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칼럼]

영화나 드라마에선 무차별적인 살인을 저지르는 사이코패스가 수없이 등장한다. 아무런 이유 없이 자신보다 약자인 사람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이들 말이다. 늦은 밤 길을 걷다가 누군가 쫓아오지 않나 불안해 뒤돌아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매일 사회면을 장식한 범죄 기사에 분노한 적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잔혹한 방식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비열한 웃음을 짓는 사이코패스는 누군가에겐 스릴이 아니라 공포다. 이는 필자가 사회적 약자의 불안을 이용한 스릴을 즐길 수 없는 이유다.

지난해 12월 종영한 JTBC 드라마 <구경이>엔 기존 서사를 벗어난 사이코패스 캐릭터 ‘케이’가 등장한다. 사이코패스와 달리 케이는 죽어 마땅한 놈만 죽인단 자신의 법칙이 있다. 지능적인 방법으로 철저히 살인을 계획하고 증거를 인멸해 자살이나 사고사로 위장한다.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와는 거리가 있는 20대 여자 대학생 캐릭터란 점도 신선하다. 가장 주목할 점은 아무런 죄의식 없이 몇십 명을 죽인 인물인데도 시청자들은 케이에 열광하며 그를 응원한단 것이다. 과연 케이의 무엇이 시청자들을 사로잡았을까.

<구경이>는 의심 많은 사설탐정 ‘구경이’가 사이코패스 케이를 뒤쫓는 추적극이다. 유능한 경찰이었지만 남편과 사별한 뒤 은둔형 외톨이가 된 그의 동력은 게임과 의심이다. 구경이는 과거 동료에게 의뢰받은 보험 사건을 조사하던 중 연쇄살인의 정황을 포착하고 범인의 행적을 좇는다. 김혜준 배우가 연기한 케이는 동글동글한 얼굴에 새하얀 피부, 작은 체구에 순한 인상을 가진 인물로 무해한 인상을 준다. 낮엔 열정 넘치는 아마추어 연극 배우로 살다가 밤엔 특유의 천진난만한 미소를 띤 채 살인을 저지른다.

표적이 생기면 어떤 방법으로도 죽이고 마는 케이와 살인을 막으려는 구경이의 대립은 추적극의 정통을 따라가는 듯 하나 분명히 다르다. 케이의 표적은 살인 방조죄와 더불어 아내를 속이고 성매수를 한 남편, 불법 촬영물로 막대한 이익을 창출한 IT업계 CEO, 범죄를 저지르고도 죄의식 하나 없이 살아가는 부패한 기득권층 등이다. 하나같이 공분을 살만한 이들이란 점에서 시청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케이를 응원하게 된다.

케이는 사람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준 나쁜 놈들을 처단한다. 저지른 죄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형량과 피해자를 위한 법적 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현실을 비춰봤을 때 케이의 범행은 오히려 통쾌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구경이는 죽어 마땅한 놈들이더라도 살인은 안 된다고 선을 긋는다. 아무리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라도 케이의 살인은 어디까지나 사적 복수이고 그가 사람을 죽이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구경이> 각본을 쓴 성초이 작가가 말했듯 구경이가 케이를 잡아줬으면 하는 마음, 케이가 구경이에게 잡히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모두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매일 믿기 힘든 범죄 기사가 쏟아지는 어지러운 현실 속에서 <구경이>는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제시한다. 다소 아쉬운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넷플릭스(Netflix)에선 방영 내내 꾸준히 인기 순위 10위 안에 올랐다. 케이를 연기한 김 배우는 지난 6일(금) 백상예술대상에서 TV 여자신인상을 수상하면서 그 진가를 인정받았다.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를 선택해 소비할 수 있는 현재, 누군가는 간절히 기다렸을 이야기를 만든 작가의 혁신적인 시도가 반갑다. 앞으로도 더욱 다양하고 신선한 이야기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이야기가 세상의 빛을 받기를 소망한다.

강정은 미디어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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