연극의 환상 속으로 들어가게 만든다”고 말했다. 이머시브 연극의 개념은 연극 <슬립 노 모어(Sleep No More)>의 성공 이후 연극계에서 언급되기 시작했다. 지난 2003년 영국 극단 ‘펀치드렁크(Punchdrunk)’가 기획한 해당 작품은 버려진 건물 전체를 무대로 활용했다. 관객은 각 층을 이동하며 원하는 순서대로 공연을 감상했다.

이머시브 연극은 극장에서 벗어나 진행되기도 한다. 공연을 위해 개조될 수 있는 모든 곳이 연극의 무대다. 이머시브 연극의 개념은 지난 1968년 미국 연극학자 리차드 쉐크너(Richard Schechner)가 주창한 ‘환경공연’에서 출발했다. 당시 리차드 쉐크너는 ‘생활 속 모든 환경이 공연을 위해 쓰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무대 뒤편의 장소도 연극의 배경으로 이용된다. 지난 2013년부터 2017년까지 공연된 연극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의 관객은 극장의 사무실과 연습실 등을 돌아다니며 작품에 참여했다. 지난해 11월 연극 <돈 빌리브 오셀로(Don’t Believe Othello)>는 대구시의 한 *펍(Pub)에서 공연됐다. 해당 펍은 연극의 줄거리에 맞게 대학교 종강 기념 행사장으로 탈바꿈했다. 이 교수는 “이머시브 연극은 공연이 펼쳐지는 장소의 입지와 상황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이머시브(Immersive) 연극의 요소가 활용된 뮤지컬 금란방의 포스터다. 사진제공=서울예술단
▲이머시브(Immersive) 연극의 요소가 활용된 뮤지컬 <금란방>의 포스터다. <사진제공=서울예술단>

이머시브 연극의 관객은 능동적으로 공연에 참여할 수 있다. 관객은 배우의 역할을 부여받기도 한다. 지난 2019년부터 2020년까지 공연된 이머시브 연극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의 관객은 주인공 ‘개츠비’의 파티에 초대된 손님이 됐다. 공연을 관람했던 강민지(한국어문 17) 학우는 “공연 시작 전부터 로비에서 배우들이 관객에게 말을 걸었다”며 “이름을 묻는 배우의 질문에 ‘로즈(Rose)’ ‘찰리(Charlie)’ 등 재치 있는 대답을 한 관객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강 학우는 “무대와 배우가 제공하는 세계관과 하나가 될 수 있어 매력을 느꼈다”고 소감을 말했다. 오는 10월부터 국립정동극장에서 공연될 연극 <금란방>도 이머시브 연극의 요소를 활용한다. 연극에서 관객은 밀주방에 방문하는 손님 역할을 맡는다. **무대석을 예매한 관객은 직접 무대에 올라 배우들과 연기할 수도 있다. 국립정동극장과 <금란방>을 공동기획한 최경화 서울예술단 공연기획팀 팀장은 “배우들이 공연장 외부에서부터 관객의 입장을 도우며 소통할 예정이다”며 “이를 통해 관객은 공연장이 아닌 밀주방에 입장하고 있단 느낌을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작품을 연출한 김태형 연출가는 “소품으로 쓰이는 쪽지를 관객이 직접 쓰거나 일부 장면이 관객의 대답에 따라 구성되기도 한다”며 “몰입을 위해 관객에게 확실한 역할을 부여했다”고 말했다.

