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칼럼]

성별은 정치권의 악용 대상이 되기도 한다. 정치인들이 표방하는 성숙한 민주주의란 젠더 담론을 수단으로 여기지 않을 때 유효하다. ‘제20대 대통령 선거’는 젠더 정치의 시대적 요구를 보여줌과 동시에 시대착오적 양분화를 남겼다. 이런 배경에서 필자는 이번 선거에 국한해 열린 마음의 대화를 촉구한다.

성별과 세대란 지표로 얼룩진 개표방송은 통합보다 정국의 분열을 강조했다. 물론 민주주의 사회에서 갈등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여러 기준으로 범주화된 출구조사는 국민 간의 동질성보단 차이점을 부각했다. 이에 세대와 성별 간 대립이 과도하게 첨예해질 수 있다. 언론이 제시한 통계가 준거에 따라 다르게 풀이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유권자가 유념하긴 어렵다. 언론은 정치적 무관심층도 주목한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만큼은 자중했어야 한다. 개인의 정치 성향을 가늠할 척도로 후보별 총득표율만이 공개되는 비밀 투표 체제의 취지를 모두가 헤아릴 차례다.

젠더 담론은 치열하나 지리멸렬했다. 선거에선 지역감정과 마찬가지로 성인지 감수성조차 전략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 선언을 번복한 윤석열 당선인과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유보한 이재명 후보가 이를 방증했다. 필자의 경험상 우리가 마주한 갈등은 성별 차이만으로 격화되지 않는다. 그러나 여야는 복잡한 문제의 근원을 성별로 몰아갔다. 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는 유권자라면 선입견을 버려야 할 것이다. 개혁이 청년의 몫만은 아니듯 여성의 권익 향상을 위해 특정 정당을 고집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

윤 당선인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으로 성평등이 저해될 것이란 평가가 있다. 그러나 국민은 정책의 양면적 효과를 염두에 둬야 한다. 지금껏 저출산과 성폭력 이슈 등에서 여성은 객체화된 존재로 다뤄졌고 페미니스트나 역차별 의제에서 남성은 여성 혐오를 양산한 주체만으로 여겨졌다. 이는 성별의 구분과 집단화된 사고가 뿌리 깊게 자리한 탓이었다. 이제는 개인의 존엄을 위해 존중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더불어 우리는 젠더 담론을 세력 간의 권력 다툼으로 왜곡하지 않아야 한다. 이는 소모적 갈등을 줄이고 이로운 환경을 모색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지나친 일반화는 갈등을 유발하고 합리적인 대화의 장을 위축시킨다. 폭력적이고 편향된 언동을 계속하는 일부의 의견이 다수의 뜻으로 왜곡돼 대중에게 전달된다. 이에 젠더 담론은 도리어 금기시된다. 우리가 깨끗하고 맑은 의도로 타인의 입장을 수용하면서도 자신 있게 목소리를 내다보면 어느새 바람직한 통합에 당면할 것이다. 

법 19 윤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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