▲이머시브(Immersive) 연극의 요소가 활용된 뮤지컬 금란방 출연진의 모습이다. 사진제공=서울예술단
▲이머시브(Immersive) 연극의 요소가 활용된 뮤지컬 <금란방> 출연진의 모습이다. <사진제공=서울예술단>

 

더욱 가까워질 ‘이머시브’
최근 디지털 기술이 이머시브 연극의 무대에 접목되며 관객의 몰입감을 높이고 있다. 오늘날 일부 연극은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 이하 VR)’ ‘AR(Augmented Reality, ***증강현실 이하 AR)’ 기술을 활용한다. VR·AR 연극의 관객은 작품 속 인물과 일체감을 느낄 수 있다. 본교 서은영 한국어문학부 교수는 “디지털 기술은 가상과 현실 세계 사이에 연속성을 부여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7년 공연된 연극 <천사-유보된 제목>의 일부 장면에선 VR 기술이 사용됐다. 관객은 VR 기기를 착용하고 남산예술센터의 무대, 분장실 등의 공간을 체험했다. 지난 2019년 공연된 연극 <행화탕 장례날>의 관객은 AR 기술이 포함된 앱을 이용해 작품의 결말을 추리할 수 있었다. 관객이 공연 소품에 휴대폰을 가져다 대면 소품에 얽힌 비화가 재생됐다. 해당 영상은 관객에게 줄거리의 단서를 제공했다. 

관객에게 생생한 경험을 제공하려는 이머시브 연극의 시도는 다른 장르까지 확장되고 있다. 연극뿐 아니라 웹소설과 웹툰도 소비자의 이입을 돕고자 한다. 서 교수는 “웹소설, 웹툰에서도 이머시브 연극처럼 작품과 현실의 경계를 흐리는 시도가 등장했다”며 “콘텐츠 창작자와 소비자가 작품 속 세계를 현실에 구현하길 원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웹소설 「나 혼자만 레벨업(Level up)」의 주인공은 게임 속 기술인 ‘레벨 업’을 현실에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얻는다. 독자들은 주인공이 특별한 힘을 얻는 과정에 몰두한다.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의 주인공은 자신이 읽은 소설 속 세계에 들어간다. 해당 작품은 관객을 세계관의 일부로 초대하는 이머시브 연극을 연상하게 한다. 김 연출은 “관객은 작품의 이야기를 직접 체험하며 콘텐츠와 양방향으로 소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창작자들은 작품과 소비자가 어떻게 상호작용해야 몰입감이 높아질지 늘 고민한다”며 “여러 예술 장르에서 관객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시도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고 의견을 말했다.

 

이머시브 연극은 관객이 만들어가는 '수제 공연'이다. 관객은 공연의 구성원이 돼 기존 연극과 다른 차별화된 경험을 할 수 있다. 김태형 연출가는 “수많은 디지털 콘텐츠가 등장하는 요즘 관객은 특별한 체험을 위해 연극이나 뮤지컬을 찾는다”며 “이머시브 연극은 ‘오늘 우리만 즐길 수 있는’ 기억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최경화 서울예술단 공연기획팀 팀장은 “작품의 시대 배경에 맞춰 옷을 입거나 적극적으로 호응하면 이머시브 연극을 더욱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앉아서 관람하는 공연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이머시브 연극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오감(五感)을 만족시키는 이머시브 연극은 앞으로도 발전할 것이다. 

 

*펍(Pub): 영국식 주점을 뜻함.
**무대석: 일반 객석과 달리 무대 내부에 위치한 좌석임. 
***증강현실: 실제로 존재하는 환경에 가상의 사물이나 정보를 합성하는 컴퓨터 그래픽 기법임.

 

참고문헌
백영주.(2015). 이머시브 연극의 경험성과 매체성 연구. 인문콘텐츠, 36, 109-136.
허순자.(2016). 이머시브 연극(Immersive Theatre)의 장소성과 관객의 공간 이동성. 연극교육연구, 29(26), 6-34.
진소현.(2018). 이머시브 연극의 특성 연구. 한국예술종합학교.
리봄.(2021). 한국 이머시브 연극 특성 연구. 한국예술종합학교.
권경희 외, 「연극 공간의 이론과 생산」, 연극과인간, 2017
전윤경, 「SLEEP NO MORE」, 북저널리즘, 2018
Arnold Aronson, 「환경공연 시노그래피의 역사와 이론」, 연극과인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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